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글씨를 쓸 때 한 획의 실수는 그 다음 획으로 감싸고
한 자(字)의 실수는 그 다음 자 또는 다음다음자로 보완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행(行)의 결함은 그 다음 행의 배려로
고쳐갑니다. 이렇게하여 얻어진 한 폭의 서예 작품은
실수와 사과와 결함과 보상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양보하며 감싸주는 다사로운 인정이
무르녹아 있습니다.
여름 내내 청산을 이루어 녹색을 함께 해 오던
나무들도 가을이 되고 서리가 내리자 각기
구별되기 시작합니다. 단풍드는 나무, 낙엽지는
나무, 끝까지 녹색을 고집하는 나무 ...
바람이 눕는 풀과 곧추 선 풀을 나누듯 가을도
그가 거느린 추상(秋霜)으로 하여 나무를 나누고
심판합니다.
夜深星逾輝(야심성유휘)
열락(悅樂)이 사람의 마음을 살찌게 하되 그 뒤에다
모름다움을 타버린 재로 남김에 비하여 슬픔은 채식처럼
사람의 생각을 맑게 함으로써 그 복판에 '아름다움'[知]을
일으켜 놓습니다. 밤 깊을수록 광채를 더하는 별빛은
밤하늘의 지성이며 찬서리 속의 황국(黃菊)도 풍설 속의
한매(寒梅)도 그 아름다움은 비정한 깨달음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