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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세월의 너머 우리에게 전해지는 범일국사의 삶과 언행에 대한 기록이
>
>아름답고 웅대한 국사의 부도와 당간지주만큼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
>해보았습니다.
>
>일부분 번역해 올립니다.
>
>(앞내용) 15세에 출가한 범일스님은 20에 중국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
>왕자 김의종의 도움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마조도일의 제자인 제안대사를
>
>만나고 사제의 연을 맺습니다.  아래부분은 그 사제간이 처음 만나는 장면
>
>입니다.
>
>제안대사가 말하였다.
>
>"어디서 오셨는가?"
>
>범일 왈 :
>
>"동국에서 왔습니다."
>
>제안대사 왈 :
>
>"수로로 왔는가, 육로로 왔는가?"
>
>범일 왈 :
>
>"두 길 모두 아닙니다"
>
>제안대사 왈 :
>
>"두 길 모두 아니라면, 스님은 어떻게 이곳에 오셨는가?"
>
>범일 왈 :
>
>"해와 달이 동, 서에 있는데(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데?)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
>제안대사 왈 :
>
>"실로 동방의 보살이로고...."
>
>범일스님이 물었다.
>
>"어찌하면 성불할 수 있습니까?"
>
>제안대사 왈 :
>
>"도란 닦는 것이 아니고
>
>다만 물들지 않는 것이오.
>
>불견佛見, 보살견菩薩見을 짓지 않는 것,
>
>즉 평상심이 도지요"
>
>범일은 이 이야기를 듣고 크게 깨달았다.
>
>大師問曰, 什麽處來.
>答曰, 東國來.
>大師進曰, 水路來陸路來.
>對云, 不踏兩路來,
>旣不踏兩路 闍梨爭得到這裏.
>對曰, 日月東西有什麽障碍.
>大師曰, 實是東方菩薩.
>梵日問曰, 如何卽成佛.
>大師答曰, 道不用修但莫汚染, 莫作佛見菩薩見, 平常心是道.
>梵日言下大悟.
>
>******
>(불교에 관한 얕은 지식으로 혹 번역상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니
>
>강호제현의 고견을 구합니다. *^^*)
>
>


배기표 선생님께서 범일국사에 대해 훌륭한 소개를 하셨습니다.
음, 마지막에 '평상심'이란 용어가 나와서 설명하고자 하오니 관심있는 분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선학(禪學)은 공부하였으나 일천(日淺)하므로 성본스님(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선학과 교수스님)의 글을 약간의 첨삭을 가하면서 그대로 옮겨요. <참선수행>이라는 소책자의 36쪽에서부터 41쪽까지 이르는 분량이니 다소 길것입니다.
참고하세요.(한편 인터넷상에 한자로 옮기는 방법을 잘 몰라 화면에 뜨는 한자만을 적되 적지못하는 한개의 한자어는  맨 마지막에 별도로 음훈만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조사선이라면 당대의 걸승 마조도일(709-788)이 조사선의 정의라고 할 수 있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주장처럼, 수행이 필요없는 일상 생활 그대로의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종교로 안이하게 간주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이 마음이 곧바로 다름아닌 부처'라고 하는 '즉심시불(卽心是佛)'의 주장은 이러한 생각을 한층 더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간주되어 왔다. 사실 당대(唐代)의 조사선에서는 마조의 설법에서 '도(道)는 수행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비롯하여, <보림전>에서나 <임제록>에서도 '수행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無修無증)'라는 주장을 강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언뜻 생각하기에는 수행과 깨달음의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는 주장처럼 보인다.
그리고 <전등록>이나 당대의 선어록을 보면, 조사들은 대개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깨달음을 체득하기도 하고, 스승과의 일상 대화(선문답)나 일상의 노동(作務)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깨달음을 얻게 된 인연들을 많이 전하고 있기 때문에 선수행(禪修行)의 기본이 되는 좌선의 실천은 하지 않았다고 간주되기도 한다.
사실 마조도일이 남악에서 부처가 되기 위해 좌선 수행을 하고 있을 때, 회양선사가 '그대가 좌선수행으로 부처가 되려고 하는 것은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이 되도록 하는 것과 같다'고 좌선 수행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일화에서 좌선수행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몇 가지 특수한 경우의 사례와 그 선문답에 대한 내용의 의미를 잘못 파악하여 조사선의 본질과 참된 수행 정신을 잘못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필자는 조사선의 본질적인 정신과 수행체계를 올바르게 파악하여 이에 대한 오해와 실천 수행에 착오가 없도록 제시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회양선사는 왜 좌선수행하여 부처가 되려고 하는 마조의 좌선을 비판하고 있는가?
조사선에서 좌선수행은 무의미한 것인가?
또한 마조는 왜 평상심이 도(道)라고 하면서 '도(道)는 수행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가? 그가 주장하는 평상심은 어떤 마음이며, 평상심이 도(道)인 그 사실과 도(道)는 수행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그 사실을 어떻게 체득하여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상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조사선의 기본 정신을 통해 살펴보고자한다.
조사선의 본질은 한마디로 '일상성의 종교' 혹은 '생활 속의 종교', '자각(自覺)의 종교'등으로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먼저 마조도일이 주장한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조사선의 정의를 통해서 살펴보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전등록> 28권에는 마조도일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에 대한 설법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도(道)를 이루는데 수행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한다. 무엇이 오염(汚染)이 되는가? 생사(生死)의 마음을 일으키고, 조작하여 취향(趣向)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오염이 된다. 만약 곧바로 도(道)를 알고자 한다면 '평상심이 곧 도(道)'이다. 평상심이란 조작이 없고 시비(是非)도 없고, 취사(取捨)도 없고, 단상(斷常)도 없으며, 범성(凡聖) 등의 차별심, 분별심도 없는 그 마음이다. <유마경>에 말씀하시길, '범부행(凡夫行)도 아니요 현성행(賢聖行)도 아닌 바로 그것이 보살행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다만 지금의 행주좌와(行住坐臥)에서 환경에 순응하고 사물을 접하는 것이 바로 도(道)인 것이다. 도(道)는 즉 바로 법계인 것이며 갠지스강의 모래알과 같은 많은 미묘한 작용(妙用)도 이 법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조의 설법은 <전등록>과 <어록>등의 마조전에 한결같이 전하고 있는 유명한 일단(一端)인데, 여기서 먼저 그가 주장하는 '평상심이 바로 도(道)'라고 하는 '평상심'에 대해서 살펴보자. 마조의 설법에 '평상심'이란 '수행하여 깨닫고 부처가 되려고 하는 조작된 마음이 없고, 옳고 그름을 시비하는 분별심도 없고, 좋은 것은 취하고 싫은 것은 버리려고 하는 간택하고 선택하는 차별심도 없고, 편견과 고정관념의 마음도 없고, 범부나 성인을 구별하는 차별, 분별심도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본래심'을 가리키고 있다.
<신심명(信心銘)>에서도 '지극한 도(道)를 이루는데 조금도 어려울 것이 없다. 다만 취사선택하는 마음만 없으면 된다.'라고 읊고 있는 주장과 똑같은 입장임을 알 수 있다.
어떠한 경계에서도 편견과 고정관념도 없고, 일체의 차별 분별심도 일으키지 않는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인 본래심을 마조는 '평상심'이라고 부르고, 이 평상심으로 사는 것이 도(道)의 생활이며, 평상심이 곧 다름아닌 부처(卽心是佛)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중국 선불교의 사상적인 발전을 잠깐 살펴보면 하택신회(684-758)의 남종선과 <육조단경>에서의 번뇌(煩惱)와 망념(妄念)이 없는 진여자성(眞如自性)을 돈오(頓悟)하도록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자성청정한 진여자성과 번뇌의 망념을 구분하는 입장에서 돈오견성(自性)의 수행구조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마조는 이러한 진여자성과 망념을 구분하지 않고, 리를 인간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전개하는 평상심으로 통합하여 주장하고, 이러한 평상심 이외에 달리 진여자성이나 근원적인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조가 주장하는 '평상심'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진여자성'이나 '자성청정심'인 인간의 근원적인 본래심을 말한다. 이러한 사실을 <마조어록>에 전하는 그의 설법을 통해서 확인해 보자.

