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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7.01.02 21:57

숲, 친구, 광장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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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던 차에,
비슷한 유감을 이야기한 친구 글을 읽게 되어
표현을 빌려, 씁니다.
그러니까 표절이지요....흠흠 ..


1. 숲

아주 어릴 때부터 숲 속에 한 간 집을 하나 갖고 싶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제가 좋아하는 그림이나 시를 벽에다 걸어놓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무엇보다도 제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 앉아 두런거리는,
그래서 늘 하루에 열 번 정도는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런 카페 같은 집 말입니다.

적당히 어두워서 더러운 것들은 눈에 뜨이지도 않고
적당히 좁아서 무서운 것들이 몰래 숨어 있을 곳도 없고
탁자마다 노란 촛불이 생각 잘 안 나는 추억처럼 흔들리고
깨기 싫은 꿈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그런 방 하나만 가진 집.

낮이면 되는 대로 쏘다니는 바람이 문에 달린 종을 울리고
밤이면 달빛이 나무벽의 결들을 섬세하게 비추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친구들만 드나드는, 그런 카페 말입니다.

나이 마흔 정도 돼서
책이나 읽으면서 노래나 들으면서 게으르게 사는 꿈이지요.

하지만 이 건 세상을 뒤엎는 것 보다고 이루기가 어려운 꿈이었습니다.
바람을 피하는 것은 바람에 맞서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었지요.

게다가 아직 나는 내가 걸어본 세상의 어디에서도
나의 집이 들어가 있을 자리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여기저기 흥정하는 소리 속에서 돌아오는 피로한 밤마다,
그 꿈을 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삶을 버려 가면서도 꿈은 버려지지 않는군요.
아침이면 어느새 그것은 또 제 옆에 누워서
그렇듯 천진한 표정으로 저와 함께 눈뜨는 것이었습니다.

모진 것은 삶이 아니라 꿈인 것 같습니다.


2. 친구

오래 전에 헤어진 이 친구는 나와 달리, 아픔이나 갈등 같은 것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존심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친구를 어쩔 줄 모르게 만드는 이기적인 짓이라고 생각해서 였다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 친구는 내게 이런 저런 것을 말해보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충고하거나 권유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냥 같이 있어주는 거죠. 배고프지 밥 먹을래 라든지, 이 노래 들어봤어 라든지, 우리 거기 함 가 볼래 라든지, 그저 그런 말들을 할 뿐이었죠. 나와는 달리 이해하는 말들로 절대로 상처를 덧내지 않았습니다.

친구와 달리, 저는 말이란 도구의 유한성이 비록 오해를 낳지만,
말을 끝까지 할 수 만 있다면, 극복할 수 있는 무엇이다고 믿었습니다.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지요.
말이 낳은 오해가 말 탓도 아니였다는 허망한 깨달음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사실 그리 오래된 옛날도 아닌데, 하지만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그런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젠 나하고 그러고 있어 줄 친구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관계란 어쩌면 젊음이라는 인생의 빛나는 시기에만 주어지는 특권이었을까요?  
행복의 원형은 늘 과거에만 있다면 인생이란 정말 얼마나 기가 막힌 것입니까. 어쩌면 우리는 기껏 그리워할 과거를 만들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추억에 사는 모양새를 싫어하던 저도 이제 상상으로 위로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또는 차 안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누워 있곤 합니다. 그리고 비몽사몽 착각하면서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 또는 대학교 때의 그 친구들을 옆에 눕힙니다. 그 순간 저는 절대로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가 안 보이는 건 당연한 것이지요. 여긴 어두우니까요. 얘깃소리가 안 들리는 것도 당연한 것이지요. 어차피 우린 별로 많은 말을 안했으니까요.


