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巧詐는 졸성拙誠보다 못한 법
子圉見孔子於商太宰
孔子出 子圉入 請問客 太宰曰
吾已見孔子 則視子猶蚤蝨之細者也 吾今見之於君
子圉恐孔子貴於君也 因謂太宰曰
君已見孔子 亦將視子猶蚤蝨也 太宰因弗復見也 ―「說林 上」
자어가 상商나라 재상에게 공자를 소개했다. 공자가 (재상을 만나고) 나오자 자어가 들
어가서 (재상에게) 공자를 만나본 소감을 물었다. 재상이 말하기를
“내가 공자를 보고 나니 자네가 마치 벼룩이나 이처럼 하찮게 보이네
그려. 나는 공자를 임금께 소개해드리려고 하네.” 자어는 공자가 임금
에게 귀하게 여겨질까 두려워서 재상에게 말했다. “임금께서 공자를
보시고 나면 장차 임금께서 재상님을 벼룩이나 이처럼 여길 것입니
다.” 그러자 재상은 다시는 (공자를 임금께) 소개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인人의 장막帳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임금이 어진 사람을 만날 수 없도록 하는 측근들의 이해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한비자는 군신 관계는 이해관계에 있어서 서로 대립적이라고 파악합니다. 신하는 어떻게 해서든지 군주를 속이고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며 무사안일을 추구하고 복지부동한다는 것이지요. 반대로 군주는 이들 신하들을 철저히 독책督責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하가 군주의 이목을 가리는 것(臣閉其主), 신하가 국가의 재정을 장악하는 것(臣制財利), 군주의 승인 없이 신하가 마음대로 명령을 내리는 것(臣擅行令), 신하가 사람들에게 사사로운 은혜를 베푸는 것(臣得行義), 신하가 파당을 조직하여 군주를 고립시키는 것(臣得樹人) 등 신하가 군주를 가리는 일이 거듭되면 군주가 고립되고 실권失權하는 것은 물론이며 급기야 국가가 찬탈당하게 된다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한비자』에는 법가 사상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세사世事와 인정人情을 꿰뚫는 많은 일화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이야기를 읽게 되면 한비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냉혹한 마키아벨리는 아니라는 심증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사상가를 이해함에 있어서 그의 인간적 면모에 주목한다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인간을 알지 못하면 그 사상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상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지요. 사상과 시대, 사상과 사회가 분리될 수 없는 것도 같습니다. 그것의 분리가 바로 관념화의 과정이고 물신화의 과정입니다. 더구나 법가 이론은 한비자의 인간적 면모를 심하게 왜곡합니다. 한비자의 인간적 면모를 읽을 수 있는 이야기 한두 가지만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악양樂羊이라는 위魏나라 장수가 중산국中山國을 공격했습니다. 때마침 악양의 아들이 중산국에 있었습니다. 중산국 왕이 그 아들을 인질로 삼아 공격을 멈출 것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습니다. 중산국 왕은 드디어 그 아들을 죽여 국을 끓여 악양에게 보냈습니다. 악양은 태연히 그 국을 먹었습니다. 위나라 임금이 도사찬堵師贊에게 악양을 칭찬하여 말했습니다. “악양은 나 때문에 자식의 고기를 먹었다.” 도사찬이 대답했습니다. “자기 자식의 고기를 먹는 사람이 누구인들 먹지 않겠습니까?” 악양이 중산에서 돌아오자 위나라 임금 문후文侯는 그의 공로에 대하여 상은 내렸지만 그의 마음은 의심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악양식자’樂羊食子 이야기입니다.
악양식자와 반대되는 이야기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노魯나라 삼환三桓의 한 사람인 맹손孟孫이 사냥을 나가 사슴 새끼 한마리를 잡았습니다. 잡은 사슴 새끼를 신하인 진서파秦西巴를 시켜 싣고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미 사슴이 따라오면서 울었습니다. 진서파는 참을 수 없어서 새끼를 놓아주었습니다. 맹손이 돌아와서 사슴 새끼를 찾았습니다. 진서파가 대답했습니다. “울면서 따라오는 어미를 차마 볼 수 없어서 놓아주었습니다.” 맹손이 크게 노하여 그를 내쫓아버렸습니다. 석 달 뒤에 맹손은 다시 진서파를 불러 자기 아들의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맹손의 마부가 물었습니다. “전에는 죄를 물어 내치시더니 지금 다시 그를 불러 아드님의 사부로 삼으시니 어쩐 까닭이십니까?” 맹손의 답변이 다음과 같습니다. “사슴 새끼의 아픔도 참지 못하거늘 하물며 내 아들의 아픔을 참을 수 있겠느냐?”
이 이야기에 대해서 한비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악양은 공로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받고, 진서파는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신임을 받았다. 교묘한 속임수는 졸렬한 진실만 못한 법이다. (巧詐不如拙誠)
교사巧詐가 졸성拙誠보다 못하다는 이 말의 뜻을 나는 세상 사람들 중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는 의미로 읽고 있습니다. 아무리 교묘하게 꾸미더라도 결국 본색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거짓으로 꾸미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지요. 나는 『한비자』의 이 한 구절만으로도 한비자는 매우 정직하고 우직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 문장은 뛰어났지만 말은 더듬었다는 기록도 그것을 뒷받침해줍니다. 동문수학한 이사의 속임수에 빠져서 죽임을 당한 것만 보아도 그가 펼친 이론과는 반대로 한비자는 오히려 우직한 졸성의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전」편問田篇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계공堂谿公이 한비자에게 충고합니다.
“오기吳起와 상앙商? 두 사람은 그 언설이 옳고 그 공로 또한 대단히 컸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오기는 사지가 찢겨 죽었고 상앙은 수레에 매여 찢어져 죽었습니다. 지금 선생이 몸을 온전히 하고 이름을 보전하는 길을 버리고 위태로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걱정됩니다.”
이 충고에 대한 한비자의 대답이 그의 인간적 면모를 엿보게 합니다. 동시에 법가 사상의 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한비자의 답변은 그 요지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선왕의 가르침을 버리고 (위험하게도) 법술을 세우고 법도를 만들고자 하는 까닭은 이것이 백성들을 이롭게 하고 모든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지럽고 몽매한 임금(亂主暗上)의 박해를 꺼리지 않고 백성들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지혜로운 처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한 몸의 화복禍福을 생각하여 백성들의 이익을 돌보지 않는 것은 탐욕스럽고 천박한 행동입니다. 선생께서 저를 사랑하여 하시는 말씀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저를 크게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림이든 노래든 글이든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결정적인 것은 인간의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비자의 이러한 인간적 면모가 적어도 내게는 법가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