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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7.11.16 23:36

도정기(道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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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야 할 때라고  생각되자 채비를 서둘렀습니다.
도반스님이 차를 갖고 있었기에 조금은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서산 가야산이었습니다.
출가(出家) 이전, 많이 가 보았지요.
개심사, 마애삼존불, 보원사지, 일락사, 용현계곡, 남연군묘, 사면석불...
그렇지만 석문봉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곤 산줄기 언저리만을 서성거렸었습니다.
이번엔 산 능선을 타고 싶었습니다.
산줄기 북쪽 어느메쯤 출발해서 남쪽 끝자락 어디쯤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어렸을 적 서산너머 지는 해를 늘 보고 자라왔던지라 적잖이 설레기도 했지요.
아침 일곱시.
용현계곡 입구에 도착하여 산에 오를 입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희미한 길만 보여도 들어설 작정이었지요.
보물찾기라도 하듯 왼쪽으로 이어지고 있는 산의 접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수정봉 3.4km.
됐다.
참으로 행복한 길이었습니다.
정말 잘 왔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정봉 전방 1.2km를 지나면서부터는 산아래의 동쪽, 서쪽, 북쪽의 시야가 제법 또렸하게 들어왔습니다.
서쪽 방향으로는 보원사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더 멀리로는 서산시내가 보였습니다.
지금 걷고 있는 오른쪽 산자락 아래에는 백제의 미소인 마애삼존불이 있겠지.
동쪽으로는 주춤주춤 뻗어있는 야산과 평야.
그 너머로는 예산 시내와 신례원, 도고일 텐데 이렇게 시계(視界)가 흐려서야...
맑은 날씨가 무색해져버렸습니다.
수정봉을 지나자 용현계곡과 임도(林道)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계곡과 임도를 따라 가야산을 관통하는 도로가 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렇지만 뜻밖에도,

              
                NO 관통도로, 골프장 STOP 송전철탑
                가야산을 둘로 나누는 관통도로 반대!
             가야산지키기시민연대/대전충남 녹색연합

                  NO 관통도로, 골프장 STOP 송전철탑
           이 길은 조상의 숨결과 자연이 함께하는 길입니다
           가야산지키기시민연대/민주노동당예산지역위원회

등의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좌우에 '철탑반대대장군', '관통도로반대여장군'의 목장승을 세우고 가운데에는 목장승을 또하나 세웠는데 '가야산을 지켜주세요(백제의 미소)'라고 새겨넣은 모습도 보였습니다. 장승 사이를 이은 새끼줄에는 천조각이 부착된 깃대가 꽂혀져 있었고 거기에는 가야산을 지키자는 각자의 기원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바로 그 위에는 세우다만 철탑 부재들이 흩어져 있었지요.

                '아름다운 가야산을 이대로',
                '송전철탑 건설 반대',
                '가야산을 살리자'

