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함께하는 즐거움
孟子見梁惠王 王立於沼上 顧鴻鴈麋鹿 曰賢者亦樂此乎
孟子對曰 賢者而後樂此 不賢者雖有此 不樂也
詩云 經始靈臺 經之營之 庶民攻之 不日成之
經始勿亟 庶民子來 王在靈囿 麀鹿攸伏
麀鹿濯濯 白鳥鶴鶴 王在靈沼 於牣魚躍
文王以民力爲臺爲沼 而民歡樂之 謂其臺曰靈臺 謂其沼曰靈沼
樂其有麋鹿魚鼈 古之人與民偕樂 故能樂也
湯誓曰 時日害喪 予及女偕亡 民欲與之偕亡
雖有臺池鳥獸 豈能獨樂哉 ―「梁惠王 上」
『맹자』는 문장이 길어서 일일이 해석하는 방식보다는 전체의 의미를 중심으로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예시문은 1장에 이어지는 글로서 여민락장與民樂章으로 불립니다. 여민락與民樂은 백성들과 함께 즐긴다는 뜻입니다. 맹자의 민본民本 사상이 표명되어 있는 장입니다. 물론 맹자의 민본 사상은 「진심 하」盡心下에 분명하게 개진되고 있습니다. 잠시 그 내용을 먼저 읽어보지요.
(한 국가에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은 백성이다. 그 다음이 사직社稷이며 임금이 가장 가벼운 존재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면 천자가 되고 천자의 마음에 들게 되면 제후가 되고 제후의 마음에 들게 되면 대부가 되는 것이다. 제후가 (무도하여)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그를 몰아내고 현군賢君을 세운다. 그리고 좋은 제물祭物로 정해진 시기에 제사를 올렸는데도 한발旱魃이나 홍수의 재해가 발생한다면 사직단社稷壇과 담을 헐어버리고 다시 세운다.
임금을 바꿀 수 있다는 맹자의 논리는 이를테면 민民에 의한 혁명의 논리입니다. 맹자의 민본 사상의 핵심입니다. 임금과 사직을 두는 목적이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임금을 몰아내고 현인을 새 임금으로 세울 수 있음은 물론이고 사직단도 헐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사직단은, 비유한다면 로마교황청입니다. 그로부터 임금의 권력이 나오는, 당시 최고의 종교적 권위입니다. 그러한 권위와 성역마저도 가차 없이 헐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맹자의 민본 사상입니다.
「진심 하」에 표명된 민본 사상이 정치권력의 구조에 관한 것이라면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이 여민락 사상은 그러한 권력구조에 더하여 문화적 민본주의, 정서적 민본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민본 사상의 보다 발전된 내용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맹자 사상의 핵심을 의義라고 할 경우 그 의義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이 여민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민락장의 예시문을 함께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맹자가 양혜왕을 찾아뵈었을 때, 왕은 연못가에 서서 고니와 사슴 등 갖가지 새들과 짐승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현자賢者들도 이런 것들을 즐깁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현자라야만 이런 것들을 즐길 수 있습니다. 현자가 아니면 비록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즐길 수 없습니다. 『시경』詩經(대아大雅 「영대」靈臺)에 다음과 같은 시가 있습니다.
영대를 지으려고 땅을 재고 푯말을 세우니
백성들이 달려와 열심히 일해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완성되었네.
왕께서 서두르지 말라고 하셨지만 백성들은 부모의 일처럼 더 열심이었네.
왕께서 동산을 거니시니, 암사슴들은 살지고 윤이 나고 백조는 털이 희디희어라.
왕께서 못가에 이르시니 아! 연못에 가득한 물고기들 뛰어오르네.
문왕文王은 백성들의 노역으로 대를 세우고 못을 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모두 그것을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했으며 그 대를 영대靈臺, 그 못을 영소靈沼라 부르면서 그곳에 사슴과 물고기와 자라들이 살고 있음을 즐거워했습니다. 이처럼 옛사람들은 그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했기 때문에 제대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夏나라의 폭군 걸왕桀王의 경우에는 이와 반대입니다.) 『서경』書經 「탕서」湯誓에는 (백성들이 걸왕을 저주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저놈의 해 언제나 없어지려나
내 차라리 저놈의 해와 함께 죽어버렸으면
만약 백성들이 그와 함께 죽어 없어지기를 바랄 지경이라면 아무리 훌륭한 대와 못, 아름다운 새와 짐승들이 있다고 한들 어찌 혼자서 그것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맹자의 유명한 여민동락與民同樂 사상입니다. 주자가 주를 달아서 강조하고 있듯이 “현자라야 즐길 수 있다”(賢者而後樂此)고 한 대목이 이 장의 핵심입니다. 현자는 여민동락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즐거움이란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점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즐거움(樂)과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행복의 조건 즉 낙樂의 조건은 기본적으로 독락獨樂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하여 무심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날의 일반적 정서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과 닮는 것을 피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성에 가치를 두려고 하지요.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개인적 정서의 만족을 낙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이 얼마나 한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공감이 감동의 절정은 못 된다고 하더라도 동류同類라는 안도감과 동감同感이라는 편안함은 그 정서의 구원久遠함에 있어서 순간의 감동보다는 훨씬 오래가는 것이지요. 마치 잉걸불처럼 서로가 서로를 상승시켜주는 것이지요. 유행流行이 바로 동류와 동감의 현실적 표현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정서입니다. 이를테면 소외의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지요. 독락의 정서는 오히려 개별 상품이 추구하는 디자인의 차별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여기서 길게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오늘날 낙의 보편적 형식은 독락입니다. 여민락과 같이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눌 때의 편안함이나 연대 의식은 결코 즐거운 것이 못 되지요. 그것이 즐거움 즉 낙이 되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것이지요. 평상심平常心이나 낮은 목소리가 주목받을 수 없는 것 역시 오늘 우리의 삶이고 우리들의 정서라 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서경』 「탕서」편을 인용하여 걸왕을 독락의 예로 들고 있습니다. 걸왕은 일찍이 “내가 천하를 얻은 것은 하늘에 해가 있는 것과 같으니 저 해가 없어져야 내가 망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그 말을 풍자하여 “저놈의 해와 함께 죽어버렸으면” 하고 노래한 것이지요. ‘탕서’湯誓는 탕왕의 서약이란 뜻으로 포악한 하나라의 걸왕을 치기위하여 출진하기에 앞서 선언한 맹세문입니다. 백성들의 민심을 꿰뚫고 있는 것이지요.
