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촌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 새삼스럽게 마음 깊숙한 곳에
은밀하게 숨겨두었던 죽음에 대한 상념들이 실타레처럼 풀어진다.
지난 몇년동안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들을
접하게 된 나는 죽음에 대해 아직도 예민한 심경을 떨칠 수가 없다.
죽음 후에 오는 모든 것들은 온전히 남겨진 사람들의 것이다.
책임,허무,슬픔,분노까지도........
흔히 사람들이 얘기하듯 과연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이 축복이고
기쁨이라는 것에 자신있게 동의 할 수 없지만 일단 죽음을 맞고 난 후에는
(우리는 죽음 후에 세계까지는 알 수가 없으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들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에는 자신있게 동의 할 수 있다.
죽음 후에 오는 가장 큰 중압감은 죽은 사람이 남겨 놓고 간 일들을
올바르게 마쳐야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다.
남겨진 일들을 살아 있는 내가 고스란히 물려받아 올곧게 마쳐야 한다는 것은
큰 바위에 내 몸이 짖눌려 있는 것보다 더한 무게로 다가와 나를 짖누른다.
그 중압감에 자다가도 비명을 지르며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나는 나는
남겨지고 살아 있다는 것에 진저리를 친다.
자신의 삶을 시대에 맞춰 정직하게 사신 노촌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들으며
노촌 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남겨 놓은 일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가 짊어져야 할 책임의 중압감은 어느정도일까를 생각해본다.
이 가을,
추수를 하기전에,
남겨진 우리들에게 책임을 묻고 떠나신
노촌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이 시대에 태어난 책임과 정직까지도 털어버린
깃털처럼 가벼워진 영혼으로
훨훨 자유스럽게 이 세상을 떠나시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