나는 가끔,
비교적 풍요로움 속에서 자라나는 요즘 아이들과
많은 어려움 가운데 자랐던 나의 어린 시절과 누가 더 행복한지, 행복하다고 여기는지
내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우선은 요즘 아이들의 폼나는 운동화, 예쁜 옷 매무새는 물론,
종이 팩을 열어 하얀 우유를 마시는 모습까지도 부럽다면 부럽다.
나로서는 6학년 수학여행 갈 때서야 처음 운동화를 신어보았을 정도이고,
마시기 좋은 우유는 아예 구경해 본 일이 없다.
대신 하얀 우유가루가 생각난다.
아마도 물 건너 왔을, 정답게(?) 악수하는 두 손이 그려진
커다란 종이 드럼통을 열고, 선생님은 우리가 준비해온 종이 봉투에
우유 가루를 나누어 주셨다.
그 우유가루(전지분유?)를 지금처럼
따끈한 물에 타 마시는 방법에 대해 선생님은 혹 아셨을까?
나는 물론 몰랐지만, 당시 우리 친구들 가운데 아무도
따뜻한 물에 타서 우유를 마셨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는 집으로 가는 길에, 맨 가루를 입에 털어 넣고는,
하얗게 분칠한 입언저리의 모습을 서로 바라보며 깔깔댔고,
집에 가서는 어머니가 우유가루를 물에 개어 계란찌듯
밥솥에 넣어 쪄 주셨다.
추운 겨울, 두 고개 언덕을 넘어 학교를 오가는 우리들은
학교 가는 길 중간 쯤,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서
잠시 몸을 녹여 가야할만큼, 입은 옷이 얇았던지 오돌오돌 떨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왜 행복해 했을까?
햇빛마저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 깊어가고, 들판의 가을 걷이가 끝나고 나면,
우리 집앞의 논들은 어느 사이엔가 물이 차 오르는 방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 벼 베고난 자리, 벼폭지가 물에 잠기고, 차츰 차 오른 물은 바람에 찰랑여 잔물결을 일으키는 아름다운 호수로 변한다.
그 때쯤이면 어김없이 청둥오리, 기러기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줄지어 날아왔다.
거기다 정말 잊혀지지 않는 것은 어쩌다 하얀 고니(백조)들이 저 멀리 호수가로 하얀 날개를 접으며 내려 앉는 모습이었다. 한 마리, 두마리, 세마리.....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바로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아니 지금까지도 그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본 일이 없다.
내가 어릴 때 바라다본 그 한 장면이 지금까지도 눈앞에 보이듯, 가슴속에 간직되어, 그것 만으로도 나의 어린 시절이 달려가보고 싶도록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