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상 게시판

청구회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처음처럼
이미지 클릭하면 저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숲속의소리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Files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Files


로드킬
달리던 차가 멈췄다. 도로에서 검은 점 같은 물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린 태영은 좌우를 살핀 뒤 황급히 도로 가운데로 걸어갔다. 삵이었다. 도로를 건너려다 교통사고를 당한 삵은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사람처럼 따뜻한 피가 흐르던 삵은 한참 전에 사고를 당한 듯 이미 싸늘히 식어 있었다. ‘살쾡이’라고도 부르는 삵은 우리나라에서 이제 몇 마리 남지 않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동물이다. 그 소중한 생명이 달리던 차에 치여 그만 죽고 말았다. 잠깐 차가 흔들리는 정도의 충격을 받았을 차는 이미 어디론가 휭 하니 떠난 뒤였다. 운전수는 사고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저 운이 좋지 않은 날이라고 기억할까?

‘로드킬(Road-kill)’, 들판과 산을 내달리며 사는 야생동물과 새, 곤충 같은 생명이 달리던 차이 치여 도로 위에서 죽는 것을 말한다. 태영은 지리산에서 이렇게 로드킬로 죽어가는 동물을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반도의 남도 한가운데 웅장하게 솟아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과 온갖 생명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있는 지리산은 이제 섬이 되었다.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도로망에 갇혀 오가는 차들이 내뿜는 매연과 소음, 밤낮 휴일없이 몰려드는 방문객들 때문에 기침을 하며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다면 그 속에 사는 야생동물의 삶은 어떨까?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연구원인 최태영 씨와 지리산에서 평생을 살아온 최동기, 최천권 씨는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도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88고속도로(2차선)와 19번 산업도로(4차선), 19번 섬진강변 도로(2차선) 120㎞ 위에서 죽어가는 야생동물을 하나하나 기록하기 시작했다. 차들이 끝없이 내달리는 도로 안으로 들어가 야생동물과 새들의 사체를 치우고 수집하고, 동물의 상태와 도로 상황, 날씨, 둘레 환경을 꼼꼼히 기록한다. 이 조사는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로드킬에 대한 최초의 체계있는 학술조사이다. 지난 30~40년 동안 수많은 도로가 생겨났지만 그동안 도로가 야생동물에게 미치는 영향과 로드킬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차를 운전하다 보면 도로 위에서 으깨진 야채나 기름 때 묻은 장갑이 죽은 야생동물처럼 보이기도 해요. 둥글게 말려 있는 것은 소쩍새 죽은 것 같고, 갈색으로 변한 바나나껍질은 쥐나 족제비처럼 보이기도 해요. 버려진 걸레조각과 헷갈릴만큼 동물들이 비참하게 죽어 있어요.”
족제비 새끼가 죽은 어미 곁을 맴돌다 그 곁에서 다시 로드킬 되는 장면도 보았다. 사고를 당한 어미 고라니의 배 밖으로 미처 태어나지 못한 새끼 고라니가 튀어나와 있는 가슴 아픈 장면도 보았다. 비온 뒤 도로 위에는 두꺼비가 수십 마리가 죽어 있기도 했다. 10m 구간에서 무려 100여 마리가 점점이 죽어 있었다. 개울이나 웅덩이 같은 습지에서 살다 겨울잠을 자기 위해 뭍으로 올라오다 도로 위에서 죽기도 하고, 봄에 다시 개울로 내려가다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두꺼비 섬(蟾)’ 자를 쓰는 섬진강의 이름이 무색할만큼 섬진강변 도로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쌀쌀한 날에는 한낮의 열기를 품고 있는 따뜻한 도로 위에서 몸을 말리려던 뱀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죽어 있기도 했다.

