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상 게시판

청구회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처음처럼
이미지 클릭하면 저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숲속의소리

2006.09.17 05:29

광주의 조재호 님께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jangbie@hanmail.net>였나요, <chora@hanmir.com>였나요? 2000년 봄에 제가 썼던 졸문에 재호 님께서 "진호 님 힘 내세요"라고 응원해주신 글을 읽고서 저도 "내가 버틸 수 있는 단 한 가지 이유"라는 답글을 드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언젠가 당시 구독하고 있던 <아웃사이더>에 "코라"라는 필명의 통쾌한 글들을 읽으며 혹시 내가 얼핏 알고 있는 그 "광주의 코라"가 아니실까? 하고 궁금해 하기도 했었지요. 그러고보니, 벌써 님과 온라인에서 인사를 나눈지도 햇수로 7년이 되어가네요. 제가 님을 기억하지 못할거라구요?

뭐, 미리 짐작하시고 계시겠지만, 코라 님께서 신영복 선생님에 관해 쓰신 글을 저 역시 착잡한 심정으로 읽었습니다. 지난 은퇴 관련해 여기저기 언론기사들이 나간 후로 제 주변에서 선생님에 관해 날카롭고 뼈저린 비판과 혹평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보다 자주 만나는 편입니다. 대개는 그들의 진정성과 짝사랑, 혹은 기대감과 당부론을 잘 알기에 그들의 비판을 기꺼이 경청하고 혼자서 많이 되새기는 편입니다. 대개 제 주변의 사람들은 제가 신영복 선생님의 제자임을 참칭하고 다니는 걸로 잘 알고 있기에 되려 제게 가혹하다 싶을 만큼 많은 질문과 비판을 던집니다. 저는 다소 곤혹스럽기도 하지만 많이 생각하고 조금만 말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오랜만에 게시판 상에서 다시 뵙는 재호 님께 제 마음 속 다른 얘기들을 하고 싶네요.

우선 저는 신영복 선생님에 대한 비판들이 가지는 공통점이 대부분 신영복이라는 개인에 관한 기대감과 애정이라고 믿습니다. 대개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거론하고 자세히 논박하는 것은 사실 대상에 대한 관심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믿습니다. 자신의 발언이 타인에게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 하는 고려를 제외하고 본다면 말이지요.

실망은 기대의 결과물입니다. 게다가 다만 실망하고 돌아서는 사람과 "실망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제법 커다란 차이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후자의 발언은 어찌 보면 진솔한 고백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되려 저는 신랄한 비판자들을 보며 부러워하기조차 합니다. 그들은 가차 없이 선생님의 존함을 아무런 존칭 없이 부르며 자신의 정교한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지 못합니다. 저는 혼자서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나는 왜 신영복 선생님을 비판하지 못하는가? 한낱 무협지의 일개 방파에 나오는 사제지도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저에게는 비판자들이 지니고 있는 객관적 시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이러한 심사에도 그만의 장점이 있겠지요.

'신영복'이라는 개인에 관해 저는 숲의 다른 분들과 같이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습니다. 한 개인이 완벽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누구도 신영복 선생님이 완벽하다고 믿기에 이 공간을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요. 물론 '신영복 비판자' 누구도 선생님의 불완전성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기는 신 선생님의 "마을의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마치 머리맡에 성경을 놓고 자듯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대했다고요. 그러나 이번 은퇴식에서 선생님이 마치 "마을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 받는 사람" 같아서 상처 받았다는 얘기였습니다. 또 다른 이는 <신영복 함께 읽기> 책을 집어 던졌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어떻게 이 사람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느냐면서 말이지요. 저는 이런 이야기들을 직접 들으면서 착잡한 심정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제 개인적인 관계와 심정으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신영복'이라는 한 지식인의 좌표와 위상을 미화하거나 옹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무야나무야>의 첫 장처럼, 스승인 유의태를 딛고 넘어서는 허준의 이야기처럼, 노신의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는 일갈처럼 '신영복'을 딛고 올라서야 한다는 교만한 마음가짐도 감히 가져봅니다.

물론 "모든 비판은 애정과 결부되어 있다"는 얘기에 기대어, 함부러 모든 비판을 긍정해선 안되겠지요. 비판과 비난, 억측과 논박을 뒤섞어 모든 것을 긍정하는 척, "마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각개의 비판을 조심스럽고 신중히 읽다가 비록 어느 구절이 고깝기는 해도 완전히 버릴 말인지 아리송해지곤 합니다. 심지어 그러한 비판에 매우 격렬하게 분노하시는 분들의 모습조차도 저버리지 못합니다. 아마 제가 우유부단하고 심약해서 겠지요.

