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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글에 대하여 동료이자 동지인 철학선생이 다음과 같은 답글을 달았습니다.
아직까지도 '서로의 빰을 때리게 하는 체벌'이 존재하는 곳이 학교입니다.
아직까지도 빰 때리기, 선착순 뺑뺑이 돌리기, 야구방망이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비상식적 체벌도구 등에 의해 체벌이 가해지는 곳이 학교입니다.

어느 학생의 다음과 같은 항변은 더욱 교사로서 부끄럽고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우리가 구로구의 힘없고 빽없는 가난한 서민의 자식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나 의사,판검사의 자식이라도 당신들이 우리를 그렇게 때리겠습니까?"

그래서 다음과 같은 동료의 글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구요.

-------------------------------------------------------------
매와 체벌 외에 교육방법은 없을까?

(1) 우리들의 일그러진 교사, 그 내면의  고백- 내면화된 폭력성과 가학성  

열 한 살의 어느 날, 나는 때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날 TV 드라마에서 일본 군인의 매서운 눈초리 앞에서 서로 상대의 뺨을 갈기고 있는 조선인들을.....처음에 조선인 둘은 머뭇거렸다. 차마 상대의 뺨을 갈길 수는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군의 군화 발은 조선인의 뱃가죽을 걷어찼고, 그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둘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반항조차 할 수 없는 자신들을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이 상대의 뺨을 후려갈겼다. 맞은쪽은 움찔했다. 상대도 뺨을 갈겼다. 그들은 서로 때릴수록 뺨을 갈기는 이유가 분명해져 갔다. 그 폭력 앞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력함 때문에 서로 뺨을 갈기기 시작했다. 자신에 대한 미움을 서로에게 풀고 있었다. 폭력은 그들에게 자신에 대한 배반을 가능케 하였다.

.....그 때 나는 힘없는 자들이 자기를 미워하는 방법을 배웠다. 어찌할 수 없는 힘 앞에서 무력하게 고개 숙이고 자기를 미워하며 자기에게 분노하는 방법을 배웠다. 폭력으로 무장한 권력 앞에서 예의 갖추어 말 잘 듣는 방법을 배웠다.......

열다섯, 중3의 어느 날, 나는 매와 체벌로 아이들을 휘어잡던 담임을 만났다. 정기적인 시험이 끝나면 전교 등수가 떨어진 만큼 매를 때렸으며, 수업시간 떠드는 아이들이 발생하면 한강철교와 걸상을 머리위에 들고 <단체기합>을 받았다. 교실에서 도난 사고가 발생하면 머리를 땅에 박으면서 운동장의 돌을 내 머리에 박는 굴종을 연습하였다. 가끔 학교생활에 진저리를 내는 담임들은 반장인 내게 엄석대의 권한을 주기도 하였다. ‘엄석대’처럼 나는 수업시간 떠드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다가 쉬는 시간 대걸레 자루로 아이들을 두들겨 팼으며, 아이들은 맞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내게 반항하는 것은 독재 권력인 담임에게 대드는 명령불복종의 죄가 됨을 누구나 잘 알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권력의 입맛에 자기의 행동과 말을 맞추는 자기 검열을 배웠으며, 절대 권력이 주는 조그만 혜택에 눈물겹게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절대 권력의 하수인 내지 권력의 대리인으로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권력의 하수인이 되면 더 약한 자들 위에서 군림하면서 더 강한 자들 밑에서 그 강한 자의 입맛에 맞게 행동할 수 있음을 배웠다..............

스물 두 살의 어느 날부터, 나는 군대에서 <맞고 패면서> 자연스럽게 생활하였다. 송충이 한 개를 모자에 달고 3년간 생활할 부대에 배치되던 날 고참은 나를 불렀다. 군기를 잡기 위해 담배를 하나 주었다. 나는 거절하였다. 나의 거절은 무례함이었다. 고참이 담배를 고참이 주는데도 피지 않는다는 이유로 때렸다. 눈에 불이 번쩍 거렸다. 내 모든 동작은 부동자세로 굳기 시작하였고, 스물 몇 해를 가꾸어 온 나의 사상과 윤리는 상명하복의 논리 앞에서 무력하게 깨져나가고 있었다. 군대라는 조직의 생리 속에서 폭력은 군기를 잡는 아주 적절한 수단이었다. 군에 걸맞는 인간형은 체벌과 폭력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으며, 내가 믿는 신도 없었고, 내가 좋아하는 시집을 읽을 수도 없었고, 연애편지는 보안검열을 통과한 후 부칠 수 있었다. 그곳에는 고참과 쫄병 만이 존재했다. 고참은 하느님과 동기동창이었고, 성모 마리아의 남편이었으며, 부처님을 손바닥 안에 놓고 주무르는 존재였다. 그 고참의 말과 명령은 곧 내가 따라야 할 도덕법칙이며, 종교적 계율이었다. 나는 다만 고참의 말과 행동에 폭력과 체벌로 길들여지는 쫄병 일뿐이었다.

