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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6.10.08 14:13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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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리퀘스트’를 보며 훌쩍 훌쩍 눈물을 훔치시곤 했던 어머니가 전화기를 들고 건당 1000원짜리 ARS를 하시는 모습에 난 거의 매번 궁시렁 거리곤 했다. 내 담배값도 못한 1000원이 아까와서가 아니라 너무나 너무나 한국적인 나의 어머니를 그리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을 가지고 노는 공영방송의 작태가 괘씸했던 것이다. 제딴엔 논리적이라 생각을 하고, 어머니께 공영방송과 권력의 관계, 그리고 가난의 ‘한’을 잊지 못하는 세대들의 ‘한’을 자극하는 권력이 ‘고통분담’으로 말바꿈한 ‘고통전담’에 관해 말을 한다.

‘악마의 가슴에도 설움을 있다던데...’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하신 것 같다. 그 불쌍한 어린 소녀, 소년 가장을 보며 고작 생각하는 거라곤 당신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따위 냉냉한 언어들뿐이냐는 식이다.
“너 야학에서도 그러냐?”
이쯤되면 내 야학생활도 그리 고운 시선으로 봐주실리 없다. 말 할수록 손해다.

나를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놈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에 조금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1년간 공부를 하고 온 친구가 말을 한다.
출국 전 자못 ‘미국’에서의 생활을 상상하며 한껏 기대를 부풀렸노라고. ‘기회의 나라,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자신의 20대말을 맘껏 치장하겠노라고.
드디어 자기가 ‘포르노’의 나라 ‘미국’에 가노라고...
입국후 일주일간을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한다. 첫날밤 화사하게 달뜬 얼굴로 방문 걸어잠그고 TV를 켰는데, 흔한 키스씬 조차 볼 수 없더란다.
음... ‘포르노’의 나라라고 해서 매일 밤 볼 수 있는건 아니겠지... 스스로 위로하며 요일선택의 실수라 결론을 내리고 줄창 일주일을... 키스씬도 볼 수 없었단다...
한국에서 음성적 거래에 익숙하지 않았고, 돈도 없었던 그는 ‘기회’만 있으면, ‘맘’껏 ‘포르노’를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미국에서 일주일을 쾡~한 눈으로 보내고서야 드디어 알아냈단다. 그것도 나이 어린 여학생이 수줍게 알려주더란다. ‘공짜’로 보는 ‘공영방송’에서는 그런거 안한다고... 돈내고 케이블 방송을 봐야 한다고...
그가 와스프(WASP) 그러니깐 백인이고, 앵글로 색슨 족이고, 프로테스탄트들의 도덕주의를 그렇게 비판한 적이 별로 없었다.
‘미국의 케이블 방송은 아이들이 볼 수 없고, 미국의 공영 방송은 어른들이 볼 수 없다.’고 말하는 그는 아직도 공짜 포르노를 보는 ‘음성’ 거래를 모른다.




학원 강사를 하며 힘겹게 세남매를 키우고 있는 친구부부가 있다. 매번 ‘계획’에 없었던 ‘실수’임을 농담으로 던지지만, 낙태 찬성론자인 그의 선택은 늘 그러했다. 큰 애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올해초 크게 부부싸움을 했단다.
보기에 똘망똘망하고, 내가 ‘아버지보다 똑똑하다’고 말을 하는 그 녀석의 큰 애(이름이 ‘찬호’다)는 유감스럽게도 유치원이라는 곳을 다니지 못했고, 형편상 아직 학원이라는 곳도 가지 못한다. 사교육시장에서 돈을 버는 아버지의 자식이 사교육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것이다.

잠깐 여담을 하자면... 문방구나 구멍가게 앞에서 쪼그려앉아 오락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막 성질이 나’라고 말을 하는 또다른 친구가 있는데, 서울 변두리에서는 흔한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그 녀석은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결국 그 녀석은 여름 휴가비를 털어 중고 PS2를 구입했고, 찬호에게 선물했다. 찬호는 변두리에서 비록 ‘학원’은 못다니지만, PS2를 가지고 있는 몇 되지 않는 아이들 중 하나가 되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찬호(그 녀석의 아들이름)를 위해 이리저리 철지난 책을 구해다 읽히곤 했던 그 학원강사 아버지가 술 김에 실수 아닌 실수를 저지른 것이 부부싸움의 이유였다.
바야흐로 논술 시장이 열리면서 쏟아져 나오는 논술 도서들 중에 초등학생용 철학책 시리즈가 있었다. 믿을 만한 출판사에서 나온 그 책을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녀석은 ‘더 늦기 전’에 ‘질러’ 버리기로 결심을 하고, 바로 실천했다. ‘지름신 강령’에 아내의 꾸중을 각오는 했지만, 실제 반응이 상상을 훨씬 뛰어넘더라는 거다.

‘서울대’ 입학을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던 고등학교 시절 지금의 아내를 만나 수년의 연애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까지 골인했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때 제적을 당하고, 검정고시를 치루고, 방황하고, 대학 입학 후에도 운동권에 머물면서 학점관리에 소홀하고, 졸업후 수년간의 고시 준비를 1차만 3번 합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지켜보았던 친구의 아내는 남몰래 두려움을 키워가게 되었는데 그 두려움의 대상은 ‘철학’이었고, ‘역사’였고, ‘사상’이었고, ‘운동’이었다.
변변한 영어회화 테이프도 사주지 못하는데, 무슨 얼어죽은 철학책이냐고 한참을 소리지르던 친구의 아내는 급기야 혼절하듯 울음으로 쓰러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는 찬호까지... 우리애들은 당신처럼 살게 하지 않을 거야’
검정고시 출신에 대학만 세 번 다니고, 그것도 철학과에서 법학과로 그리고 결혼과 함께 ‘생계형’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학원 수학강사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친구에게 십오년이 넘도록 지켜보며 그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던 아내의 말을 아주 깔끔했다.
내가 사준 어린이를 위한 논리학 책도 책꽂이에 꽂혀있지 못하다며 미안한듯 말하는 그를 위로해줄 필요는 없었다.




TV에서 이런 프로를 본 적이 있다. 소년 소녀 가장을 돕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운동선수들이 내와 일종의 ‘내기’를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양궁선수들이 평소와는 다른 아주 작은 과녁에 명중을 하면 돈을 주고, 실패하면 돈을 주지 않는... 몇 천만원의 액수가 걸려있는 이 ‘내기’의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소년 소녀 가장의 표정이었다. 성공했을때의 기쁜 표정과 실패했을 때의 아쉬운 표정과 어깨가 무거운 운동선수의 진지한 표정이 특공 카메라맨에 의해 적절히 섞이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거다.
한번은 잘생긴 농구선수(아마 우지원으로 기억한다.)가 눈을 감고 삼점슛을 날리는 ‘내기’가 있었다. 내기의 액수는 한 소녀 가장의 막내동생의 수술비로 쓰여질 수 있었다.
변변한 음료수도 없는 병실에 누워있는 빠박이 막내동생의 손을 부여잡고 있는 꼬질꼬질 때가 낀 누이는 ‘꼭 성공해 주세요’라며 카메라를 보며 울먹였다.
우지원이도, 프로 진행자도, 정확한 직업을 알 수 없는 미모의 연예인들도, TV를 보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 누나도 숨죽이며 ‘꼭 성공’하길 바라고 있었지만...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고, 악마에게도 있다는 설움을 갖지 못한 나만 벽에 누운듯 기대앉아 실소를 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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