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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을 시켜야해요! 인성교육을!
도대체 요즘 아이들 정말 대책이 안 서요.
대부분의 강의실이 빈 금요일에는
빈 강의실에서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행동들을
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니까요."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는 나에게 청소 아줌마가
던진 말이다.
아마 내가 교수일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나에게 인성교육을 시키라는
말 같다.
하지만 나조차도 제대로 인성교육이 되지 못한 동물 수준이라는 것을
저 아줌마는 알고나 있는 것일까....
"교수님, 이 핸드폰이 교수님이 쓰시기에 알맞을 것 같아요."
서점을 나오는데 핸드폰을 싸게 팔고 있어 둘러보고 있는 내게 학생이
던진 말이다.
"교수님, 이리 오세요. 먼저 해 드릴게요."
복사실의 아저씨가 아이들과 함께 복사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내게
던진 말이다.
처음에는 모르는 아이들이 복도에서 나를 보고 "안녕하세요." 인사를 할 때
나도 엉겹결에 함께 인사를 하며 '이 학교는 아이들이 참 예의가 바르구나,
나이든 나를 알아보고 저렇게 기특하게 인사를 잘 할까,생각 했었다.
하지만 어느날 부터 그것이 나를 교수로 오인한 행동에서 나온 것이라 깨달았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한 마디로 '쪽팔림'이었다.
'교수가 되도 모자랄 나이에 학생이라니....'
하지만 내가 누군가.
치매끼가 있는 나는 곧 그 사실을 지워버리고 내가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나이에 학생이라니 월매나 좋아!'

인성교육이 제대로 되지 못한 나는 '시창작' 시간에도 '소설창작'시간에도
'문학비평'시간에도 발제를 하며 울컥울컥한다.
오정희의 '옛우물'을 읽고 발제를 해야하는데 40명 중에 책을 읽고 온 학생이
2명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래도 교수님은 발제를 하란다.
등에 땀이 났다.
이 상태로 어찌 발제를 한단 말인가.
발제를 한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등뿐 아니라 온 몸에 땀이 났다.

"여러분, 저는 어제 밤을 세워가며 이 발제문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소설을 읽어오지 않는다면 제가 밤을 세워 한 발제는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두 아이들을 키워가며 살림을 해가며 집안을 건사해가며 공부를 해야 하는
위치입니다.
물론 여러분들 중에는 자신의 학비를 벌어가며, 혹은 자취를 해가며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있지요.
하지만 대다수의 여러분들은 공부에 올인 할 수 있는 위치이지요.
여러분의 위치가 너무나 부럽습니다.
제발 그 날 발제할 책만이라도 읽고 오세요.
그래야 토론이 되고 공부가 됩니다."
이 말을 하며 나는 목이 뜨거워 한참 숨쉬는 것을 참아야했다.
'이 아이들은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절실하다는 것을, 자신들 앞에 놓여진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고나 있는 것일까.
시간의 의미들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것일까....'

"독자들은 여러분들 만큼 똑똑합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글을
쓰지 않고 거짓말하면 금방 압니다. 그런 시는 울림을 주지 못해요.
솔직히 자신을 들어내는 용기가 없다면 좋은 시는 나오지 못합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이 시는 숙제를 위해 억지로 썼다는 것이 절절이
묻어 나온 시라는 것만 느껴질 뿐입니다. 어린아이가 써도 이렇게는
안 씁니다. 어린아이라면 더 솔직하겠지요. 이건  시가 아니라 구호입니다.
문창과에 와서 일년을 공부한 사람들이...제가 교수라면 이런 학생 때려줍니다.
시를 쓰기 전에 제발 시집 좀 읽으세요."
2학년 시창작 시간에 교수님이 학우가 쓴(물론 시를  쓴 학우의 이름은 지우고)
시들을 평을 하는 시간에 나에게 소감을 질문했을 때 인성교육이 제대로
되지 못한 동물인 내가 흥분하며 한 말이다.
내가 교수가 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내가 교수가 되었더라면 내 성질에 난 벌써 폭력교수로 처벌 받았을 것이다.
흥분한 내가 학생들을 향한 원색적인 폭언에 교수님께서는 유머스럽게
"선희씨, 진정하세요. 전 이제 만성이 되서 괜찮습니다"며
웃으며 재치있게 그 자리를 무마시키셨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아이들에게 미운 털이 박혔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의 작품을 발제할 때도 난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이러다 내가 내 명에 못 살 것 같다.
"어떤 작가가 쓴 작품을 이해할 때 그 작가가 태어난 년도와
성장년도, 작품을 발표할 당시의 년도와 시대상황은 가장 기본적인 사항입니다.
그런 이해가 기본이 되고 나서 작가의 작품을 자신의 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다음의 일입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두루 다 잘아야 하지만
그 중에 역사와 철학은 정말 기본입니다."

"엄마, 제발 다른 아이들에게 신경쓰지 말고 엄마만 공부해!
다른 아이들이야 하건말건 상관하지 마!"
딸은 매일 불평을 늘어놓는 내게 답답하다며 던진 말이지만
이기적으로 나만 공부하면 된다,는 식으로는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어지지가 않는데야 나도 환장할 일이다.

"일단 남 앞에서 자신이 읽고 온 작품을 발제할 때는 감상문과는
다른 양식이 필요해. 우선 그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한 소개가 있어야하고
그 다음에 그 작품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그리고 작가가 주제를
말하고자 하면서 작품에 등장시킨 인물들에 대한 분석과 작가가 작품을
끌고 나간 글의 줄거리, 그리고 그 다음에 자신이 작품을 이해한 느낌들을
단계별로 나누어서 일목요연하게 기록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훨씬 쉽지. 다른사람들에게 자신이 밥상을 차려 줄 때 밥과 국,반찬등을 한꺼번에
전부 섞어서 차려주는 것보다 각기 반찬과 밥,국등을 따로 구분해서 차려주는 것이
훨씬 먹기도 편하고 자신이 차린 밥상을 돋보이게 할 수가 있는거지.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담는 그릇들 또한 무시할 수가 없는거야."

어떤 학생이 자신이 처음 발제를 한다며 나에게 발제문을 보여주고 의견을 물었을 때
내가 해 준 말이다.
그런데 나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난 아이의 대답이 기가 막혔다.
"전 비빔밥을 좋아하거든요."
'네 팔뚝 굵다! 그럼 내 의견을 묻기는 왜 물었니? 이 똥고집에 남의 의견은
들을 필요도 없다고 고집만 센 답답한 놈아!'
이래저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던지 말던지 3학년 과대표는 이번 수학여행을 발리로 가기로 했다고,
그러려면 20명을 채워야한다며 열심히 아이들을 모집하는데 열과 성의를
다하고있다.

이래저래 맹한여자에게 너무 우울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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