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상 게시판

청구회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처음처럼
이미지 클릭하면 저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숲속의소리

댓글 1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문제는 술이였다.
깨지듯 아픈 머리 때문에 새벽 1시에 눈을 뜬 나의 머리 속에 제일 먼저 떠 오른 것은
깊은 속 눈썹 아래로 그렁그렁 눈물을 흘리던 첼로 선생의 얼굴이였다.
그리고 내가 울고 있는 첼로 선생에게 열심히 말을하고 있었다.
'가라앉을 때는 힘들어도 가만히 두어라... 끝까지 내려가야만 떠 오를 수 있다...
그러니 힘들어도 발버둥치지 말고 바닥까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라...'
그렇게 말을 했던 것 같기도하고.....
'으...이 미친년이 또 무슨 짓을 했지...'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앉았다.
내가 그 사람의 삶을 살기 전에는 함부로 주접을 떨지 말고자 그렇게 다짐했건만
입이 보살이라고 또 무슨 주둥이를 놀려 첼로 선생을 울렸단 말인가....
그리 생각하며 옆을 보니 첼로 선생은 그 깊은 속 눈썹을 얼굴 하나에 가득 감고
조용히 자고 있었다.
뿌이리는?? 놀라 다시 방안을 살펴보니, 뿌이리 역시 침대 아래에 이불을 깔고
쥐 죽은 듯이 누워 자고 있었다.
우선 안심을 하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창문가로 갔다.
멀리 광안대교가 보이며 바다 앞으로 잠을 잊은 젊은이들의 소리가 소란스럽다.
여기가 바다였지...그리고 나는 어제 금정산을 오르기 위하여 부산으로 왔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베이스.
위의 현악기들은 소리의 높이 순서이기도 하고 악기의 크기 순서이기도하다.
바이올린이 머리에서 나는 소리라면 비올라는 목 쯤이겠지....
그리고 첼로는 가슴, 베이스는 배에서 나는 소리쯤 될 것이다.
15년 전 나는 첼로가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하다는 말에 솔깃하여
무식한 나는 나의 체구를 생각하지 않고 덥석 첼로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 때는 지금보다 살비듬이 훨씬 없던 때라서 나의 몸무게가 40키로를 나갈 때였다.
나는 거의 나의 체구만한 악기를 낑낑대고 메고 다니며 첼로를 배웠다.
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나의 체력의 한계를 여실히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작은 곡 하나를 연주하고 나면 힘이 들어 대자로 쓰러져 한 참을 쉬어야 정신을 차리곤 했다.
포기가 빠르고 매사에 낙천적인 나는 주저없이 첼로를 버리고 대신 첼로를 배워주는 선생을 얻은 것에 만족하며 기뻐했다.
신비스러울 만큼 긴 속눈썹에 늘씬한 체구, 주둥이만 살은  나와 달리 말이 없고
조용조용한 성품의 그녀에게 나는 곧 매료 되었다.
우리는 그 후 세상에 둘도 없는 언니 동생이 되어 모든 것을 함께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미국으로 늦깍이 유학을 떠나게 되고.....
그 후 10년간의 걸친 그녀의 피눈물 나는 유학생활.....
그러다 박사 학위를 눈 앞에 두고 인대의 손상으로 꿈을 접고 돌아와야 했던 그녀....
작년에 그녀가 고국으로 돌아 온 후 딱 한 번 만을 그녀를 만났던 나는 더 이상 그녀를 만날 용기가 없었다.
정작 그녀는 자신의 일에 무심한 듯 해보였지만 내가 더 아파 했으므로.....
그러다 어느 날 단 한 줄에 메일을 받고 나는 금정산에 함께 갈 결심을 했던 것이다.
'언니, 언니는 사는 것이 재미있어요? 나는 사는 것이 재미없어요.'
그녀의 성품으로 보아 이렇게 메일을 보낼 정도라면 이 것은 위험수위였다.
나는 서둘러 창작강의를 같이 듣는 뿌이리와 함께 금정산에 갈 계획을 세웠다.
그 모든 것은 더불어 숲의 유천님의 금정산 소개가 큰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대전에 사는 첼로선생을 태워 가기 위해 고속전철로 갈 계획을 포기하고 피곤해도
자동차를 가지고 가기로했다.
창작강의가 끝난 후 뿌이리와 나는 서로 어디서 만날 것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그 때 선생님이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지으시던 표정은 지금도 압권이다.
'명아야, 너 뿌이리와 함께 여행가려고? 이건 해도 너무 했다...아무리 요즘 연하커플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잖니?'
완전히 그런 표정으로 우리들 대화를 듣고 계시다 못 참겠다는 듯 한 말씀 하셨다.
"너희들 둘만 여행 가려고?"
우리는 실실 웃으며 한 술 더 떴다.
"녜. 밀월여행 갑니다."
멍하게 쳐다보는 선생님을 뒤로 하고 우리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범어사'가 있는 금정산을 찾은 우리는 이건 절이 아니라 '주식회사' 규모인
것에 놀랐다.
"얘, 이건 완전히 부르조아 아니니?"
나의 말에 뿌이리와 첼로 선생도 동감이라는 듯,
"언니, 여긴 언니가 살고 있는 곳보다 더 번화하고 길도 좋은데요. 오히려 언니가
살고 있는 곳이 더 절 같아요."
"글쎄...나도 그런 생각이 슬슬 드는구나...아스팔트보다 더 비싼 붉은 아스콘을 깔고
여기 청련암은 암자가 아니라 웬만한 사찰보다 더 큰 규모구나..."
이른 새벽에 전화를 걸어 부산에 비가 온다며 조심해서 내려오라고 신신당부를 하던 사려 깊은 유천 나무님을 뵙기 위해 청련암으로 들어서며 우리는 놀라고 있었다.
유천 나무님을 처음 본 순간,
'도대체 쓸만한 남자들은 왜 다들 산속에 들어와 있는거지,대부분 정작 나 같이 쓸모없는 인간들만 속세에 우글거리니 남북통일이 안되지.'그런 생각을 하며 인사를 했다.
우리는 유천 나무님의 정성어린 차를 대접 받으며 내일 새벽 금정산 안내를 해 주실
고마운 약속까지 받고 광안리로 향했다.
안타깝게도 광안리 불꽃축제는 막을 내려 보지 못했다.
광안대교와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방을 잡고 우리 셋은 모텔에서 소개 해 준 회집에 앉아 소주와 회를 먹었다.
분위기에 취해 오래만에 소수 한 병을 마신 나는 광안리 백사장을 뛰며 완전
'미친년'이 된 모양이다.
첼로선생도 모자라 나의 아들 딸에게 전화를 걸어 다들 울렸던 모양이다.
'으그..미친년...구제불능....내가 술을 마시면 이제 사람이 아니다....'
중얼거리며 물을 마시려 냉장고 문을 여니 물대신 맥주가 그득하다.
"이거 누가 사왔니?"
술이라면 지겨워 죽겠는데 어느 미친 것이 이 술을 다 산거야,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선배가 어제 사라고 해서 샀잖아요."
창작강의를 같이 듣는 뿌이리의 대답에 나는
역시 나였구나..하는 생각과 동시에 냉정하게 말을 뱉어 버렸다.
"나는 술만 먹으면 미친년 되니까, 다음부터는 그런 말 무시해 버려."
"네??"
뿌이리의 벙찐 얼굴이 나를 쳐다본다.
첼로선생은 익히 나를 잘 알고 있으므로 해맑은 웃음을 짓고 놀라 벙쪄 서 있는
뿌이리를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다.
'으...미친년..못말려....구제불능...'
내 머리를 흔들며 나는 세수도 하지 못하고 금정산으로 향했다.

