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상 게시판

청구회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처음처럼
이미지 클릭하면 저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숲속의소리

2007.12.09 10:01

산다는 것

댓글 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야! 평화의 댐 있지? 국민들에게 사기 쳐서 아이들의 코 묻은 돈까지 빼앗아 성금으로 지어진 그 댐 말이야! 거기 가! 거기!”
“거기 강원도 아니야?”
“야, 거기가 화천이지 무슨 강원도야?”
“화천이 강원도 아닌가……”
“너 지금 강원도고 화천이고 따지게 생겼니? 넌 봉 잡은 거야, 그러니 무조건 가!”

형제가 많으면 바람 잘날 없다고 딸 8명중에 7째 동생이 남편이 바람을 핀다고 징징대더니 불결해서 못 살겠다고 기어이 이혼을 했다. 정 불결하면 소독을 하던지 깨끗이 세탁해서 대충 데리고 살라고 그렇게 말렸건만 말을 듣지 않고…… 다 거기서 거기지…… 썩을 년!

그렇게 말을 듣지 않고 이혼을 하더니 오늘,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나를, 트랙터를 몰고 나의 밭을 갈아주는 놈에게 이혼한 동생을 데리고 화천으로 가든지 강원도로 가든지 하라고 전화통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내가 전화통에다 대고 평화의 댐으로 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인간은, 틈만 나면 나에게 문자를 날리는, 봄이면 트랙터를 몰고 와 우리 밭을 갈아 주는 녀석이다. 난 이제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소개까지 시켜줘도 비겁한 녀석은, 매일 해만 뜨냐,  비올 날이 있겠지, 하며 쉴 사이 없이 문자를 날리며 비올 틈새를 노리고 있는 거다. 한동네 살면서 모지락스럽게 말하기도 어렵고 쌩 까기도 어려워, 저 물건을 어떻게 처리하나, 고심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여동생이 이혼을 한 거다. 이혼을 한 동생 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과 술친구를 하자고 전화를 하여 나를 조른다. 하지만 늙은 과부이긴 해도 학생인 나는 여동생과 매일 술친구가 되어 줄 수가 없었다. 그것도 평점 4.0을 유지해야 공짜로 대학원을 갈 수 있어 나름 전력투구하며 나쁜 머리로 공부에 전념하고 있는 내가 아니던가,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리며 눈에 불을 키고 나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대화상대가 되어 달라는 동생의 전화를 받은 것이다. 또 마음이 심란하고 편치 않은가보다, 는 생각에 딱 거절을 못하고 몸이 조금 아프다고 어물거리자, 동생은 언니가 아프니 자신이 직접 찾아오겠다고, 지 딴엔 자상한 배려를 하며, 말릴 사이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이 일을 어쩌나, 당황하고 있을 때, 예의 틈새를 노리는 녀석에게 또 문자가 날아 온 거다.
‘옳지! 너 오늘 딱 걸렸어!’
난 당장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녀석은 이게 어쩐 일이냐는 듯 반갑게 전화를 받는다.
“너 오늘 시간 있니?”
“그럼! 있지!”
“그래, 그럼 너 지금 당장 00로 와.”
그렇게 전화를 끊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00야, 너 언니 집까지 오지 말고 00로 와.”
“왜? 언니 아프다며? 나올 수 있어?”
“하여튼 그 곳으로 와.”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후, 동생과 녀석이 내가 말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00야, 너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지금 거기 내 동생이 나와 있거든, 내 동생이니 물론 나보다 훨씬 젊고 카사블랑카에 나오는 잉그릿드 버그만 알지? 그 얼굴인데 좀 맛이 간 얼굴이긴 하지만 넌 땡잡은 거야. 나 지금 시험 기간이라 정신이 없어. 그러니 나대신 그 애의 얘기를 좀 들어줘. 나 이번 시험 망치면 대학원 돈 내고 가야해. 그럼 너 나에게 대학원 학비 줘야해. 그러긴 싫지? 그러니까 책임지고 네가 내 역할 좀 해줘, 알았지?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잘 부탁한다.”
“야, 명아야, 난 너를 좋아하는데 그 게 무슨 소리야?”
“얼씨구! 왜 오버하구 그래! 나 지금 시험공부 해야 하니까, 나를 좋아하면 내 대신 동생 좀 봐 달라고!”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뭐가 아니야? 괜히 넘겨짚고 좋아하지 말고 평화의 댐이나 데려가! 바람 좀 쐬고 싶다니까.”
“평화의 댐이면 강원도에 있는 것 아니야?”
“야! 평화의 댐이 무슨 강원도에 있어! 화천에 있지!”
“화천이 강원도 아닌가……”
“야! 네가 지금 화천이고 강원도고 따지게 생겼어! 넌 지금 나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거야! 친구를 잘 둔 덕분에 넌 갑자기 예쁘고 젊은 여자와 데이트를 할 기회가 생긴 거야! 그러니 전화 끊고 빨리 화천으로 달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아~괜히 좋으면서 나에게 미안해서 그러는 것 다 알아! 괜찮아! 괜찮아! 나 전화 끊는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다시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언니가 시험이고 몸도 좀 아프니 내 대신 언니 친구와 화천 평화의 댐으로 바람을 쐬고 오라고 타일렀다.
“저런 나쁜 여자 같으니! 자기가 귀찮으니까 이틈에 모두 떠넘기는 것 좀 봐! 농사와 학점 때문에 이모를 팔아먹는구나……”
옆에서 전화통화를 듣고 있던 딸은 웃으며 은근히 나를 마무랬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원 학비 대신 동생을 팔아먹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는데 딸의 힐난을 들으니 내가 너무 치사한 인간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아 몰라! 그러게 이년은 왜 이혼은 하고 난리야! 그리고 이놈은 허구한 날 왜 문자를 날려 사람 괴롭히는 거야!’