   또 질문했다. '어떠한 견해를 지어야 도(道)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까?'
마조대사가 대답했다. '자성은 본래 구족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선악(善惡)의 사상(事象)에 구애되지 않는다면 수도인(修道人)이라고 할 수 있다. 선(善)을 취하고 악(惡)을 버리며, 공(空)을 관(觀)하여 선정(禪定)에 드는 것은 바로 조작(造作)하는 행위(業)이다. 게다가 다시 밖에서 도(道)를 구하려 한다면 도(道)와는 더욱 ㄷ 멀어질 뿐이다.'

마조가 주장하는 평상심은 인간 누구라도 본래 구족하고 있는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며, 인간의 근원적인 본래심(本來心)을 인간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그 본래의 마음(平常心)이라고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중국적인 일상생활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평상심은 무한히도 충실하고 완전한 것이며, 더군다나 본래심이기 때문에 또다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인간의 평범하고 소박한 그 마음인 것이다. 이러한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다름아닌 도(道)이며, 근원적인 본래청정심(本來淸淨心)인 평상심이 다름 아닌 부처라고 단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사실 마조가 주장한 '평상심'은 일체의 차별, 분별과 편견과 고정관념을 완전히 탈피한 근원적인 인간의 본래심을 말하는 것이지, 일체의 경계에 끄달리며 분별과 차별심에 떨어져 시기 질투를 일으키는 범부의 몰자각된 중생심을 지칭하는 말이 아님을 잘 알아야 한다.
다시 앞에서 인용한 마조의 설법으로 되돌아가서 이 점을  재확인해 보자.
'도(道)는 수행(修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만 더럽히지 않도록 하라. 무엇을 오염이라 하는가? 생사(生死)의 마음을 일으키고, 조작(造作)된 마음으로 수행하여 부처가 되려고 하는 것은 모두 오염이 된다'라고 설하고 있다.
마조는 '평상심이 도(道)'라고 주장하면서, 그러한 도(道)의 생활은 오염이 없는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마조는 번뇌를 일으켰다가 없애고하는 생사심(生死心), 차별심, 분별심이나 조작된 마음을 일으켜 수행하여 도(道)를 이루려고 하거나 부처가 되려고 하거나 하는 마음을 모두 오염(汚染)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염이 없는 마음은 다름아닌 청정한 본래심인 것이며, 이러한 본래심을 '평상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등록>5권 혜능전에 '도(道)는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라고 말하고, <조당집>3권 등에서 번뇌, 망심(妄心)이 없는 '무심(無心)이 바로 도(道)'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실 도(道)는 자각된 마음에 있는 것이지 어떤 외부적인 장소나 어떤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근원적인 본래심으로 자각된 '평상심이 바로 도'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본래심의 자각에 의해 도(道)가 이루어지는 것임을 단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증: 증거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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