『맹자』의 문장은 길어서 원문을 많이 다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맹자』는 한문학의 교범이라고 할 정도로 매우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맹자』의 내용만이라도 가능하면 많이 소개하려고 합니다. 여민락장에 이어서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의 원전이 되고 있는 다음 장을 읽어보기로 하지요.
양혜왕은 자신의 치적治積을 자랑했습니다. 흉년이 들면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일하게 하고 곡식을 풀어 구휼救恤하는 등 백성들을 보살폈는데도, 그렇지 않은 이웃 나라의 백성들 수가 줄지도 않고 자기 나라의 백성이 늘지도 않는 까닭을 맹자에게 물었지요.
맹자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전쟁을 할 때, 진격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고 칼날이 부딪치면 갑옷을 벗어던지고 무기를 끌면서 달아나는 자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백 보를 달아나 멈춘 자도 있고, 오십 보를 달아나서 멈춘 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십 보 달아난 자가 백 보 달아난 자를 보고 겁쟁이라 비웃는다면 어떻습니까?”
왕이 대답했습니다.
“안 되지요. 백 보는 아니지만 그 역시 달아나기는 마찬가지지요.”
맹자가 말했습니다.
“왕께서 그러한 이치를 아신다면 왕의 백성들이 이웃 나라 백성들보다 더 많아지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농사철을 놓치지 않으면 곡식은 먹고도 남음이 있으며, 촘촘한 그물로 치어稚魚까지 잡아버리지 않는다면 물고기는 먹고도 남을 만큼 많아질 것입니다. (봄여름같이) 초목이 자라는 시기에 벌목을 삼가면 목재는 쓰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곡식과 물고기와 목재가 여유 있으면 백성들은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기에 아무런 유감이 없을 것입니다.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데 유감이 없게 하는 것 이것이 곧 왕도 정치王道政治의 시작입니다. 다섯 묘畝 넓이의 집 안에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친다면 쉰 살이 넘은 노인들이 따뜻한 비단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닭, 돼지, 개 등의 가축을 기르게 하여 (새끼나 새끼 밴 어미를 잡아먹지 못하게 하여) 그 때를 잃지 않게 한다면 일흔이 넘은 노인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한 집마다 논밭 백 묘씩 나누어주고 (전쟁 등으로) 농사철을 빼앗지 않는다면 한 가족 몇 식구가 굶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 마을마다 학교를 세워 교육을 엄격히 하고 효도와 공경의 도리로써 백성을 가르치고 이끌어준다면 (젊은 사람들이 물건을 대신 들어주기 때문에) 반백이 된 노인들이 물건을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다니는 일은 없게 될 것입니다. 노인들이 따뜻한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일반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게 하고서도 천하의 왕이 될 수 없었던 자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풍년이 들어 곡식이 흔한 해에는 개와 돼지가 사람들의 양식을 먹고 있는데도 나라에서는 이를 거두어 저장할 줄 모르고, 흉년에 굶어죽은 시체가 길거리에 뒹굴고 있어도 곡식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휼할 줄 모릅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서도 ‘이것은 내 탓이 아니라 흉년 탓이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고 ‘이는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 이 칼이 죽인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만약 왕께서 죄를 흉년 탓으로 돌리지 않으신다면 천하의 모든 백성들은 왕에게로 귀의해올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읽어보도록 하지요. 어떻습니까? 우선 맹자의 논리 전개 방식과 그 비유의 적절함이 어떻습니까? 문장의 간결함, 흐름의 유려함, 대비의 명쾌함, 그리고 한문 특유의 농축미濃縮美가 서로 어울려 이루어내는 격조를 나로서는 생생하게 살려낼 방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