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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요설(饒舌)
계수님께


교도소의 문화는 우선 침묵의 문화입니다.
마음을 열지 않고, 과거를 열지 않고 그리고 입마저 열지 않는, 침묵과 외부와의 거대한 벽이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쓸쓸히 차단하고 있습니다. 두드려도 응답 없는 침통한 침묵이 15척 높은 울이 되어 그런대로 최소한의 자기를 간수해가고 있습니다.
교도소의 문화는 또한 요설(饒舌)의 문화입니다.
요설은 청중을 미아로 만드는 과장과 허구와 환상의 숲입니다. 그 울창한 요설의 숲 속에 누가 살고 있는지 좀체 알 수 없습니다. 숲 속에 흔히 짐승들이 사람을 피해 숨어살듯이 장광설(長廣舌)은 부끄러운 자신을 숨기는 은신처이기도 합니다.
침묵과 요설은 정반대의 외모를 하고 있으면서도 똑같이 그 속의 우리를 한없이 피곤하게 하는 소외의 문화입니다. 나는 이러한 교도소의 문화 속에서 적지 않은 연월(年月)을 살아오면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침묵을 열고 요설을 걷어낼 수 있는 제3의 문화를 고집하고 있는 많지 않은 사람 속에 서고자 해왔습니다.
불신과 허구, 환상과 과장, 돌과 바람, 이 황량한 교도소의 문화는 그 바닥에 짙은 슬픔을 깔고 있기 때문이며, 슬픔은 그것을 땅 속에 묻는다 할지라도 '썩지 않는 고무신', '자라는 돌'이 되어 오래오래 엉겨붙는 아픔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제3의 문화는 침묵과 요설의 어중간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믿습니다. 버리고 싶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을 정갈히 씻어 볕에 너는 자기 완성의 힘든 길 위의 어디쯤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무슨 이름 있는 날이 되면 징역을 처음 살거나 바깥에 가족을 둔 애틋한 마음과, 징역을 오래 살아 메마르고 비정해진 마음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잠시 의아하게 상대편을 바라보다가 이내 상대의 마음을 배우게 됩니다.

 

 

한 해 동안 보내주신 계수님의 수고에 대한 감사를 이 구석에 써둡니다. 건강과 발전의 새해를 기원합니다.

 

 

1980년 세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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