그렇게 해서 그날 위기를 모면하고 무사히 시험을 본 나는 며칠 후, 동생이 처음 개업한 가게로 차를 몰았다. 내가 그렇게 칼국수 집을 하라고 했으나 개가 핥아 놓은 반반한 얼굴을 무기로 기어이 BAR를 차린 것이다.
“이혼을 하더니 드디어 이모가 화류계로 진출하는구나! 화류계로 진출하려고 이혼을 하고 그렇게 발광을 했구나!”
“야! 무슨 화류계야! BAR사장이지!”
“얼씨구! 그게 그거지 뭐야!”
“야! 네가 무슨 인생을 안다고 함부로 입을 놀리니! 입 못 다물어!”
그렇게 딸을 혼내고 차를 모는 나의 마음은 착잡했다.
이제부터 인생의 뜨거운 맛을 볼, 생활전선으로 뛰어든 동생이 안쓰럽기도 하고 그런 상황을 만든 동생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한 나는 개업이라고 축하하고 싶은 생각이 손톱만큼도 들지 않았지만 00대학교 교수들이 35명씩이나 몰려온다고 일손을 거들어 달라는 동생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동생의 가게에 들어서니 벌써부터 첫째 언니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둘째 언니는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동생은 앞으로 다가올 고행을 모르는 듯 화사한 얼굴로 아는 척을 했다.
“언니 왔구나!”
“명아 왔구나! 이 거 저 쪽 상에다 좀 가져다 드려.”
들어서는 나에게 접시부터 건네주는 언니는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난 얼른 외투를 벗고 언니가 가리키는 테이블로 음식을 가져갔다.
“아이고! 어디서 이런 아가씨가 왔나! 아가씨! 자 한잔 마셔! 마셔!”
접시를 들고 간 나에게 자유방임형으로 생긴 아저씨가 무턱대고 잔을 권했다.
“저 아가씨 아닌데요.”
“잉! 아가씨 아니야? 아가씨 아니라는데?”
자유방임형으로 생긴 동네 복덕방 아저씨 같은 인간이 역시 마구 민주적으로 생긴, 옆에 앉은 노인네에게 구원을 요청하듯 고개를 돌렸다.
“아~상관없어! 상관없어! 어서 마셔! 쭉 들이켜! 이 아가씨 누가 꼬시면 금방 넘어가게 생겼는데!”
생긴 것과 마찬가지로 입에서 나온 말 역시 자유롭고 민주적이었다.

