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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30 01:25

베트남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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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받은 E-mail인데,
혼자 읽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보낸 이에게 허락을 얻어 올립니다.

메일을 보낸 이는 국제협력단(코이카) 단원 신분으로 베트남에 지어진 장애인복지시설에 파견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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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목록 고마워요^^



가정방문을 했어요. 세가정. 모두 월남전 참전 군인이고 고엽제 후유증..
그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2대, 3대 모두
장애를 가진 자식들이 태어났어요.
그 많은사연을 듣고도, 그리고 흐르는 눈물을 보고도,
그 허름한 집을 꼼꼼하게 살피고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에 무력감을 느껴요.
안타까움. 당장 먹고 사는게 급한데 이런 특수교육이 뭔 필요람..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쌀 한자루, 돈봉투하나 갖다 주는게 더 필요하지 싶어요.
이럴땐 좀 냉정해 져야 할텐데..

서울. 그 지하철과 길가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게 아니라고'
애써 외면하던 내가 오늘은 통장을 들여다 보았지요.

자식 다섯중에 셋을 같은 증세로 보내고, 또 하나가 그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그 부모가 말했어요. 원하는게 뭐냐는 질문에.
15살난 아이가 외출할때 필요하다고
자전거 하나 있었으면, 게임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또 한 할아버지는 도망간(?) 아들과 며느리 대신 장애를 가진 손자를 돌보느라
일흔이 다 되어가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해요.
그에겐 휴식과 든든한 고기반찬이 있는 저녁상 한번 차려드리고 싶어요.

마지막 한 가정엔..할아버지의 두통에 대한 진료와 비오는 날이면 난폭해져서
자식도 연못에 집어던지는 아들과 집에 불도 지르고 그릇을 깨고 부모를 때리는
또 한아들에 대한 정신과 진료도 받게 하고
학교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는 어린 아이의 보청기를 해주고 싶구요.

후..100달러면 이렇게 세가정의 소박한 소원이 해결이 되는데..
'빈곤' 그게 어떤 것인지..가정방문을 다니면서 몸으로 느끼게 되네요.
그래요, 길가의 널려진 시장, 대책없이 아무렇게나 팔리고 있는 돼지, 소, 닭.
이런것들의 빨간 속살, 굴러다니는 야채들.
난 이방인의 눈으로 낭만적 감상에 젖어 보곤 했는데 생활은 다른 것 같아요.
나를 부끄럽게 하네요.

왜 이렇게 이 돈을 내미는게 부끄러운 건지 모르겠어요^^



................................................

커피를 타러 12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사무실에 가다보니 발밑에 두꺼비가 있었어요.
"비를 피해 여기있냐?" 라고 말을 걸어보았지요. 대답이 없대요.
그렇지. 여긴 베트남인게야. 베트남 말로 물어봐야지..
"SAO DEN O DAY?" 역시 대답이 없어요. 내가 잘못 말했나?

불빛아래 하루살이들이 춤을추길래 손을 휘저으며 말했지요
"야. 사람이 지나가는데 비켜줘야지" 반응이 없는건 당연한데... .
피식 웃음이 났어요.
"은주야 너 지금 외롭니?" 내가 나에게 말을 걸어보았더니.
"어. 그런거 같지?" 다행히도 이렇게 대답을 해주대요.
흠..아주 혼자는 아닌거야.
그리고 주위를 얼른 돌아다 봤죠.
비오는 한밤중에 마당에 서서 이러고 있는 걸 보면
누군가 쯔쯧 혀를 찰지도 모르잖아요.

빗소리가 참 좋아요.
새벽 1시.
불을 끄고 누웠는데. 빗방울 소리가 점점 커졌어요.
양철지붕을 두드리듯..아. 우리 지붕은 슬레이트.
어렸을적 큰비 올때의 그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같아요.
헤드폰의 음악을 압도하기 시작했어요.
아. 이곳에 와서 이렇게 큰 비는 처음이구요.
오랫동안 이렇게 큰 빗소리는 들어본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 빗소리는 지붕과 나의 거리를 아주 좁혀 놓았어요.
눈을 뜨면 바로 내 앞에 천정일 것같은.
어느순간 지붕은 해체되고 그대로 비에 젖을 것 처럼
빗소리가 공격적으로 느껴졌어요.
근데..참 좋았어요.

참 오랫동안 해를 못본것 같아요. 늘 흐리고, 비가 오거나 안개.
햇살 한번 받아보고 싶네요.


추신 : 가정방문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초대를 받았어요. 남편이 조각가 라고.
그리고 선물을 받았어요. 상품처럼 완성된게 아니어서 더 좋았어요.
복숭아를 든 소년. 그 웃음이 참 행복해 보여요.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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