......그 때 나는 폭력과 체벌로 새로운 인간형이 창출 될 수 있음을 배웠다. 25시에 나오는 전형적인 인간상을 꿈꾸는 자들의 모험정신과 도전정신을 배웠다. 폭력과 체벌은 약한 자들을 새롭게 개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임을 알 수 있었다. 강한 자에게 나를 맞추는 방법과 약한 자 위에 군림하는 방법을 배웠다............

군에서 제대한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꿈속에서 부동자세로 맞는 꿈을 꾼다. 악몽을 꾸면서 내 몸은 진땀으로 흠뻑 젖는다. 내 꿈은 군대에서의 폭력과 체벌로 지금까지 훈련을 받고 있으며, 그 꿈의 줄거리는 비 내리는 흑백 영화처럼 몇 번이고 반복된다. 내 꿈은 똑 같은 모양으로 두들겨 맞는 모습으로 늘 채워지고 있다. 다만 내 생애는 예비군 훈련을 받으면서 군화 끈을 풀고, 상의 단추를 풀고, 모자는 뒷주머니에 구겨 넣는 일을 통해 위안을 받았을 뿐이다.

................서른 살의 어느 날부터, 나는 아이들 앞에 교사로서 서 있다. 내가 배운 역사적 경험과 군대에서 내면화된 체벌과 폭력의 방법은 아이들을 다룰 때 아주 유익했다. 교실에 들어서면 나는 왕이 되었다. 교실 공간은 앞뒷문을 닫으면 아이들은 도망칠 곳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통제와 관리가 쉬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감시와 감찰의 눈초리를 지니면 그만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제왕의 권위를 누리며, 내 말과 내 행동이 진리가 되고 법이 되는 감동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 내가 조회종례를 할 때 딴짓 하거나 떠드는 아이들은 가차 없이 뺨을 갈겼으며, 몇 날 몇 시까지 학교에 내야 할 것을 잊어버리면 그 아이는 용서할 수 없었다. 게으르고 무책임한 아이들을 보면 분노가 일었다. 왕이 된 내 말을 어기는 녀석들은 예의 없음의 이름표를 달아 부모님까지 호출하였다. 자식을 둔 부모는 약자였다. 아이들의 잘못 때문에 무릎을 꿇고 비는 부모님을 보면서 부모님조차 용서할 수 없었다. 나의 용서는 크나큰 은혜와 같은 것이었다. 내가 가진 권위나 명예에 흠집을 낸 녀석과 부모를 용서할 수는 없었다.

서른 잔치가 끝난 지금, 나는 아이들 앞에서 얄팍한 처세술로 교사인 듯한 착각을 심어주고 있다. 지금은 매를 대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 속에서 문제 상황을 만들지 않고, 아이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였다. 눈빛 하나로 아이들을 제압하고 아무 사고 없이 아이들을 팰 수 있다. 나의 매와 체벌의 기술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더 이상 아이들 때문에 마음아파 괴로울 일도 없었다. 하루하루 교실에서 아이들과 나는 아주 잘 생활한다. 아이들은 단지 내 눈앞에서 게으르지 않고 사고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 내 눈에 보여 지는 아이들의 겉모습만이 중요하다. 함께 아파하는 과정은 내게 피곤한 일일 뿐이다.  

