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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볼 글이 있어서 예전 홈피 샘터찬물에 갔다가
생각나서 검색해봤습니다. 박경태 선생님이 예전에 비슷한 내용으로 직접 써서 거기 올리셨던 글, 옮깁니다.

*****************

우상이 아니라 등대입니다  

지금보다 많이 어리던 시절, 마음에 쏙 드는 여학생이 있으면 공연히 심장이 콩당거리고 얼굴이 붉어지던 기억이 난다. 누가 내 마음을 들여다 본 것도 아닌데 들킨 것 같고, 그 여학생 앞에서 뭘 해야하는 것도 아닌데 쑥스럽던 그 기억들. 한 번 쳐다 봐줬으면 하고 간절히 기다리다가도 막상 고개를 돌리면 못 본 척하던 수줍음이 있었다. 아마도 그 여학생을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으리라. 그러다가 가만 생각을 해보니까 요즘에는 그런 느낌을 갖는 때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수줍은 사춘기 청소년이 멋진 이성을 만날 때 갖는 설렘과 홍조가 없다. 더 나아가서 세상 누구를 만나더라도 특별하다는 느낌이 많지 않고 덤덤하고 별다른 자극을 받지 못한다. 세상에 특별한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닐텐데, 아마도 사람들의 특별함을 발견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내게는 특별한 사람이 있다. 얼굴에 홍조를 띠게 만드는 형식은 아니지만 늘 만날 때면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하게되고 평소에 사는 방식이 올바른가를 생각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 내게는 있다. 신영복 선생님. 선생님을 모르는 어떤 사람은 얼마나 훌륭하면 그래 같은 학교의 동료 교수를 존경하느냐고도 하고, 내 처는 나더러 선생님을 너무 우상시 하는 것 아니냐, 오히려 선생님은 그걸 원하지 않으실꺼라고 주의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사실은 선생님께 넌지시 여쭤보았다, 다소 우상시 해도 괜찮으시겠냐고. 세상에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질문 또는 부탁이었다. 우상은 좀 그렇고 마음의 지표가 되는 그런 등대 같은 사람 하나쯤 품고 사는 것은 괜찮은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릴 때 그렇게 많이 읽은 위인전, 달달 외워서 시험 답으로도 썼던 훌륭한 인물들. 그러나 막상 입시면접 때 존경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대개 아버지나 어머니를 드는 게 현실이다. 위인이라면 대체로 공적인 영역에서 업적을 남긴 사람을 의미할텐데, 무지막지한 암기식의 교육체제가 그토록 존경하라고 강요한 위인들은 모두 제쳐두고 오직 자기 자식과 가족만을 위해서 일한 부모가 가장 존경스러운  
세상이다. 위인들은 간접 경험 대상이지만 부모는 직접적인 경험의 대상이어서 그럴 수는 있겠다. 소위 위인은 멀고, 부모는 가깝다고나 할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처절한 경쟁만이 강조되고 나 이외에는 모두가 적이요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당연한 논리일지도 모른다. 복지나 공공보험과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의 보호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믿을 것은 핏줄밖에 없다는, 그래서 내 자식 챙기고 그런 내 부모 존경하기는 어쩔 수 없는 생존 전략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만 산다는 것은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생존과 종족보존이 우리의 유전자 코드에 각인되어 있는 동물적인 본능이라지만 문화를 논하고 예술을 이야기하는 인류가 고작 이거라니. 세상을 대단히 고상하게 살자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먹고사는 것과 다소 관계가 없는 일에도 눈길을 줄 수 있고 매몰된 일상에서 한 발 빼고 가끔 하늘 한 번 바라볼 줄은 알아야하는 것 아닌가. 이럴 때 선생님을 가까이 뵙는 것은 나를 열어준다. 그다지 좋지도 않은 머리를 가지고 자만하며 굴리려 애를 쓰던 태도는 머리 좋은 것이 마음이나 손 발 좋은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표현에 그저 녹아 없어져버린다. 애정도 연대를 위한 노력도 없이 그저 관찰만 열심히 하던 내 삶은 동일한 입장을 고민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선생님을 거의 산 속 도사의 모습으로 그려놓고는 그 모습을 열심히 존경하는 경우도 있는가보다. 고옥이 아니라 아파트에 사시느냐고 하는 사람, 한복을 입으셔야 된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지나치면 안 된다. 그래도 표현들은 다소 다를지라도 모두들 나름대로의 존경 방법일 뿐, 우상화나 신성시는 아닐꺼라고 생각한다. 물론 존경만 하고 다른 변화가 없다면 문제겠지만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되고 꾸준히 고민을 할 수 있다면 용서할 수 있겠다. 여러모로 힘든 세상에서 바르게 살 수 있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누군가의 모습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그 중에도 비교적 쉬운 것이겠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역설적이게도 꽤 쉬운 방식으로 사는 셈이다, 이미 등대가 정해져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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