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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시사저널 기자들의 릴레이 편지
- 단식 1일째 길거리에서 -


©시사저널 노조




한겨울 천막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한여름 길거리 단식까지 하게 됩니다.

단식이라뇨.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 아니고, 두 사람의 뜻을 전해 듣는 순간 기자들은 경악했습니다. 정희상 위원장과 김은남 사무국장. 단식을 결의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기자들이 그들을 뜯어 말렸습니다. 사표까지 모아놓은 마당에 웬 단식이냐고, 미련없이 새 길 가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2기 노조를 이끌며 회사와 접촉해온 그들의 고집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급기야 오늘 6월18일. 시사저널 기자들은 ‘삼성 기사 삭제 사태 1년’을 맞아 기사 삭제 책임자 처벌과 뒷구멍 매각 시도를 규탄하는 기자 회견을 가졌고, 이어 두 사람은 사주의 집 앞에 깔개를 깔고 앉았습니다.

야속하게도 요즘 들어 수은주는 30도를 오르내립니다. 허기보다 그들의 진을 뺄 마른 열기가 더 무섭습니다. 비싼 생수를 두 사람 발치에 뿌려줍니다. 시커먼 아스팔트 바닥이 지글지글 끓습니다.  

정희상 노조위원장과 김은남 사무국장. 사주의 집 앞에 주저앉은 그들의 고집은 일종의 미련으로 보입니다. 분노에서 절망으로, 그리고 체념에서 다시 분노로 지난 1년간 기자들의 감정선은 가파르게 오르내렸습니다. 노조 집행부에 사표를 내는 순간, 대부분의 기자들은 단념을 공표하는 일종의 의식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좀체 끊어낼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시사저널>은 심상기 회장이나 금창태 사장의 것이 아니었고, 또한 파업 기자 23인 만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새록새록 환기되었습니다. 지난 18년 동안 시사저널이 걸어온 길, 그 지면에 실린 기사, 그리고 그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질타와 성원이 켜켜이 쌓인, 이 사회의 역사가 된 시사저널의 존재감이 새삼 엄연했습니다. 시사저널 기자이기를 포기하겠다고 생각하고, 한발 물러서서 시사저널의 역사를 돌이켜보니 회한이 더욱 절절했습니다.

지금 기자들이 시사저널을 포기하면, 그대로 시사저널의 한 역사가 끝이 납니다.
네, 오만한 자부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들은 감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회사를 비난하지 않겠습니다.
사장이 기사 하나쯤 못 들어내느냐고 생각했을 법한 사장의 인식과, 그 사태를 편집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여기는 기자들의 인식 차이가 사태 장기화의 이유라고 생각하면 그 뿐입니다.

다만 지금 어떻게 할 것인지 다시 묻겠습니다.

지금 상황은 이렇지요. 사측이 그토록 강조해 마지 않았던 법과 원칙의 구호에 대해 사법부는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금사장은 자신을 ‘몰상식의 표본’으로 표현한 한겨레21 편집장과 관계자를 고소했는데, 그에 대해 최근 재판부는 제기된 일체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라고 판시했습니다. 심회장의 도덕성도 의심받지 않을 도리가 없어졌습니다. 심회장은 두어 달 전 기자들 몰래 매각을 추진하다 들통 나자 기자들에게 “앞으로 매각을 추진하지 않겠다. 나를 믿고 다시 일하자”라고 말했으나 그것 또한 거짓이었음이 최근 드러났습니다.  

이번에는 심회장 몰래 사장과 실무선에서 매각을 추진했다고 해명하는군요. 회계법인이 실사를 하는 단계에 이르렀는데도 사주가 이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거래의 거간 노릇을 한 이가 중앙일보 출신에 최근까지 특정 정당의 대변인으로 일해온 자라니, 과연 시사저널 매입을 추진하는 세력의 실체가 어디인지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정녕 18년 동안 기자와 독자들이 일궈온 시사저널의 역사를 이대로 매장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 5개월 간 월급 한 푼 못받고 빚을 내어 생계를 감당하면서도, 기사 삭제가 부당했다는 기자들의 판단은 한 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도통 모르겠습니다. 심회장은 대체 시사저널 기자들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심회장의 재산권을 위협하지도 않았으며, 그를 욕되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심회장이 10년 전 지불한 몇 푼의 매입 대금은 지난 수년 간 경영을 통해 모두 회수했습니다. 그가 시사저널을 발간하면서 불명예를 감당해야했던 적이 있습니까. 오히려 시사저널 발행이 그의 언론 이력에 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누를 끼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고작 월급쟁이 주제에 그 소중한 밥그릇까지 내던지며 언론의 정신을 지키겠다고 나선 시사저널 기자들을, 적어도 언론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이가 이렇게 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심회장이 금사장과, 혹은 자신의 젊은 시절 직장이었던 삼성 계열 중앙일보와 어떤 말 못할 인연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사사로운 인연을 잠시 잊고 지금 사태를 직시하라고 간곡히 청합니다.  

