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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직장까지는 약 2km정도라서 당뇨기가 약간 있는 나로서는 걷기에 그만인 거리지만 늘 승용차로 출퇴근을 합니다.
그 가까운 거리를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이유는 아침 출근길에 무려 3명이 카풀을 합니다.
고등학교 다니는 큰아이와 아내의 출근을 도와야 합니다.
결혼 후 줄곧 맞벌이를 하다보니 아침출근시간에 늘 허덕거리고, 이를 보충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능하면 아내의 직장까지 데려다 주어야 합니다.
마침 가는 길에 아이 학교도 있어 셋이서 함께하는 출근길이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뭐 개인적인 출근길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얼마 전 출근길에 보았던 장면 너무 짠해서 몇 자 적어봅니다.

아내를 내려주고 오는 길 중간에 부천에서 유명한 내동공단이 있습니다.
이곳은 70년대부터 부천의 공단으로 자리 잡아 제조업으로 꽤 명성을 날리던 곳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업종이 지금은 3D로 불리는 금속, 도금, 프레스 등 이지만 한때는 돈이 제법되는 업종인지라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부천경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제가 90년도 초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아침 출근길과 퇴근길에 많은 사람으로 늘 벅적였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외국인 근로자와 주부들만 보이는 곳입니다.

그 곳을 지나칠 때 신호등 없는 사거리가 두 곳 있는데 신기할 정도로 차량소통이 원할 합니다. 대부분의 차들이 출근길로 이용하다보니 미리미리 알아서 정지와 진행에 무리 없도록 하기 때문인데 그날따라 차들이 못가고 길게 늘어서서 출근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아마 접촉사고가 났겠지 하는 생각에 약 10분을 지체하면서 사거리 앞에까지 갔더니 사거리 중앙에서 사람둘이 엉켜져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옆에는 유모차를 개조한 손수레 두 대가 있고.

사실 처음에는 개 두 마리가 싸우는 것으로 착각을 했는데 한명이 위로 올라타서 밑에 사람을 때리고, 밑에 사람이 발로차면 위에 사람이 넘어지고... 한마디로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목숨 건 싸움이었습니다.
모든 차들이 아슬아슬하게 그 옆을 피해가면서 진행을 하니 당연히 더딜 수 밖에 없고.

제가 그 앞에 도착해서 자세히 보니 싸우는 두 사람은 나이가 일흔은 족히 넘었을 할머니 두분 이었습니다.
두분다  몸집이 작다보니 멀리서 보았을 때 뒹구는 모습이 개가 싸우는 모습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출근시간이 촉박하다보니 다른 차들과 마찬가지로 그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면서 할머니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는 순간 집에 계신 어머님 얼굴이 떠오르면서 차를 길옆에 세웠습니다.

차에서 내려 길 가운데 있는 손수레를 길가로 옮기고 위에 올라있는 할머니를 잡아 이끌었습니다. 일어나지 않겠다는 할머니를 번쩍 안아들으니 갓 다섯 살 아이의 무게정도로 가벼워서 수월하게 떼어놓을 수 있었고, 밑에 있던 할머니 역시 안아서 길가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할머니, 뭣 때문에 이렇게 싸우세요, 이제 그만하세요’ 하는 순간 두분은 또 다시 엉켜붙었고 제가 또다시 말리는 순간 한 할머니가 제게 한마디 합니다.
“씨부럴놈아 말리지마! 저년이 내꺼 따 뺏어먹는데... 말리지마러 씨부럴놈아”
다른 할머니가 한마디 합니다. “이년아 너는 내꺼 안처먹었냐?”

한마디로 속수무책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욕 한번 거하게 먹기도 했지만 할머니 두분의 사정을 듣고는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닌 바로 내일이라는 생각에서 몇 일간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할머니들은 공단 주변에서 나오는 폐지를 수집해서 살아갑니다. 폐지를 운반하기에는 리어카는 자체가 무거워서 다루기가 어렵다보니 가벼운 유모차를 이용해서 폐지를 수거합니다.
아침 출근길에 본 모습이 아마 그분들인 것 같은데 반대방향에서 오는 폐지 싫은 유모차를 보면 할머니는 너무 작아 사람은 보이지 않고 폐지 싫은 유모차만 가는 모습을 몇 번 보곤 했습니다. 무인으로 움직이는 손수레 같기도 하지요.

그 폐지를 하루 종일 수거해서 고물상에 가면 한 2~3천원정도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자기 구역이 엄격히 정해져 있어 남이 들어오면 가차 없다고 합니다. 과거 주먹들의 나와바리 침범에 따른 싸움 그 이상이라고 합니다.
혹시 자기 구역에 다른 사람이 몰래 가져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보통 새벽 3시부터 수거를 시작하는데, 할머니들 역시 자기 구역관리가 매우 엄격하기도 하지만 공단지역이다 보니 공장에서 포장용으로 나온 따끈따근한 폐박스는 값도 꽤 나가는지라 두분 다 가끔 남의 구역 것을 슬쩍슬쩍 하여 감정이 상해있는 터에 오늘아침에 결국 들통이 났던 모양입니다.

나이가 일흔은 훨씬 넘어 보이는 할머니 두분이 백주 대로에서 주먹이 오가는 싸움을 불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사회 구조가 과연 정상일까, 왜 이들은 새벽 3시부터 죽도록 일해도 하루 2~3천원 벌이밖에 못할까, 하는 답답함이 몰려왔습니다.

몇 년전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 옆에 약 100만평의 택지개발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겨울 아침출근길에는 매일같이 공사장 인부들이 새벽일을 마치고 길 건너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공사장으로 가기위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횡단보도를 움크린 자세로 건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름이면 기온이 30도라 하지만 공사장 현장에서 체감온도가 40도는 족히 넘는 건물 안에서 쉴 틈 없이 일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한편으론 험한 일 안하고 겨울이면 따듯한 온방으로, 여름이면 추울정도의 냉방속에서 일하는 나 자신이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당한 처우와 대가를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출근길에 만났던 할머니의 개인적인 사정이나 가족사는 모르지만 새벽 3시부터 동네 곳곳을 돌면서 모은 폐지가 적어도 하루 생활비는 충당되어야 할 사회, 만일 원가개념에서 그것이 어렵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나머지 비용을 보상해 주어야 할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부터 할머니한테서 거하게 먹었던 욕 “씨부럴놈아!”가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씨부럴놈정도 되면 적어도 이 사회에서 재생산이 가능한 역할을 부여받았을 테고 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 왔어야 하는데 제 자신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로 유쾌하지 않았던 출근길의 기억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할머니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만남의 집에서 만났던 위안부 할머님들
의문사한 자식들의 원을 달래는 할머님들
시골의 산자락 밭이랑을 세월속에 묻으시는 할머님들
동토의 땅 사할린에서 고향갈 날만 기다리시는 할머님들
일본 우토로의 작은 판자집에서 남은 생을 쉴 수만 있게 해 달라는 할머님들
시장앞 육교 밑에서 푸성귀 몇단 진열해 놓으신 할머님들
그리고 이제 할머니가 되신 제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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