새벽 금정산은 추웠다.
우리 집 뒷동산 같다며 호기를 부리던 나는 금방 내 말을 번복하며
"스님..쉬었다 가요...죽겠어요...으...조금만 쉬어요..."
그렇게 유천 나무님에게 애걸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어제 먹던 술기운이 남아 나를 괴롭혔다.
이제는 정말 술을 먹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에고..나도 이제 호기를 부릴 나이는 지났구나..나도 늙었구나....'
그렇게 궁시렁 거리며 오르는 금정산은 온화한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온화하면서도 그 가슴에 여러가지 색채를 안고 있었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금정산을 오르며 본 여명과 나무가지 사이에 붉은 해오름....
후덕한 인품으로 우리를 맞아주던 바위 위에 새겨진 마애석불...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소나무 숲에 솔가루를 가득 안고 누워있던 대지....
낮선 이국 땅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품에 안 듯 우리를 품어주던 포근한 땅들.....
아주 깊은 산 속 바위 위에 신비스런 샘물을 숨기며 우리를 향해 수줍게 웃던 금샘....
정상에서 바람과 함께 아우성치며 우리를 맞아주던 억새풀들.....
가끔씩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며 피흘리며 서 있던 붉은 단풍잎들.....
하산 길에 졸졸졸 안타까운 물소리로 우리를 떠나보내던 금정산의 조용한 계곡.....

