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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6.10.24 17:44

산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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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올라오는 내내 형길은 자신에게 숨어 버린 듯 잠시잠시 쉴 때조차 묵묵히 말이 없었다. 정상에 다 올라 온 후에야 형길은 조그만 바위를 가리켰다.
“고생하셨어요. 하시지 않던 산행을 하시니 힘이 들 겁니다. 저기 가서 좀 앉지요.”
해우는 땀에 젖은 몸을 바위에 내려 놓았다.
“산행을 하시면서 무엇을 보고 느끼셨어요?”
형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땀을 닦던해우가 머뭇거렸다.
“글쎄요. 올라오는 것에 바빠서........”
형길이 소리 없이 웃었다.
“우리는 올라오면서 산을 오르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지요.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힘이 들 때는 먼저 정상에 오르고 내려오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더군요. 정상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냐고요 하지만 어느 한 사람 멀었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지요. 항상 ‘아니다. 이제 다 왔다. 조금만 가면 된다.’는 대답을 해주었지요. 정상이 멀었는데도 말이지요.”
형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네. 정말 그렇군요. 전 산을 오르기에 바빠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해우의 대답을 듣고 형길의 말은 계속 되었다.
“그 사람들은 알고 있던 겁니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묻고 있을 때는 자신이 올라오던 때처럼 너무 지치고 힘이 드는 때라는 것을, 산을 오르는 것을 포기 하고 싶을 만큼 힘이 들고 있는 때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지요. 그들은 산을 오르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 멀다면 오르는 것을 포기하려고 먼저 정상에 오르고 내려오고 있던 사람들에게 확인하려고 물었던 겁니다. 그러나 한사람도 ‘멉니다. 아직도 한참 가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요. 그래서 묻던 사람들은 조금만 가면 된다는 희망을 가지고 정상에 올라 내려오며 자신과 똑 같은 심정으로 산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이 정상이 머냐고 물었을 때 자신이 들었던 그대로 말해 주는 겁니다. 그것은 곧, 서로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와 ‘응원’인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해우가 기억하는 한 멀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었다.
“아........그렇군요.”
해우는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 그래서 가끔 사는 것이 힘이 들 때는 산을 오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응원과 격려를 들으며 다시 희망을 갖습니다. 서로서로 힘든 것을 알고 용기를 갖으라고, 아직 멀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따스한 배려. 그 따듯한 정들을 확인하며 전 다시 용기를 갖고 세상으로 내려옵니다.”
해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길의 말은 계속 되었다.
“그리고도 산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위대한 스승입니다. 산은 제가 지치고 힘들 때 저를 말없이 넉넉한 가슴으로 안아주며 인생의 지혜를 알려 주었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고 타는 듯한 갈증으로 목이 말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느낄 때는 샘을 숨겨놓고 저의 갈증을 달래 주었습니다.숨이 턱에 찼을 때는 시원한 바람을 보내주어 땀을 시켜 주었습니다. 제가 날이 궂은 날,정상을 앞두고 무리한 욕심을 부릴 때는 비를 내려 가차 없이 준엄하게 꾸짖으며 채찍을 가해 저에게 정상에서 돌아서는 용기와 겸손을 가르쳤습니다. 또 사람들에 의해 아무리 혼탁해지고 더러워진 물이라도 어느 정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물은 스스로의 자정작용에 의해 다시 맑고 깨끗해졌습니다. 그런 희망을 보고 저는 저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지요.”
해우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지금 무엇이 보이십니까?”
해우를 향해 형길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네?”
뜻을 모를 질문에 해우는 당황하였다.
“지금 해우씨가 올라 온 정상에서 무엇이 보이세요?”
“글쎄요. 저는 무슨 말씀인지.......... 제 눈에는 산 밖에 안 보이는데요.”
해우는 형길이 묻고 있는 뜻을 몰라 허둥댔다.
“그렇습니다. 모든 산의 정상에는 다른 산의 모습이 보이는 보이지요.  혹 제가 오르고 싶은 산이 이산이 아니더라도 저는 다시 산을 내려가지 않습니다. 다시 내려가 다른 산을 오르기에는 너무 멀리 올라와 시간이 너무 늦어 제가 오르고 싶은 산을 오르다 체 오르지도 못하고 밤이 될 지도 모르지요. 결국은 이산도 저산도 오르지 못하고 말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전 혹 이산이 아닌 다른 산을 오를 것을 그랬다는 마음이 들 때는 더 열심히 제가 오르고 있는 산을 오릅니다. 모든 산에 정상에서 보면 다른 산의 모습들이 보이니까요. 제가 오르고 싶은 산의 모습도 보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제가 지금 오르고 있는 산에 대해 갈등이 들 때마다 제가 오르고 싶은 다른 산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도 지금의 산을 더 열심히 오릅니다.”
“네........”
해우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정상은 기대보다 시시할 때가 많습니다. 오르고 나서 보면 정말 후회가 될 때가 많지요. ‘겨우 여기에 오르기 위해서 난 그렇게 땀을 흘리며 힘들어했나.’그런 생각에 허무해 집니다. 결국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겨냈다는 생각, 끝까지 해냈다는 성취감이 중요한 거겠지요.”
말을 마치는 형길을 보고 해우는 진심어린 표정이 되었다.
“정말 오늘 저에게 너무나 필요하고 소중한 강의를 듣는 기분인데요.”
“부끄럽습니다, 제가 너무 말이 많았지요. 인생을 조금 앞서 산 선배로서의 잘난 척 정도로 알고 이해해 주십시오.”
형길이 바람을 맞으며 웃었다. 해우는 그 웃음이 무척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정말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저에게는 오늘이 너무나 소중한  시간 이였습니다. 잊지 못할 겁니다.”
해우의 목소리가 따뜻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한 일이군요. 저도 기쁩니다.”
형길은 소년처럼 수줍게 웃었다.


(위의 글은 저의 글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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