“야! 여기 김치 좀 더 가져와!”
“야! 여기 술 한 병 더 가져와!”
술이 거나하게 취한 사람 중에 몇몇은 사람을 부르는데 '야'외에는 아는 호칭이 없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교수들이고 지성인들이 저 모양이니……’
한심하다 못해 슬퍼졌다.
“저 사람들 교수들 맞니?”
“응, 맞아.”
정신없이 분주한 동생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사람들이 왜 저렇게 몰상식하니?”
“언니 원래 잘못 배우면 배운 것들이 더 하잖아.”
“그래 맞다. 커리큘럼, 학점, 하는 것을 보니 교수들은 맞는 것 같은데,  어느 계열 교수들이니?”
“00래.”
“그럼 그렇지, 평화의 댐을 만드는데 일조를 한 인간들이구나, 그건 그렇다치고 개인적으로 볼 때, 그쪽 계통의  사람들도 진지한 사람들은 깊고 심오하던데……왜들 저러니?”
“과가 무슨 상관이겠어. 인간 됨됨이지.”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렇게 한참을 실컷 떠들고 먹고 마시더니 노래를 부른다.
‘할 건 다하는 구나, 하긴, 음주를 했으니 가무를 해야겠지’
"야! 너 이리와서 노래 불러!"
홀을 돌아다니며 분주하게 접시를 나르고 상을 치우는 나에게 갑자기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
‘이게 미쳤나, 너 같으면 눈썹 휘날리며 정신없이 바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상을 치우다 말고 갑자기 노래가 나오겠니! 지금이 수업시간인 줄 아나, 수업 중에 질문하면 대답해야하는 학생으로 착각하고 지금 나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가보다. 제정신이 아니구나, 이놈을 그냥 콰~악~’
순간 욱하고 치밀었으나 동생의 장사를 망칠수도 없는 일 아닌가, 꿀떡꿀떡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먹고 마시고 떠들고 노래를 부르더니 기운들이 다 됐는지 여기저기서 슬금슬금 일어나 갈 차비를 했다. 계산을 할 때, 35명이 식사를 하고 마시고 노래까지 부른 값이 250만원이라니 제일 많이 먹고 마시고 끝까지 노래를 부른, 그 모임의 총무라는 인간이 바가지를 씌운다고, 다시는 못 올 집이라고 방방 떴다.
‘쪼잔한 인간 같으니, 자신의 돈으로 계산하는 것도 아니고 연구비로 계산하면서 웃겨!  하긴 술 마시고 떠드는 것도 교수들이 하면 학문 연구를 위해 꼭 필요한 휴식이고 보통 사람들이 하면 쓸데없는 술주정이지! 그게 세상이니까! 젠장! 그건 그렇고 꼭 자기 돈 안내는 인간들이 저렇게 방방 뛰어! 제발 다시는 오지마라.’

“35명이 식사하시고, 17년산 양주 마시고, 노래까지 실컷 부르셔놓고 250이 뭐가 비싸다는 거지요? 00교수님을 보아서 그것도 싸게 해 드린 건데요?”
동생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하면 안 되지! 계속 장사하려면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돼!”
“그건 제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그러니 계산해 주시지요.”
‘옳지! 그래! 잘한다! 역시 내 동생이야!’


그렇게 35명의 이 나라의 지식인들을 보내놓고 우리 자매는 마주 앉았다.
“다시는 이렇게 하지 마. 실컷 고생하고 남지도 않고 욕만 먹고 이게 무슨 짓이니?”
도와주러 온 둘째 언니도 속상한지 한 마디 했다.
“처음으로 문을 열어 알린다는 생각으로 한 것이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말고 잊어버려.”
첫째 언니는 풀이 죽은 동생을 다독거렸다.
나는 잠자코 동생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씌어진 ‘전태일 평전’을 동생 손에 쥐어주고 나왔다.
‘00아, 이제 너는 아이들을 데리고 너 혼자 세상과 싸우며 살아야한다. 앞으로 많은 일들이 있을 거다. 하지만 결코 좌절해선 안 된다. 너의 일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떳떳하게 행동해라. 네 자신을 동정하지도 말고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봐서도 안 된다. 사는 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너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렇다. 모두에게 삶이 결코 너무 쉽거나 재미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정말,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 책이 앞으로 너 홀로 생활을 짊어지고 살아가게 될 너에게 위안이 되고 용기가 되길 바란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105 [re] 면티셔츠를 모으는 것도 도움이 된답니다 1 혜영 2007.12.17
2104 입장의 동일함에 대하여........ 3 김우종 2007.12.12
2103 첫 인사드립니다 1 김진민 2007.12.12
2102 더티댄싱, 떨리는 가슴 안고 숨어 보던 20년 전 그 영화... 3 안중찬 2007.12.12
2101 2007 겨울 거리 풍경(홈에버에 가지 마세요.) 1 권종현 2007.12.11
2100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은 가까이 다가왔음....... 김우종 2007.12.11
2099 새로이 인사드립니다. 2 박찬수 2007.12.10
2098 멀리 중국에서 인사... 4 이성용 2007.12.09
» 산다는 것 17 박명아 2007.12.09
2096 한해를 돌아보면서 2 김무종 2007.12.06
2095 고구마 5 빈주먹 2007.12.04
2094 신영복 민체에 대하여-나석 손병철의 생각 278 김성장 2007.12.02
2093 신영복 민체에 대하여-서예가 솔뫼 정현식의 생각 1 김성장 2007.12.02
2092 신 십계명 2 김 영일 2007.12.02
2091 정원을 내려다 보며... 1 문상현 2007.12.01
2090 자장면! 6 달선생 2007.11.27
2089 6개월만의 방문 1 김현숙 2007.11.25
2088 11월 '나무야 나무야'밀양 기행 결산 7 그루터기 2007.11.16
2087 김성숙선생님 부친상 15 양윤신 2007.11.24
2086 아버지를 보내고 아침에.. 5 김성숙 2007.11.26
Board Pagination ‹ Prev 1 ...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 167 Next ›
/ 16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