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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5.09.14 01:27

떡볶이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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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종일 먹은 것이 부실해서인지, 밤이 되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아우성 수준은 아니지만, 약간의 출출함은 덜어야 할 것 같아, 부시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뭘 먹지? 바로 아래 편의점이 있으니(정말 바로 아래에 있다) '달콤한 유혹'이 담긴 과자를 먹어 볼까 보다, 하고 내려오니 아니, 아니야 떡볶이 먹자고 곧장 갈 길을 바꿔버렸다.
한 5분 걸었나. 역시 떡볶이 거리는 여전한데, 왠지 불빛은 불야성이 아니라, 스러지는 가을날 초롱불 같다. 사람까지  한 두 사람 밖에 없으니, 거리가 휑하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몇 년 전만해도, 열 서넛이 넘는 포장마차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을 시간인데......

두리번 하다, '처음 보는' 집으로 들어갔다.
떡볶이 천 오백원어치 주세요. "드시고 가실꺼예요?" "예"라고 대답하니, "그럼 1000원어치 드세요." 어... 그냥 천 오백어치 주셔도 되는데...  잠시 떡볶이 담는 손이 바빠지더니, 한 그릇 가득 떡볶이를 담아 주신다. 삶은 계란까지 곁들여서. 그러면서, 하시는 말. "많이 예볐네요?" "어...네에." 내가 통통했던 모습을 언제 보셨다는 건가? 아니야. 언제 봤다고. 나같은 손님에게 늘상하는 하는 소리겠지.

이 시간 즈음이면, 몇 년 전만해도, 사람으로 넘쳐날 시간인데 싶어서, 물어본다. "왜 이렇게 사람이 없어요? 언제부터 이런가요?" "저거 짓고나서 아니라예" 하신다. 저 쪽을 보니 십 수억 넣었다는 정문이 고싸움을 하다, 이곳으로 넘어 올 듯이 서 있다."... 역시 지을 때 짓는 걸 막았어야했는데, 싶다. 담을 없애고 마음의 벽을 허무는 시민운동이 시작된 대구에서, 60년 가까이 없던 문을 세우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매년 학교에 돈이 없어서 등록금을 올릴 수 밖에 없다고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굳이 필요없는 문을 짓겠다는 것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는데... 이것에 더해서 깨끗한 캠퍼스를 만든다고, 포장마차 철거까지 계획한 일이 있었지. 이런 저런 생각이 떡볶이 한 입 두 입 하는 사이에 오간다. 무얼 정리하시는지, 이것 저곳을 닦으시더니, 내 곁에 온다. " 이제 몇 학년이에요? " " 졸업했어요." " 몇 년 전 마이크 잡을 때는 통통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 고생해서인지 많이 말랐네요" "어, 저 아세요?" "알다마다요, 몇 년전에 요 앞에서 마이크 잡고 얘기 안 했습니껴?" 아, 2003년 이라크파병반대 1인 시위할 때, 보셨구나? 그때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듣지않는 듯 싶어서, 너무 너무 외로웠었는데... 내가 마이크 잡고 떠든다고 장사에 방해가 되었으면 되었지, 도움이 안되었을 텐데... 반가움과 미안함이 교차한다. 떡볶이가 하나 둘 씩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밑에 놓인 납작만두까지도.

몇 일 전, 출출해서 요기를 때울 생각으로 3000원어치 주문한 것보다, 훨씬 많은 떡볶이에 마음을 담아 주셨구나. 마음이 잠시 동요한다. 이제 떡뽁이 그릇은 바닥은 보이고, 오뎅 국물 조금 떠마시니, 휴지 두 마디를 끊어서 주신다. 입 닦으라고. 가져간 손수건이 되레 미안해진다.

작년과 올해, 운동을 하면서 '힘들다 와 외롭다'가 교차하는 나날이었는데, 오늘만은 마음속 가득 '힘'을 담아, 되돌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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