나는 위장된 평화와 조용한 질서를 사랑한다. 침묵하는 교실에서 나 혼자의 목소리만이 쩌렁쩌렁 울리고 약자위에 군림하는 지위를 사랑한다. 말 한마디면 아이들이 부동자세가 되는 법률을 제정 선포한 군대를 사랑한다. 나는 강한 자의 힘을 숭배하며 약한 자의 굴종을 사랑한다. 나는 강한 자의 잘못을 용서하는 너그러운 이해를 가졌으며, 약한 자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아량을 지니고 있다. 나는 강한 자의 어떤 잘못에도 예의를 갖추어 내가 받아들이며, 약한 자에게 술 한 잔 나누는 푼돈을 쓸 마음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나는 역사적 사명을 갖고 태어나 이 땅에서 매와 체벌로 교육하는 교사의 사명을 다하고자 한다. 성적과 말 잘 들음, 용모단정과 침묵만을 정중하게 아이들에게 요청하는 바이다.

............................................................................................................................................

아이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 폭력적인 방법 말고는 더 좋은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폭력보다 더 좋은 방법을 아이들이 알고 있었다면 아이들은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위험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선생님이 제게 보여준 것은 화내는 모습밖에 없어요."

아이들은 그 때 그 상황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에 부딪치면 지금까지의 경험 속에서 배운 해결방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합니다. 지금까지의 경험 속에서 화내고 다그치는 모습을 배웠다면 아이들은 그 모습으로 반응하고 문제 상황에 직면합니다.

아이들이 행사한 폭력은 상당부분 어른과 교사들의 책임 입니다. 아이들을 처벌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면 절대로 도울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처벌대상이 아니라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또한 아이들의 인격전체가 처벌과 판단의 대상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행한 그 행동 하나에 대한 판단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이고 형제들입니다.

아이들에게 애정 어린 말과 경청하는 자세는 무척 중요합니다. 그 대화의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상대에게 깊은 신뢰를 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받아들이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 나의 경험과 매

내가 경험한 매를 통해서도 매와 체벌이 얼마나 사람을 자기검열에 익숙하게 만드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해병대 출신의 중학교1,3학년 담임은 성적 올리기를 담임교사의 능력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월례고사가 끝나면 전교등수에서 떨어진 만큼 대걸레로 아이들을 때렸습니다. 회장과 부회장이었던 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가 되었습니다.

"이번 달 월례고사에서 전교등수가 떨어진 만큼 매를 맞는다."

담임의 한마디는 아이들이 생각할 틈도 없이 무조건 성적에서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강요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깨달은 자각을 통해 자신의 의지로 노력하기 보다는 강압적이고 타율적인 힘에 의해 결코 내면화되지 못한 것에 의해 질질 끌려갔습니다. 나와 회장은 아이들의 수업시간을 감시하고, 수업이 끝나면 떠들거나 집중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불러내어 매를 대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기도 하였습니다. 강제와 타율성을 강요하는 매와 체벌의 방법은 그 안에서 일상화된 폭력에 둔감하게 만듭니다.
폭력은 좋은 의도와 목적을 지녔다면 정당화되고 오히려 권장할만한 지도방법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폭력은 폭력 일뿐이며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존중에 치명타를 가합니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상대의 눈빛과 감정의 흐름을 읽어내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또한 자기 삶이 무시 받아도 대응할 수 없는 무력함으로 이끌어갑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정성을 기울이며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모습보다는 자기에 대한 미움을 내면화해 갑니다. 자신은 미움의 대상이며 맞아도 좋다는 식의 논리로 빠져듭니다. 자기 삶에 대한 존중을 상실하고 오히려 자신을 부끄럽고 숨기고 싶고 결코 자랑하고 싶지 않은 자화상으로 만들어갑니다.

매와 체벌에 의존한 교육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과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상실하고 또한 문제해결 방법을 힘과 권위에 의존하여 풀어가는 의존적 인간형으로 이어집니다. 일제시대의 일본인들이 조선 사람들을 교육할 때 바로 그랬습니다. 아이들을 불러내어 서로의 뺨을 치게 하고 결국은 그 상황에서 어쩔 수없는 아이들이 상대의 뺨을 치면서 울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힘없고 약한 자기에 대한 한없는 미움은 처음에는 상대를 때리지 못하던 상태에서 상대의 뺨을 철썩 철썩 치게 만듭니다. 미움만이 분노만이 길러집니다. 살면서 만나는 문제를 분노와 미움의 방법으로 이해하며 그 해결도 강압적이고 타율적으로 해결해 갑니다.