왜 도로 위에서는 죽었을까?
사람에게는 좌우를 살피고 잠깐 걸으면 되는 짧은 거리지만 몸집이 작고 바닥을 기어 다니는 양서류, 파충류에게는 2차선 도로도 한참을 건너야 하는 까마득한 거리다. 도로에서 머무는 시간이 그만큼 길기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이 높다. 고라니나 너구리, 삵 같은 행동이 빠른 야생동물에게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중앙분리대가 있는 도로로 잘못 들어서면 뛰어 넘을 수도 없고 밑으로 기어나갈 수도 없어 순간 당황하다가 사고를 당하고, 무사히 건넜다 해도 다시 높은 콘크리트 옹벽이 나타나 산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잦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 역시 사고를 당한다. 폭이 좁은 2차선 도로 양 옆 우거진 덤불과 덤불 사이를 낮게 날다가 속도를 내며 달려가는 차를 들이받아 많이 죽는다. 또, 사람들이 던지고 간 달콤한 음료수병을 핥아먹기 위해 날아든 곤충들이 차에 받쳐죽고, 그 곤충을 먹기 위해 날아든 직박구리와 까치마저 죽어 2차 로드킬 되는 일도 잦다.  
“차라리 다른 곳에서 죽으면 분해되고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지만 도로 위에서 사고가 나면 걸레조각처럼 되었다가 차바퀴에 수없이 깔려 가루가 되고, 결국에는 먼지가 되어 날려버려요. 아무 의미없는 죽음이 되는 것이죠. 인간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중에 가장 비윤리적인 것이 로드킬이에요.”
무섭게 달리는 도로 한가운데에서 진행되는 이 조사를 시작하면서 태영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생명보험에 드는 일이었다.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가는 덤프트럭 곁에 서 있으면 사람마저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그렇다면 너른 땅도 있는데 왜 하필 동물은 도로에 올라와 죽는 걸까?

우리나라에는 약 10만㎞나 되는 도로가 뻗어 있다. 단위 면적당 도로밀도는 1㎢당 1㎞나 된다. 사람처럼 정해진 집과 직장이 있지 않은 동물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 먹이를 구하기 위해, 또는 몸을 누일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아 하루에도 몇 번씩 도로를 넘나들 수밖에 없다. 그 길은 본래 야생동물의 길이었다. 그들이 오랜 세월동안 다니던 길을 사람들이 허락도 받지 않고, 어떤 배려도 없이 도로를 뚫고 점령해 버린 것이다. 산과 산 사이에 도로가 뚫리면 이 산과 저 산을 넘나들며 살던 동물들은 산 하나에 갇혀 친근교배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점점 튼튼하지 못한 새끼들이 태어나 사람들이 일부러 밀렵하지 않아도 멸종시키는 꼴이 된다.
지리산을 에워싸고 있는 120㎞ 도로에서 세 사람은 1년 반 동안 4,000건 넘는 로드킬을 보았다. 그리고 지리산을 넘어 전국의 고속도로에서 일어나는 로드킬을 조사하기 위해 이틀동안 3,000㎞를 달렸다. 아스팔트와 갓길, 도로 옆 덤불을 조사하며 무려 1,000건이나 되는 로드킬을 만났다. 더 이상 두메산골은 없다. 국토는 이미 거미줄처럼 도로가 얽혀 있다. 그런데도 새로운 도로가 떠들썩한 개통식를 하고, 우리 생활이 행복해지고 더 윤택해졌노라고 기뻐한다. 건설교통부에서는 이미 10만㎞가 넘는 도로를 2배로 늘일 계획을 세우고, 예산도 더 늘일 계획이다. 우리와 같은 땅을 뛰어 다니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두 눈을 반짝이는 대지의 거주자들은 숨죽인 채 이렇게 속삭인다.
“네 바퀴 달린 동물들에게 길을 양보하라.
단절된 작은 서식지에 만족하라.
네 바퀴 달린 동물들이 그대의 거주지를 침입해도 사랑하고 용서하라.”

