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서울 1945를 보고 계시는지.

by 장경태 posted Apr 0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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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본건 해방되고 전에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기세를 펴던 이들이 도망을 치는 데 까지 봤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때 그때 볼 수 없기 때문에 제가 예약녹화해서 보는 기준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드는 의문 중 하나가 인물들을 둘러싼 사회적 상황이 보이질 않는게 이상했다. 아마 그것때문일 텐데,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아무리 외진 곳에 살든, 난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상관없어하는 주의거나, 사회를 보는 눈을 길러볼 기회가 없이 제 앞가림만 하면서 살기 바쁘더라도, 개인이든, 개인이 얽히는 생활에서든 당대사회의 분위기를 잡아낼 수 있어야 할 텐데, 우리의 드라마에서는 그것을 볼 수 없었다. 기억나는 게 있다면 모래시계나, 여명의 눈동자 정도?

이 드라마가 다루는 시기는 일제부터 한국전쟁시기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변화가 많았고, 앞으로 그러니까 지금의 우리 사회에 영향을 줄 굵직한 격동들이 일어났던, 지금도 알려지기를 기다리는 무진장한 중요한 사건들이 묻혀져있는 시기임에도 말하기를 꺼려했다. 지금보다 세상이 어지러웠고 고단했으므로 더 치열했고, 아름다웠으며, 새 세상을 강렬하게 꿈꾸고 헌신했던 인간들이 많았으리라 본다. 이들과 반대편에 서서 맹렬하게 출세를 위해 매진했었던 그 보다 많은 사람들도 있었을 테고. 이 당시의 서울의 아무개 가족사만 잘 잡아내도 소설이 되고 한편의 영화테마가 될 정도의 많은 이야기와 사건들이 얽혀서 묻혀있던 현대사의 보고인 시기이다.  

일부에선 이 드라마가 지나치게 개인중심의 사랑문제로 치중하고 있다고 하지만, 세상에서 사랑만큼 중요한 게 어디있나 싶다. 사랑으로 인해 혁명의 길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들 수 있고, 사랑으로 인해 가문의 짐을 벗어버리며 자신의 길을 가는 근대적인 '개인'이 만들어지고, 사랑으로 인해 신분의 벽을 해체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면, 그런 사랑은 이미 개인을 떠난 새로운 사회를 향하게 하는 원초적인 힘인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눈물을 훔치는데, 지금의 가볍고 가벼운 사랑이 아닌 온 목숨을 버릴 수 있으며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다는 최운혁과 김해경, 자신이 걸어온 정체성 마저 사랑을 위해서는 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문석경, 전근대 사회라면 소실로 앉혀도 될 시녀를 자각된 인간으로서 사랑하고 존중하지만 그것을 표현할 수 없는 문동기, 그런 문동기를 바라보며 마냥 기다리는 정자. 일개인으로서는 잘 살아오셨는지 모르나 민족 앞에선 형님은 죄인이라 했던 문동기와 문정관 형제, 최운혁과 이동우를 비롯한 친구들의 우정과 그들을 다른 인생의 길로 나가게 하지만 사회에 정직하고 당당히 맞서고자하는 의지, 형제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애끓는 마음 같은 것들은 지금은 점점 사라지는 우리사회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들이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소중한 우리 정서들이 이제는 유산이 된 것 같은 안타까움과 내가 그런 인간적인 정 사이에 놓여있지 못함이, 그런 것을 회복하며 살아야 하는데 골방에서 무얼하고 있나 하는 자책이 나를 눈물짓게 하는 가보다.

또 이 드라마를 보며 얻는 유익함은 사람들의 생활상이다. 이것은 철저한 고증으로 당시의 현실성을 더 잘 보여주었으면 하지만, 한국의 드라마제작 현실이 그때 그때 찍어 방영하기 바쁜처지라 이해하고 넘어가는 걸로 하고, 당시 친일했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면 참으로 놀랍다. 격식있고, 피아노 콩쿨을 위해 동경을 비롯해 비엔나를 수시로 드나들던 문정관의 딸 아시아 최고피아니스트 문석경, 당시 친일자작의 집안풍경과 내부의 격식있는 가재도구, 그들의 사교 인맥과 연회장에서 이뤄지는 정치, 그들의 대화와 옷차림 등등의 매너 하나하나가 흥미롭다. 반면 최운혁이나 김해경의 가족들의 삶을 통해 당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윗 세대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았는지 엿볼 수 있음은 역사책에서 얻지 못하는 덤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허황된 논리의 유력한 증거하나를 보는 셈이다. 현재까지는 여운형과 이승만이 등장했지만, 당시의 정치적인 비중이나 흐름으로 볼 때 아마 김일성과 김구의 모습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절친한 친구였던 최운혁과 이동우는 북과 남으로 향하고 문석경과 김해경의 삶은 또 어떤 풍파에 휩싸이고, 사랑으로 번민하게 될지. 시대는 어려웠으나 그 어려움은 아름다운 사람을 단련시키고 있었다. 그 사람들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사랑, 갈등, 번민, 열정과 희망들이 우리 사회의 공기를 채웠었음을 기억하면서 사회와 내가 더욱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2006년의 서울에선 어떤 인물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을까? 물질은 빈한했으나 그 때가 더 사람을 사람일 수 있게 하지 않았나 싶다.  

KBS-1TV 토요일 일요일 오후 9시 30분, 재방송은 토요일 일요일 오후 4시 10분입니다. 인터넷으로 첫회를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한국전쟁 장면이 “태극기를 휘날리며”(제목이 맞나?)보다 더 남일 같이 안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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