또한켠의 컨테이너박스 밖에는,

               백제의 미소를 지켜주세요.
               스님 힘내세요.
                   천주교 덕산성당

이라고 현수막이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인근에는 수덕사가 자리잡고 있어서 그곳의 두 분 스님이 와서 농성 정진을 하였나 봅니다.
잠겨진 컨테이너박스 안에는,
다구(茶具)와 코펠, 가스버너 등의 집기 등이 있었는데 관통도로가 만들어지려는 조짐이 있으면 언제라도 와서  다시 저지 농성정진을 하겠다는 의지로 읽혀졌습니다.
스님의 법명을 거명하며 '사랑합니다. 청년정신모아 귀의합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한 현수막이 보였고 전주불교청년회 등 전북지역 8개 불교청년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저지 운동은 뜻밖에도 강력했던 것이었습니다.
또 한쌍의 가야산을 지키자는 목장승 사이를 지나 옥양봉과 석문봉까지의 산행길은 순탄한 여정이었습니다.
더이상 숨쉬기조차 버거운 도시적 생활을 탈출하여 한순간만이라도 자연에 기대어 심호흡을 고르고 행복을 충전코자 하는 현대인의 바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쪽에,
세워지다만 철탑 기둥의 주초석은 단단해 보였고, 부재들은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자연을 원래대로 보존코자 하는 열망을 지켜내기 위해 더 많은 힘과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로(道路)에는 이제,
차도(車道)와 민도(民道)가 있습니다.
저는 민도(民道)가 많이 보존되고 또 생겨나기를 원합니다.
평온한 산행길을 원한다면 여기 석문봉에서 끝맺음을 해야합니다. 여기서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남연군묘 쪽으로 간다든지 서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일락사나 개심사 쪽으로 하산하면 되지요.
산을 많이 타본 사람이면 아는 사실이지만 어느 순간엔 가파르고 험한 길을 만나게 되지요. 그곳이 처음일수도 있고 맨 나중일수도 있고, 처음과 맨 나중 또는 중간 쯤에 있기도 합니다.
가야산 산행의 가파름은 기왕 온 길과  개심사 상왕봉 산줄기가 합쳐지는 석문봉에서 가야산 주봉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저는 그 길을 가야했지만 유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산 정상에는 송신탑과 통신시설로 꽉 차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전의 전쟁터인 산성(山城)은 현재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사람들의 휴식처로 제몫을 하고 있는데 반하여 지금의 저 거대한 통신시설물들은 과연 미래에 소용이 될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흉물스럽습니다.
전파는 빛이고 광명이고 소리인데 저런 과정을 꼭 거쳐야 하는지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가야산 정상을 비껴 지나 서남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해미읍이 보였지요.
소나무숲과 억새숲을 따라 난 길을 갔습니다.
저 아래 한서대학교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축구 경기의 열기가 전해왔습니다.
능선길을 따라 계속 갔습니다.
조그만 산봉우리를 넘어설 즈음 굉음이 들려왔습니다.
우르릉 콰광, 우르르 콰광.
이 깊은 산속에서 무슨 소리일까?
설마 산이 무너지는 소리?
산을 넘어서자 그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석재 채취장.
시멘트 원료 공장.
그 굉음은 돌을 분쇄하는 과정에서 들려오는 소리였습니다.
가만 보니 산길 풀숲과 나뭇잎에는 시멘트 가루가 하얗게 쌓여 있었습니다.
산의 한쪽은 이미 잘려나가고 깊이 깊이
밑으로 밑으로만 파들어가는 모습에서 도시의 허상이 생각났습니다.
자연의 아픔으로 도시가 건설되는구나.
산의 고통으로 아파트가 지어지는구나.
위험과 문제가 많은 원자력이지만 전력(電力)에 관한 한 현재로선 그것이 최선이듯이, 우라늄과 같은 새로운 물질의 발견과 개발로 도시는 건설되고 아파트는 지어져야하지 않을가.
그래야만 자연을 보호하고 산을 가꿀 수 있지 않은가.
참으로 어두운 발길이었습니다.
해는 뉘엿뉘엿 서해 바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가야산 남쪽 끝자락이 보이고 내려갈 지점의 마을이 가깝게 보일 무렵
해미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해미가 한자로 어떻게 되는지 모릅니다만 '海美' 또는 '海渼'라고 하면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작년 하반기 그러니까 2006년 8월 말부터 금년 2월까지 저는 부산 범어사 청련암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강릉 관동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논문이 통과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자주 강릉에 오가야 했습니다.
이때 주지소임을 맡고 있던 약연스님의 배려로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석사과정을 잘 맡쳤구요.
그러던 스님이 얼마 전 교통사고로 입적(入寂)하셨습니다.
법납(法衲)은 저보다 많았으나 세납(世衲)은 같은 연배(年輩)였습니다.
저는 약연스님의 법명이 한자로 어떻게 되는지 모릅니다만 태어난 곳은 저기 보이는 해미였다는 사실은 압니다.
그 분이 오늘 이곳으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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