결국 매와 체벌에 의존한 교육방법은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을 보잘 것 없는 통치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일을 서슴없이 진행하게 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생각을 존중하고 그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누군가의 통치에 의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비주체적인 인간으로 만듭니다.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이성과 판단에 의해서만 자신을 규제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로부터도 함부로 침해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 스스로가 바로 침해받은 상태를 자신의 모습으로 인정하며 또한 거듭 가해자로 변해갑니다.

자신에 대한 존중과 자기 삶에 대한 애정을 상실한 사람은 결코 남을 존중할 수 없습니다. 존중과 이해의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왜 중요한지를 알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다름과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차별적으로 사람을 대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3) 매와 체벌에 대한 생각

매와 체벌의 교실에서는 살아있는 아이들이 사라집니다.
매와 체벌로 이루어지는 교육에서는 아이들은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숨기는 법입니다.
매와 체벌의 교육방법은 타율과 강제에 길들여지고 결국은 힘에 대한 숭배만을 강요합니다.
매와 체벌은 자신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애착을 미움과 부끄러움으로 만듭니다.
매와 체벌은 폭력을 일상화하면서 그 피해의 아픔을 나중에는 가해의 쾌감으로 바꾸어가는 사람을 만듭니다.
매와 체벌은 자신에 대한 존중과 타인에 대한 이해보다는 그 힘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차별적으로 부리면서 힘을 발휘하는 인간에 대한 지배욕을 발달시킵니다.
매와 체벌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따른 책임성을 시대와 상황과 환경의 탓으로 돌리며 게으름과 나태함을 정당화시킵니다.
매와 체벌은 주체성상실과 무책임을 치유해주는 특효약을 자리 잡고 스스로의 삶의 창조라는 즐거움과 성취의 동기와 과정을 무시합니다.
매와 체벌은 스스로 살아가는 인간보다는 타율적으로 키워지고 타인의 눈높이에 자기를 재단하여 맞추려는 눈치 보기의 명수로 만듭니다.
매와 체벌은 늘 좋은 가치의 실현이라는 명분아래 진행됩니다. 좋은 가치와 짝을 이루어 자신을 정당화시키고자 애를 씁니다. 그 결과 목적을 통해 과정의 악을 뒤덮어 버립니다.

교육은 좋은 가치를 좋은 교육방법으로 행하는 활동입니다. 좋은 가치를 구분할 줄 알며 그 중에서 적극적으로 좋은 가치를 실현하려 힘쓰며 적어도 나쁜 가치에는 협조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스스로 찾도록 도와주는 활동입니다.
좋은 가치는 좋은 방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좋은 방법 그 자체가 하나의 교육이며 좋은 가치입니다. 존중받는 말과 존중받는 생각과 이해하는 아픔과 나누는 슬픔의 그 과정자체에 이미 좋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어떤 가치도 주입될 수 없으며 오직 스스로가 존중받는 과정에서 인간존중을 실현하며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수로 전락된 의견조차도 토론의 과정 속에서 융화하여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4) 매와 체벌 이외의 다른 지도 방법

< 행위에 대한 개별지도>
    1) 지각한 아이들  : 시 한편 외우기, 방과 후 담임과 함께 남아 공부하기
    2) 싸운 아이들 : 육하원칙에 의한 싸움의 과정 쓰기, 서로에게 편지 보내기, 함께 일주일 동                                             안 짝으로 앉기
    3) 부모님과 다툰 아이들 : 소설 <아버지>를 읽고 독후감 15장 쓰기
    4) 매가 필요한(?) 아이들 : 담임 손바닥으로 학생 손바닥 부딪치기, 천자문 쓰기

<행위에 대한 연대지도>
   1) 반에서 집단 싸움이 생긴 경우 : 일주일 동안 담임의 솔선수범 청소하기, 일주일 동안 자발적인 청소 참여자 3-4명과 함께 청소하기
   2) 교실의 도난 사고 원인이 집단적일 경우 : 담임이 칠판에 반성문 쓰기
   3) 일대일 상담이 필요한 경우 :  담임과 함께 목욕탕가서 이야기하기, 담임 집 초대하여 함께  식사하며 밤새워 이야기 나누기