굶기로 작정한 정희상 위원장은,
결사적으로 단식을 만류하는 시사저널 기자들을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혹여라도 심회장이 기자들과 함께 하겠다는 뜻이 있다면,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다.”

네. 이제 시사저널 기자들은, 시사저널 기자로서의 마지막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 길의 끝이 보일 것입니다.

끝에 이르러 그동안 시사저널 기자들을 지원하고 격려하느라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숱한 후원자들의 얼굴이 어른거립니다. 기자들의 힘과 지혜가 모자라 그 성원에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기자들의 단식 일지가 끝나면 시사저널 기자들은 더 이상 소식을 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독자들에게 고통스러운 이별사를 고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나, 어쩔 수 없다면 회자정리의 이치를 떠올리며 아쉬움을 달래겠습니다. 잠시만, 지켜보아 주십시오.  



2007년 6월18일 시사저널 기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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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단식농성 1일째

  

©시사저널 노조

가장 경악스러웠던 일은, 회사가 독자들을 고소한 것이었다. 시사저널의 열독자로서, 시사저널을 가장 사랑해온 이들에게 날아온 것은 ‘검찰에 출석해달라’는 소환장이었다. 6월18일, 기자회견에 시사모 회원 4명이 찾아왔다. 기자 회견에서 지지사를 하고 있는 시사모 아이디 안일 회원, 감사하다. 이날 밤, 길바닥에 앉아있는 단식 기자들을 위해 또다른 시사모 회원 분들이 퇴근 후 농성장을 찾아왔다.  


  

©시사저널 노조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삼성은 시사저널 문제를 자신들과 상관없는, 한 언론사의 내부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짝퉁 시사저널’의 최대 광고주 역을 자임하고 있다.


  

©시사저널 노조

시사저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직장폐쇄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회사 앞에서 시사저널 노조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백승기, 윤무영, 유옥경, 주진우, 문정우, 장영희. 시사저널에서 청춘을 바친 이들이, 바로 시사저널이다.


  

©시사저널 노조

2007년 6월18일 오전10시, 시사저널 노조는 서대문 시사저널 앞에서 ‘기사 삭제 책임자 처벌 및 매각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사가 삭제된 지 꼭 1년 만이다. 최근 법원은 금창태 사장이 고경태 전 한겨레21 편집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형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법과 원칙’을 중요시 한다는 금창태 사장은 판결 이후 아무런 말이 없다.


  

©시사저널 노조

직장폐쇄된 시사저널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짧게는 7년, 길게는 18년 동안 일했던 책상과 의자가 보인다. 누구는 ‘안녕 시사저널’이라고 썼다. 누구는 뭐라고 써야 할까, 한동안 눈을 감고 서있다가 끝내 펜을 들지 못했다, 굳게 닫힌 편집국의 유리문 앞에서.


  

©시사저널 노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나선 정희상 위원장과 김은남 사무국장. 초창기 기자들은 이렇게 농담했다. “단식, 삭발. 이런 것은 하지 말자”고. 자학 투쟁은 사절이었다. 싸움을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뙤약볕 밑에서 겨우 한 몸 가릴 그늘에서 힘든 싸움을 시작했다.


  

©시사저널 노조

6월18일, 30도가 넘는 불볕 더위에 단식 기자들은 혀를 빼물어야 했다. 회사는 그 와중에도 기자들의 그늘막을 어찌해보라고 구청에 민원을 넣은 모양이었다. 아직 해가 기울지도 않았는데, 구청 직원들이 출동해 알량한 그늘막을 걷어가 버렸다.

그나마 해가 지니 서늘한 산바람이 골목을 타고 내려온다. 산모기도 따라 왔다. 모기 향을 피우고, 촛불도 켰다. 어두컴컴한 골목 길 촛불 두 자루가 이들의 밤샘 동반자이다. 아니다. 맞은 편 골목 길에 단식 기자들을 안타까이 지켜보는 시사모 회원들이 있다. 퇴근 후 부랴부랴 들른 이들이 속속 골목길에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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