그런데, 저는 과연 우리가 논하는 '신영복'이 그저 단일한 대상인지 궁금합니다. 어떤 이는 시대 속에서 모질게 고난을 겪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신영복'을 말하고 있으며, 또 다른 이는 냉철한 이론가로서의 '신영복'을 상정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소망과 기대를 투사(projection)하는 대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논쟁은 대개 단일하지 않은 논점으로 난삽해지기 쉽습니다. 저마다 같은 발음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다른 대상을 들어 서로에게 분노하고 오해하는 경우는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랑에도 개성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은 방법론으로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요. 저마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구는 끝없는 공경과 칭송을 통해, 누구는 질문과 매달림을 통해, 누구는 묵묵한 침묵으로, 또 다른 이는 매정한 공격과 비판을 따라 선생님을 만나는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어느 자리에서 후배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신영복의 것은 신영복에게"라고요. 저는 선생님께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 역시 잘못된 자세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기대해서는 안 되는지 제가 감히 입에 담을 수는 없습니다만, 이는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기대해서도, 할 필요도 없는 것을 기대해놓고 실망했다는 것은, 대상이었던 선생님의 잘못이 아니라, 실망자가 본래 가꾼 자기 열매의 수확에 불과하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저는 "신영복을" 이 아니라, "신영복에서" 배우려고 합니다. 만일 선생님께서도 누구나와 똑 같은 개인이시라면, 그분께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지나치게 부담 드리려는 것은 선생님을 위해서도 해서는 안 되는 짓이 아닐까, 하고 속삭여봅니다. 다만 저는 신영복 선생님의 글과 말씀에서 많은 것들을 아프게 느끼고 저 자신을 보게 되며 그로 인해 선생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성경의 비유들 중에 "씨앗과 밭" 이야기가 있지요. 똑같은 씨앗인데 어느 공간에 떨어졌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유명한 얘기입니다. 어려서 주일학교에 다닐 적에는 옥토에 떨어진 씨앗이 오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배웠는데 요즘에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의 먹이가 된 씨앗도, 가시덤불에서 거름이 된 씨앗도 다 의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씨앗에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오직 그 씨앗이 떨어진 장소가 씨앗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에 대한 비판은 그 논의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저는 이 논의가 "도대체 신영복은 어떤 사람이냐"라는 갑론을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영복론을 설파하는 모든 사람들은 사실 신영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영복의 정체성"을 논하기보다는 나와, 내가 바라보는 것과, 당신의 이야기가 견주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영복을 읽는 또 하나의 독특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승화'겠지요.

재호 님의 말씀에 대부분 동의하고 더 이어달리고 싶은 구절도 적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영복이 아니라 조진호이며 조재호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말씀 맞다나 누구나 저 혼자 세상에 와서 좌충우돌 살아가는 것이지요. 조진호에게는 조진호, 조재호에게는 조재호겠지요. '조진호'와 '조재호'가 '신영복'이라는 도킹포인트를 통해 '대화'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마 코라 님께서 이미 잘 알고 계시는 얘기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저는 코라 님의 진정성과 마음의 결을 글에서 진하고 은근히 느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부터 우리의 삶과 고민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지" 대화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느낍니다. 반동과 역습의 세월을 지나 이제 포위와 압제의 세월입니다. 외따로 게릴라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이 외로운 사람들이 한 사람의 이름 아래서 다양한 논법으로 대화합니다. 저는 충분히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논법의 다양성이 논의의 일관성을 결코 해칠 수 없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다음 주말에 광주에 사는 후배를 만나러 다녀오려고 합니다. 순전히 놀러가는 셈인데, 가능하면 재호 님 뵙고 가볍게 맥주라도 한 잔 했으면 좋겠습니다. (메일주소 남기니 사정 되시면 연락 주세요) 아래 글은 2000년 제가 님께 남겼던 글의 전문입니다. 간만에 참 반가웠습니다.


------------------------------------


<내가 버틸 수 있는 단 한 가지 이유>  

바로 당신이 내 곁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버틸 수 없다
다 함께 있어서 끝까지 간다
때로는 사람들이 다 같이 내지르는 함성 속에
이 작고 볼품 없는 목소리 살짝 묻어버리지만
그마저도 당신이 없이는, 그들이 없이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
인간의 역사가 함께였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라면
당신이 지금 그렇게도 끝끝내 참아내고 있기에
그 안간힘을 보고 내가 충격을 받아
지금처럼 나도 모르게 그 고통을 감내하듯이
또한 마침내 가다보니 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
바로 그 신비함처럼
나는 바로 당신 때문에 가고 있는 것이다

혼자서는 버틸 수 없다
다 함께 있어서 끝까지 간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485 '여럿이함께' 쓰신 [신영복 함께읽기] 문봉숙 2006.09.21
1484 또 길어진 글... 죄송! [re] '여럿이함께' 쓰신 책 1 문봉숙 2006.09.22
1483 [잡담] 차, 아...리미럴~~~ 조재호 2006.09.21
1482 [re] 출렁거린다 조원배 2006.09.25
1481 [잡담 2] 늘보 이야기 1 유천 2006.09.25
1480 묘한 세상이치.. 3 김성숙 2006.09.17
1479 [re] 멀리 가는 물 3 김성숙 2006.09.22
» 광주의 조재호 님께 1 함박웃음 2006.09.17
1477 선생님 저는 책에 당신의 싸인을 받지 않았습니다. 1 위국명 2006.09.16
1476 신영복 선생님 바로 보기 15 김정필 2006.09.16
1475 나 자신을 먼저.... [re] 신영복 선생님 바로 보기 문봉숙 2006.09.19
1474 하방연대에 대한 생각 20 조재호 2006.09.16
1473 신영복 함께 읽기를 읽다 조재호 2006.09.15
1472 같이 일할 분을 찾아요 2 민들레출판사 2006.09.15
1471 프레시안 창간5주년 특별강연회-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1 그루터기 2006.09.14
1470 '사랑, 그림, 들판, 할머니' 그리고 '100만원이 생기면 ' 조원배 2006.09.14
1469 조카가 험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서울 가면서..... 8 나무 2006.09.14
1468 [re] 조카와 형제들의 골수가 맞아서 이식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2 나무 2006.09.28
1467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3 함박웃음 2006.09.14
1466 김동영님 글 번호 2173번 꼭보세요. 신현원님께서 답글을 다셨네요. 가을 2006.09.13
Board Pagination ‹ Prev 1 ...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100 101 102 ... 167 Next ›
/ 16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