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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형수님께


얼마 전에 매우 크고 건장한 황소 한 마리가 수레에 잔뜩 짐을 싣고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이 '끝동네'의 사람들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관심으로 공장 앞이나 창문에 붙어서 열심히 바라보았습니다.
더운 코를 불면서 부지런히 걸어오는 황소가 우리에게 맨 먼저 안겨준 감동은 한마디로 우람한 '역동'이었습니다. 꿈틀거리는 힘살과 묵중한 발걸음이 만드는 원시적 생명력은 분명 타이탄이나 8톤 덤프나 '위대한 탄생'에는 없는 '위대함'이었습니다. 야윈 마음에는 황소 한 마리의 활기를 보듬기에 버거워 가슴 벅찹니다.
그러나 황소가 일단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서자 이제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 우람한 역동 뒤의 어디메에 그런 엄청난 한(恨)이 숨어 있었던가. 물기어린 눈빛, 굵어서 더욱 처연한 두 개의 뿔은, 먼저의 우렁차고 건강한 감동을 밀어내고 순식간에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잔잔한 슬픔의 앙금을 채워놓습니다.
황소가 싣고 온 것이 작업재료가 아니라 고향의 산천이었던가. 저마다의 표정에는 "고향 떠난 지도 참 오래지?" 하는 그리움의 표정이 역력하였습니다. 이 '끝동네'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고향을 떠나 각박한 도시를 헤매던 방황의 역사를 간직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황소를 보는 마음은 고향을 보는 마음이며, 동시에 자신의 스산한 과거를 돌이켜보는 마음이어서 황소가 떠나고 난 빈자리를 그저는 뜨지 못해 하였습니다.
황소는 제가 싣고 온 짐보다 더 큰 것을 우리들의 가슴에 부려놓고 갔음에 틀림없습니다.
편지 못 읽을 우용이, 주용이에게는 황소 그림을 보냅니다. 서울의 어린이들에게 황소란 달나라의 동물만큼이나 아득한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더욱 바쁘실 형님, 형수님 건강을 빕니다. 깊은 밤에는 별이, 더운 여름에는 바람을 거느린 소나기가 있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들의 위안입니다.

 

 

1982. 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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