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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의 결혼
형님께


형님의 결혼은 저에게도 무척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다만 한 장의 엽서를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 한 장의 엽서를 앞에 놓고 허용된 여백에 비해서 너무나 많은 생각에 잠시 아픈 마음이 됩니다. 이 아픔은 제가 처하고 있는 상황의 표출인 동시에 또 제가 부상(浮上)해볼 수 있는 기쁨의 상한(上限)이기도 합니다.
이는 형님의 결혼식에 결석한 동생이 뒤늦게 엽서를 적음으로써 처음으로 느끼는 그런 아픔이 아닙니다. 이것은, 서울의 외곽, 비탈진 세가(貰家)를 살아오면서도 내내 격려하고 격찬해주시던 일체의 배려에 생각이 뻗칠 때마다 '형'이라는 일상의 '이미지'를 넘어서 농밀한 감정을 비집고 올라오던 뜨거운 회한인 것입니다.
제가 수형생활을 통하여 새로이 지니게 된 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흡사 '싯다르타'의 그것처럼 동일한 문제를 여러 차례에 걸쳐서 거듭 생각하는 버릇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비롯하여 형님과 동생 그리고 제가 겪었던 많은 사람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그것은 면벽(面壁)이나 불면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회상의 형식으로써 그저 돌이켜보는 것에 불과하지만 저는 이러한 것에 의하여 일련의 새로운 판단을 가지게 된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형님에 관한 기억 중에서 우선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를테면 저와 형님과의 관계도, 다른 대부분의 형제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거의 기계적이고 습관화된 대화에 의해서 형성되어 왔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비록 애정과 이해의 기초 위에서 비로소 가능한 하나의 미덕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창의와 노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별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기계적이고 습관화된 대화는 인간관계의 정체를 가져오며 인간관계의 정체는 관계 그 자체의 퇴화를 가져오며 필경은 양 당사자에게 오히려 부담과 질곡만을 안겨주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형님과의 관계가 지금 말씀드린 것과 같은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기서는 단지 기계적이고 습관화된 대화 그리고 그것의 발전된 형태로서의 정체는 특히 경계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할 뿐입니다.
더욱이 부부라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항상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서 이것이 배제되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만일 중용과 관용을 비교적 중시하는 편인 형님의 그 장자(長子)적 성격 속에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씀드린다면……? 그러나 형님에게는 원만하고 밝은 가정을 영위해나감에 충분한 이해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형님의 결혼은 비단 형님에게만이 아니라 가정 전반에 있어서도 현저한 발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물론, 이 발전(근대화라면 좀 서투른 표현입니까?)의 질과 양 그리고 속도는 형수님의 역량에 크게 의존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편지는 형수님께서도 열람하시리라 짐작됩니다만 다음에 형수님 앞으로도 서신을 드리겠습니다. 형수님께 드리는 뜨거운 인사를 여기에 적는 바입니다. 형수님의 건강과 노력을 기원합니다.
저 역시 건강합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창 밖에는 그런대로 5월의 녹향이 심심치 않습니다. 어머님께서 편찮으시지나 않은지 꿈에 보이시기도 합니다.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

 

 

1971.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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