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상 게시판

청구회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처음처럼
이미지 클릭하면 저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숲속의소리

2005.02.12 00:34

[re] 그해 가을 전문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그해 가을


그해 가을 나는 아무에게도 편지 보내지 않았지만
늙어 군인 간 친구의 편지 몇 통을 받았다 세상 나무들은
어김없이 동시에 물들었고 풀빛을 지우며 집들은 언덕을
뻗어나가 하늘에 이르렀다 그해 가을 제주산 5년생 말은
제 주인에게 대드는 자가용 운전사를 물어뜯었고 어느
유명 작가는 남미기행문을 연재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여기 계실 줄 몰랐어요
그해 가을 소꿉장난은 국산영화보다 시들했으며 길게
하품하는 입은 더 깊고 울창했다 깃발을 올리거나 내릴
때마다 말뚝처럼 사람들은 든든하게 박혔지만 햄머
휘두르는 소리, 들리지 않았다 그해 가을 모래내 앞
샛강에 젊은 뱀장어가 떠오를 때 파헤쳐진 샛강도 둥둥
떠올랐고 고가도로 공사장의 한 사내는 새 깃털과 같은
속도로 떨어져내렸다 그해 가을 개들이 털갈이할 때
지난 여름 번데기 사 먹고 죽은 아이들의 어머니는 후미진
골목길을 서성이고 실성한 늙은이와 천직의 백치는
서울역이나 창경원에 버려졌다 그해 가을 한 승려는
인골로 만든 피리를 불며 밀교승이 되어 돌아왔고 내가
만날 시간을 정하려 할 때 그여자는 침을 뱉고 돌라섰다
아버지, 새벽에 나가 꿈 속에 도아오던 아버지,
여기 묻혀 있을 줄이야
그해 가을 나는 세상에서 재미 못 봤다는 투의 말버릇은
버리기로 결심했지만 이 결심도 농담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떨어진 은행잎이나 나둥그러진 매미를 주워
성냥갑 속에 모아두고 나도 누이도 방문을 안으로
잠갔다 그해 가을 나는 어떤 가을도 그해의 것이
아님을 알았으며 아무것도 미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비하시키지도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버지, 아버지! 내가 네 아버지냐
그해 가을 나는 살아 온 날들과 살아 갈 날들을 다 살아
버렸지만 벽에 맺힌 물방울 같은 또 한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가 흩어지기 전까지 세상 모든 눈들이 감기지
않는 것을 나는 알았고 그래서 그레고르 잠자의 가족들이
이장을 끝내고 소풍 갈 준비를 하는 것을 이해했다
아버지, 아버지....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
그해 가을. 가면 뒤의 얼굴은 가면이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845 [re] 교육의 자유보다도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이다 1 혜영 2008.12.12
2844 [re] 귀한 선물 감사합니다. 1 정준호 2006.12.26
2843 [re] 그날이 오면... - 2005 더불어숲 모두모임 정산 5 그루터기 2005.12.21
2842 [re] 그루터기 단상 2 바람의소리 2003.03.31
2841 [re] 그루터기斷想(3/5) 로그인^^님의 글을 읽고 yoonjunga 2003.03.07
» [re] 그해 가을 전문 그해 가을 2005.02.12
2839 [re] 금정산 소개하기 유천 2006.10.11
2838 [re] 금정산의 미학 또는 금정산 소개하기(2) 6 박 명아 2006.10.27
2837 [re] 금정산의 미학 또는 금정산 소개하기(2) 유천 2006.10.26
2836 [re] 기다리는 마음 언덕 2004.04.18
2835 [re] 김철홍선배 결혼식 소식.. 2 이희 2009.05.10
2834 [re] 나는 자살한 교장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다. 5 권풍 2003.04.10
2833 [re] 나도야 간다, 젊은 날을 안방서 보낼수 있나! 정연경 2004.02.02
2832 [re] 나를 위해 밝히는 촛불(?) 9 권종현 2008.07.03
2831 [re] 내 마음이 세상이다. 솔방울 2003.03.29
2830 [re] 내 생활의 일부 송혜경 2003.06.24
2829 [re] 내 인생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건가? 장기두 2011.03.18
2828 [re] 내가 본 것 장지숙 2006.09.06
2827 [re] 내가 아는 기범이 오빠 검은별 2003.02.26
2826 [re] 내게 가난의 창피함을 가르쳐 준 학교 2 무상지급 2007.01.19
Board Pagination ‹ Prev 1 ...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 167 Next ›
/ 16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