3. 광장

'광장'에 대해 어떤 말을 들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넓은 광장에는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차 저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무엇에 열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악기를 켜고 노래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산책을 하고 키스를 하고 새에게 먹이를 주고.. 가끔은 다리로 목을 감고 있거나 물구나무를 선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마다 다른 짓들을 하고 있지만 아무도 이상한 표정으로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마다 하고 싶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가 혹 얼굴이 마주치면 그냥 빙그시 웃어주거나 절대로 오래 가지 않는 짧은 대화를 나누고는 다시 자신이 하고 있던 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에 열중하고 있을 뿐 누구를 방해하는 것도 누구에게 방해받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저마다의 밀실이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엇도 자신을 방해하지 못하게 굳센 벽으로 차단된 밀실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렇게 빽빽히 모여있다는 것입니다. 가끔씩 서로 어깨를 부딪고 말을 걸어 같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주 밤이 늦어서야 건들거리며 집으로들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제 마흔을 넘기고도 한참 지났습니다. 성공한 40대들의 얘기를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동기들도 바로 지금 이 순간 인생의 성패를 결정짓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부끄러움이나 소외감 같은 것을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됩니다. 무엇이든 간에 사회로 뚫려있는 길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구나 하는.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그냥 말 없이도 맘이 통하는 사람 한 둘과 앉거나 누워서, 말없는 어색함도 없이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겁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욕망인가 하면서요.

이 소망은 이율배반적인 것입니다.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냥 느낌에 몰두하고 싶다는 것인데,  그런데 '같이 앉아'라니, 이건 또 무슨 말입니까. '같이'라는 말은 바로 간절한 소통에의 갈망 아니겠습니까. 소통하지만 방해받지 않는 것, 자유롭지만 같이 있어야 하는 것, 그러니까 제가 원하는 것은 자유와 소통이 공존하고 있는 그 광장을 닮아 있군요.

저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60년대에 일어났다는 어떤 혁명에 대해서 말입니다. 자유와 소통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바로 그런 광장을 만들기 위해 일어났다는, 어떤 혁명에 대해서 말입니다.
누구든 잠재적인 적이라는 긴장, 더 잘 났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 감시와 증오를 키우는 '전쟁터'의 사회가 현대 사회 아니던가요? 현대 사회에 그런 광장이 열리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요?  사회 전체를 그런 광장으로 만들겠다니,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아름다운, 살이 떨리도록 아름다운, 사기 아닐까요?

전쟁이나 마찬가지 경쟁으로 얻어지는 부와 지위를 누리는 삶,
어떤 것이던, 가진 것으로 다른 사람의 우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사람을 보면 구토를 참기 힘들지요. 하지만, 도덕적인 깨달음으로 실천해 보는 봉사나 희생의 삶도, 왠지 거북합니다.

몸과 의식을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둘 수 있는 자유와,
쓰러지면 달려와 줄 사람들이 곁에 있는 소통을 바라는 이런 것은
소시민의 소망이지요.
그나마, 이제는 이런 것들이 행복해 보이는 드라마와 광고의 그림 속에서
환각으로만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은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마저 행복하게 만들지 않던가요?
바라보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면 아무리 행복한 듯이 보여도 사실 별로 행복한 것이 아니겠지요. 그들은 행복을 꾸미고 있는 것일 뿐이지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도 아이들이야말로 진짜로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런, 아이들처럼 행복한 인간들을 하루 종일 쳐다보고 가끔씩 말을 걸어볼 수가 있다면, 저는 봄이 오기 전에 굶어서 얼어 죽는대도 웃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광장은 아마도, 아니 분명히, 땅바닥을 뒹구는 외짝 신발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외지인의 환상일 겁니다. 저는 이제 그런 환상 따위를 한 순간도 지니고 있기 힘듭니다. 잦은 실망 때문에 충분히 지쳐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광장의 꿈을 가진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늘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단지,
내가 갖고 있는 소망이 별나고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갖고 싶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 사실은 모든 사람이, 사실은, 정말로 사실은, 맘 속 깊은 곳에 그런 소망을 품고 있다는 증거를 갖고 싶기 때문입니다.
혁명이 성공했는지 아니면 실패했는지 그런 것도 저는 별로 알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꿈 속에 그러한 광장의 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
이 팍팍한 시대를 버틸 위안이 되기 때문입니다.


------


정말 사랑하면, 정말 행복하면
정말 너그러워지겠지요?

바라보는 사람까지 행복하게 할 만큼
새해에는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라구
새해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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