생태주의 영화, 황윤 감독
본래 야생동물의 길이었던 길, 이제는 차들이 속도를 내며 달리는 그 길에 황윤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섰다. 그들이 오랜 세월동안 다니던 길을 허락도 받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점령해 버린 그 길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한국독립영화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야생동물의 발자취를 찾는 ‘야생동물소모임’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는 황윤 감독은 한반도를 넘어 지구별에 살고 있는 야생동물에게로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있다. 사람보다 더 예민하고 민첩한 야생의 동물들이 인간의 말과 글로 전하지 못하는 말을 감독은 영화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꿈과 낭만의 동산’이라 부르는 동물원에 갇혀 일생을 사는 야생동물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작별』과 한반도에서 이미 멸종된 호랑이와 표범 같은 야생동물이 백두산과 두만강 유역에서 다시 멸종위기 신세가 된 이야기를 담은 『침묵의 숲』 역시 이런 야생동물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또, 절박하고 긴박한 환경현장에서 만나는 생명들과 주민들의 기록을 담기 위해 감독은 현장을 찾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우리나라 환경운동을 이끈 사람에게 주는 2005년 교보생명환경문화상 환경예술부분 대상을 받으며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제 영화에 출연했던 동물들을 이 시상식에 초대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수상의 빛은 제가 아닌 그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제가 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알려준 야생의 주인들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립니다. 미약한 힘이지만 카메라를 들 여력이 있는 한, 그들의 편에 서 있을 것입니다.”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약한 자들,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있는 야생동물의 대변인이 된 감독은 새로운 작품 『어느 날 그 길에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미 우리 국토는 거미줄 같은 도로에 얽혀 있지만 새로운 개통식을 열고, 도로를 2배로 늘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 가운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풀숲에 숨어 격한 숨을 고르고 있는 그들이 인간에게 전하는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상영문의
감독 황윤/ 2006년/ 106분/ 서울환경영화제· 경기문화재단 지원작

환경과 동물을 주제로 독립영화를 꾸준히 제작하고 있는 황윤 감독의 영화는 상업영화가 뒤덮고 있는 극장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가 없다.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환경교육이 되고, 아이들의 생태감수성을 길러줄 생태주의 영화, 이 영화의 상영을 원하는 모임이나 학교는 감독에게 문의하면 상영에 필요한 것을 직접 의논할 수 있고, 감독과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황윤 감독 blog.naver.com/ecofilm, sailor21@freechal.com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 로드킬 이야기를 담은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 박경화 2006.07.03
1364 울컥한 아침입니다. 6 권종현 2006.06.30
1363 축구는 비록 졌으나 그동안 정말 행복했었어요. 3 밥잘 2006.06.29
1362 말의 어원은....?? 4 박철화 2006.06.29
1361 [re] 범일국사에 대한 이야기(2)...배형호 선생님 읽어보세요 5 해 원 2006.06.28
1360 [re] 범일국사에 대한 이야기(2) 4 해 원 2006.06.28
1359 [re] 범일국사에 대한 이야기(2) 2 해 원 2006.06.27
1358 나의 첫 더불어숲 모임: 강릉의 2박3일 11 문 봉 숙 2006.06.27
1357 범일국사에 대한 이야기(2) 배기표 2006.06.27
1356 [2006년 6월 강릉 열린모임 정산] 아니~ 이럴수가!!! 5 그루터기 2006.06.27
1355 범일국사에 대한 이야기(1) 배기표 2006.06.27
1354 출장 복귀하는... 2 김동영 2006.06.27
1353 강릉을 다녀와서 4 정인숙 2006.06.26
1352 엽락과 분복 그리고 희망.... 1 낮은 구릉 2006.06.23
1351 이성적으로 인정할수 있어야죠. 김동영 2006.06.23
1350 곶자왈작은학교가 드디어 문을 엽니다 3 문용포 2006.06.23
1349 [re] 거리두기 권종현 2006.06.23
1348 [re] B급 좌파? 6 거리두기 2006.06.22
1347 [re] B급 좌파? 권종현 2006.06.22
1346 B급 좌파? 萬人之下 2006.06.22
Board Pagination ‹ Prev 1 ...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 167 Next ›
/ 16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