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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7.05.05 18:18

마적단 외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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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운전을 배운 딸은 툭하면 운전을 하다
싸움을 하고 들어온다.
여자운전자를 얕보는 우리나라 운전의 세계에서
더구나 체격까지 작은 딸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끼어들기, 갑자기 겁주기 등으로
괴롭힘을 당했을 것은 나의 운전경험에 미루어 짐작이 간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그냥 묵묵히 참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했다.
그런 인격을 가진 사람들과 싸움을 해보았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딸은 그렇지 않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자신이 부당하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면
참지 않고 길에서건 중앙로에서건 차를 세우고 싸우고 들어온다.
딸이 운전을 배운 후로 내가 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아프거나 바쁠 때, 시장을 보거나 하는 일들을 딸이 해주므로…
어제도 나의 심부름으로 시장을 보고 온 딸은 씩씩거리며 눈물 콧물을 짜고 들어왔다.
“왜 그래?”
“엄마, 나 트럭 운전수 놈하고 싸웠어!”
“또 왜?”
“그 놈이 나를 여자라고 얕보고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가 깜빡이도 안 키고 끼어들었는데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어서 내 앞에서 급정거 하는 바람에 그 차와 내 차가 충돌할 뻔 했어. 그래서 내가 너무 놀라고 화가 나서 차에서 내려서 트럭을 발로 차며 ‘야, 너 내려!’ 했더니 내리더라. 그래서 ‘넌 왼 손 병신이냐? 깜빡이도 못 켜?’ 했더니 나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 너 몇 살이야?’라고 묻길래, 남의 나이는 왜 물어? 운전을 나이로 하냐? 어디서 그따위로 운전을 해? 너 내가 여자라고 지금 깔보고 그러는 거지? 야! 경찰 불러!' 했더니,'사고도 나지 않았는데 무슨 경찰이야?' 하더군. 그래서, '그래? 나를 여자라고 얕보고 그따위로 운전 해 놓고 사고 나지 않았으면 다 다? 야! 나 오늘 여기서 죽어야겠다!'그러면서 옷을 확 벗었어.”
난 놀라서 물었다.
“무슨 옷을 벗었는데?”
“아, 겉에 걸치고 있던 바라리.”
나는 너무 놀라 딸의 얼굴을 멍청히 쳐다보고 있었다.
딸의 얘기는 계속됐다.
“그런데 엄마, 오늘 내가 등에 전갈 문신을 찍어 넣었거든. 그래서 일부러 그 곳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며 옷을 확 벗었지!”
“문신을? 네가 문신을 했단 말이야!”
“아니, 새기는 문신이 아니라 그림으로 찍는 문신이 있어!”
새기는 것이고 찍는 것이고 나는 딸의 새로운 면을 보는 것 같아 너무 놀라 그냥 입을 벌리고 딸의 등에 새겨진 불량스러운 울긋불긋한 전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어. ‘삼촌 트렁크 꽉꽉 채워서 애들 데리고 여기 나 있는 곳으로 와! 나 오늘 여기서 죽을 거야!’ 했더니 그 놈이 얼굴이 하얘지는 거야.”
난 벌린 입이 더 벌어졌다.
“네가 그런 삼촌이 어디 있니?"
“아, 그냥 아무 번호나 눌러 전화를 건 거지!”
‘애 내 딸 맞는 건가…’
난 입을 계속 벌리고 딸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쳐다보았다.
딸은 신이 났는지 계속 떠든다.
“그런데 길 한 가운데 세워놓고 그 난리를 피우니 다른 차들이 빵빵 거리고 난리가 난거야. 그래서 내가 ‘뭐야! 왜들 난리야! 야! 피해서 가!’라고 소리를 질렀어. 그러니까 트럭 조수석에 타고 있던 녀석이 슬금슬금 내리더니 ‘야, 사과해. 얼른 미안하다고 해. 죄송합니다.’ 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뭐야! 당신은! 당신이 지금 잘못했어! 잘못 한 인간이 사과해야지!’ 했더니 그 인간이 ‘미안하우다!’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다시, ‘미안하우다? 지금 그게 사과야? 똑바로 안 해?’ 했더니 그제서야, ‘나 참…미안합니다.’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앞으로 여자 운전사라고 얕보지 말고 운전 똑똑하게 하고 다녀!’ 하고 돌아서는데 어떤 에쿠스를 몬 놈이 지나가다 말고 슬금슬금 차를 세우며 나를 흘끔거리는 거야. 그래서 ‘뭐야! 이건! 당신 갈 길이나 빨리 가!’ 했더니 다시 슬금슬금 가버리더라.”
나와 아들은 너무 놀래 딸의 얘기가 끝나도 벌린 입 그대로 멍청하게 딸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누나, 멋있다! 그래야 해. 아직도 여자라고 얕보는 그런 놈들이 있다니…. 우리 엄마는 항상 참고 그냥 오는데 누나는 그러지 마. 난 통쾌한 생각이 든다. 엄마보다 훨 낫다. 나는 그런 누나가 마음에 들어. 누나 파이팅!”

“그런데 엄마, 그렇게 하고 오는데도 너무 분해 계속 울고 왔어.”
눈물 자국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딸의 얼굴은 아직도 분한 표정이다.
“그렇게 하고 사과까지 받고 이기고 왔는데 왜 분하니?”
“그래도 분해.”
“소윤아, 엄마가 왜 참는 줄 아니? 물론 너희들 눈으로 보면 엄마가 바보 같겠지만 그런 사람과 싸워 보았자 결코 통쾌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싸우지 않고 무시하는 거야. 물론 너는 아직 사람과 세상에 대해 기대와 열정들이 많아 그럴 수는 없겠지만 사람과 세상에 대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느끼고 기대하지 않으면 엄마처럼 열정들이 식게 되지. 그래, 아직은 젊으니까. 그런 열정들이 필요하기도 하지.”

저 아이가 내 딸 맞는 건가…, 호랑이 띠에, 호랑이 시에 아무리 사주가 세다고 하지만… 자기 외할아버지를 닮은 건가…. 아님 자신의 이모들을 닮은 건가…피가 너무 뜨겁다. 저렇게 뜨거운 피를 가지면 자신이 힘들고 상처를 많이 받는데… 하긴, 양상과 색깔은 다르지만 나 또한 젊었을 때,그 시대는 저렇게 뜨거운 피를 가졌었지…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런 딸이 오늘은 어린이 날이라고, 자신은 아직 25살이 되지 않았으니 아직 어린이라고, 청소년도 어린이에 속한다며 엄마는 아프니 염려말고 집에서 쉬라며, 아직 어린이인 딸은 자신의 동생을 데리고 드림랜드로 놀이기구를 타러갔다.
세월이 많이 흐르지 않은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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