<긍정적 만남의 계기 마련을 통한 지도>
   1) 생일 축하의 자리마련(월별)
   2)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학급 공동 식사 시간의 마련 ( 모두 함께 밥 비벼먹는 시간)
   3) 상담이 필요한 학생과 함께 주말 산행 ( 3-4명의 아이들과 함께 산행하면서 대화의 시간 마련)
   4) 학교 뒷산을 걸으면서 함께 모임별 대화의 시간 마련(간식도 준비)
   5) 이메일을 통한 <아침 편지>를 아이들에게 보내기
   6) 모임일기의 교사 답글을 편지형식으로 쓰기
   7) 아침, 저녁 인사를  획일적 차례 경례 대신 “사랑한다! 00아” 또는 “수고했다! 친구들아”로 하기

........재미있는 숙제를 통한 교사와 학생의 만남 ............

부정적 계기를 만나 다스리기에 바쁘지 말고 긍정적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교사와 학생의 관계 변화를 모색할 수 있습니다. 만나면 혼나고 화내고 짜증내는 관계가 아니라 만나면 즐겁고 보고 싶고 웃음 나오고 행복해지는 인간관계의 변화는 의도적으로 마련된 긍정적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모색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재미있는 숙제를 통한 관계의 변화를 모색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이들에게 내 줄 만한 숙제>

(1) 부모님 손잡아 보고 발 닦아 드린 후 그 느낌을 일기에 써보기
부모님의 얼굴 표정은 아이들의 삶을 비추어주는 정직한 거울 역할을 합니다. 그 부모님의 손을 잡아보면서 손바닥의 느낌을 느껴보고 발을 닦아 드리면서 아이들은 고마움과 감사를 배울 수 있습니다.

(2) 온 가족이 모여 주말 저녁식사 시간에 동태찌게 끓여먹기
공동 식사 시간에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간의 오순도순한 대화는 아이들의 정서에서 아주 큰 역할을 차지합니다. 따뜻한 국을 끓여 주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타인에 대한 감사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3)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가서 등 밀어드리고 아버지가 <외롭고 쓸쓸한 한 남자>임을 느껴보기
아버지가 보호자의 역할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사람임을 알 수 있는 기회는 가식과 위선을 벗어던진 목욕탕에서 가능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말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시간>이라 이야기하고 매주 위와 같은 숙제를 내줍니다. 부모님 손잡아보고 발 닦아드리기와 동태찌게 끓여먹기 숙제는 내주었고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 가서 등 밀어드리기 숙제를 내 줄 예정입니다. 참고적으로 저희 반의 참여도는 부모님 손 잡아보기는 35명중 20여명이 실천했고, 얼마만큼의 인원수가 참여했는가 보다는 단 한명의 아이라도 참여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교육이란 단 한명의 아이라도 마음으로 담아내는 내용이 있다면 실천해야 할 듯 합니다

(4)설겆이 하시는 엄마를 등 뒤에서 가만히 안아주기
엄마도 외롭고 쓸쓸한 한 여자임을 느껴보는 그런 숙제는 안내주시나요?  분명히 엄마는 쑥스러우셔서 밀쳐내려 하시겠지만.. 그래도 5초만 꼬옥 안아주셔요.. 그러면 여러분의 애틋한 마음을 말로 하지 낳아도 엄마에게 전해질 텐데... <주의사항> 하나.. 꼭!!!  5초 이상 이여야 한답니다요.  두울... 괜시리 무슨 말인가 하려하면 .. 감동이 깨집니다.. 그냥 조용히 안아드리기(김명옥 선생님이 제안한 숙제)

(5) 생일 맞은 아이들에게 내주는 숙제
생일은 축하받아야 할 날이지만,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날입니다. 이제 고등학생 정도면 감사하는 모습이 어울립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나를 존재하게 해 주신 어머님께 <장미 한 송이 드리는 정성>을 선물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아버지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감사의 전화 드리기> 숙제도 필요합니다. 쉬는 시간 아빠에게 전화 걸어 <아빠! 힘드시죠? 저도 힘들지만 열심히 할게요!> 한마디면 아빠는 무척 행복해 하실 것입니다. 아빠는 퇴근시간까지 나를 만나기 위해 무척 기다리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다려 보는 시간의 행복함>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곧 행복함을 주는 존재로 거듭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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