그렇게 우리는 금정산을 만나고 떠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못말리는 이 여자가 억새풀 밭에 서서 스님의 팔장을 끼며 사진을
찍자고 고문을 한 것이다.
유천 나무님은,
'아..이 팔은 좀 놓고 찍지...'하며 난처해 하였다.
"스님, 스님은 남자 아니잖아요?"하며 나는 더 짖궂게 굴었다.
그러면서 한 술 더 떠서 힘들게 우리를 안내한 유천 나무님에게
"스님, 속세를 떠나 성불 한다는 것이 어쩌면 도피이자 가장 에고이스트 아닌가요?
정말 용감한 사람은 속세에서 그 짐을 지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게 또 나는 나의 못말리는 주둥이를 나불거리며 묻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으.....명아야..제발 입 좀 다물어라..이 미친년...시간이 바쁜 틈을 내어
어렵게 산을 안내 해 주었더니 고맙다는 소리는 못할 망정 이 무슨 망발이냐...'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 자신을 욱박지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미 '말'은 나의 의지를 박차고 나의 '입'을 떠난 뒤였다.
이제 주워 담을 수도 없다.
그런데 스님은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에고이스트지요."
"......"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산을 내려오고 나는 유천 나무님과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금정산과도 작별을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운전을하며 나는 순간순간 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잠시 차를 갓길에 세워놓고 무겁고 피곤한 눈을 붙였다.
다른 차들의 질주의 속도에 내 의식이 놀라 깰 때까지....

집에 돌아오니 아들이 뛰어나와 반갑게 맞는다.
"엄마, 나 피곤해도 엄마와 함께 갈걸 그랬어. 엄마의 전화 받고
죄의식 들어서 혼났어."
"엄마 그 때 술마시고 미친년 되서 그렇게 말했으니까
신경쓰지 마. 그리고 함께 갈 필요없어. 너 피곤한데,
그런 소리 신경쓰지 말고 무시해 버려."
"그래도 엄마,술을 마시면 속에 있는 소리가 나오잖아.
아무상관 없는 소리가 나오겠어?"
"엄마는 아무상관 없는 소리가 나와. 그러니 무시 해."
그렇게 나는 금정산의 여행가방을 내려놓고 있었다.

이 기회를 통해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색채의
금정산을 안내해 주신 부산 범어사 청련암에 계시는
유천나무님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부ㅡ디
저의 철없고 가벼운 망발들은 다 무시하고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565 어린이들이 '일'을 냈다. - 발상의 전환이 자전거도로 만들었다 1 레인메이커 2006.11.18
1564 지난주에 다녀온 금강산 입니다. 6 이명구 2006.11.17
1563 10월 열린모임 단체사진 김달영 2006.11.17
1562 [re] 10월 열린모임 사진 뚝딱뚝딱 2006.11.20
1561 [re] 10월 열린모임 사진-누가 소나무와 함께 측백나무를 아시나요 유천 2006.11.22
1560 [W] 스위스 FTA, 4% 농민을 살려라 1 혜영 2006.11.17
1559 문학....그 이중의 얼굴 2 박 명아 2006.11.17
1558 신문에 또 더불어숲 나무의 기사가^^ -조은아- 1 장지숙 2006.11.16
1557 아바나(하바나) 미국 대표부 앞의 사진 1 장은석 2006.11.16
» 금정산을 다녀와서.... 10 박 명아 2006.11.14
1555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11 조원배 2006.11.13
1554 감포의 명물: "아메리카" 5 문봉숙 2006.11.11
1553 선생님의 11月 편지들: 가을의 끝자락에서 1 문봉숙 2006.11.11
1552 별표와 동그라미와 사랑마크 2 김성숙 2006.11.10
1551 새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있습니다. 1 레인메이커 2006.11.09
1550 외로움... 11 김동영 2006.11.08
1549 자식이 뭔지........ 20 박 명아 2006.11.08
1548 알림/송정복-김선희 나무님 결혼을 함께 축하해 주세요~ 9 문용포 2006.11.07
1547 전주 더불어 숲에서 있었던 일 2 김성숙 2006.11.07
1546 첫눈이 왔습니다 1 박 명아 2006.11.07
Board Pagination ‹ Prev 1 ...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 167 Next ›
/ 16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