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목 같은 사람들
농촌 사람들은 리, 동 소비조합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이라도 거기서 구입하지 않고 대개 장날을 기다린다. 시골 사람들이 장날을 기다려 장을 보러 가는 것은 꼭 살 물건이 있어서거나 살 돈을 장만해서가 아니다. 그야말로 장[市]을 '보러' 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돈을 쥘 필요는 없다. 시골에서 아쉬운 것이 어찌 하나 둘일까마는 오랜 세월을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오는 동안 웬만한 필요쯤이야 으레 참을 줄 아는 숙명 같은 미덕(?)을 키워온 것이다. 그래서 장날이 오면 돈이 없어도 그리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장을 '보러'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새옷들을 꺼내 입고 고무신까지 걸레로 잘 닦아서 아침 일찍 길들을 나선다. 그래서는 고작 물이 진 생선 몇 마리를 들고 돌아오지만, 저마다 제법 푸짐한 견문들을 안고 돌아오는 것이다. 이 견문들이 오래오래 화제에 오르내리며 무수히 반추되는 동안에 그것은 시골의 '문화'가 되어간다. 이 화려한 견문으로 해서 자신들의 빈한한 처지를 서러워하는 사람도 없지만 그 처지를 개조하려는 사람도 없다. 싸고 좋은 물건이 많이 생산되어서 참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비록 자신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무척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메마르고 자그마한 생활이지만 그들은 이것을 소[牛]처럼 되씹고 되씹어 반추함으로써 마치 흙내음처럼 결코 부패하지 않는 풋풋한 삶의 생기로 만들어 살아가는 것이다.
농촌 아이들은 참 많이 죽는다. 시골의 어머니들은 보통 여남은 명의 아이를 낳지만 그중 네댓 명 정도만 남고 다 죽는다. 약한 놈은 '일찌감치' 죽어버리고 강한 놈만 살아서 커가는 것이다.
농촌에서는 강한 아이만이 어른이 될 수 있다. 살아남은 그 어른들을 보고 성내(城內) 사람들은 농촌 사람들이 무병(無病)하고 건강하다고 말한다. 맑은 공기에 산수, 일광이 좋아서 농촌 사람들은 무척 튼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골 어머니들이 흘린 그 숱한 눈물을 모르는 것이다.
농촌의 노인들이 도회지에 가면 전부 환자가 된다. 그것은 교통사고로 아스팔트 위에서 부상을 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시골에서는 질병이 인내되는 데에 반하여 도회지에서는 치료되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 사람들은 흡사 초목 같다. 어려서는 푸성귀를 솎아내듯 약한 놈들을 솎아버리고 늙어서는 수목처럼 모든 질환의 고통으로부터 감각의 문을 닫아버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