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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서 내게 잘한 일을 들라면 딱 1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아이들을 낳은 일이다.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나는, 나의 아이들에 의해 속을 썩거나 애를 끊은 적이 없다. 내 주위에 타인과 형제들에 의해서 무던히 실망하고 속을 끊인 나로선 그 부분만큼은 신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어떻게 내가 저런 아이들을 낳았나할 정도로 아이들은 반듯하고 무던하며 끔찍이 엄마를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재홍이는 심하다 싶을 정도이다. 중학교 때 반장이 되었는데 엄마가 알면 신경 쓸까봐 나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가 담임 선생님에게 직접 듣고서야 알 정도였다.
“재홍이 어머니께서는 몸이 약하신 데도 일을 하시나 봐요?”
“네?”
“어머님 소리만 제 입에서 나와도 재홍인, ‘우리 엄마 몸이 많이 허약해요. 그리고 너무 바빠요.’ 라고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거든요.”
나태하게 살아 온 것이 분명한 살집을 가진 중년의 피둥피둥한 여자가 허약하고 바쁘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선생님은 나의 아래 위를 흩어보셨다.
“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정말 송구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어 그 순간 나의 몸뚱이를 반으로 줄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도가 지나친 재홍이는 졸업식에도 나를 오지 못하게 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혼자 얼마든지 졸업할 수 있는데 엄마까지 힘들게 와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재홍이의 고집만큼은  황소고집이라서 아무도 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재홍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누나가 악을 써서 누나만 졸업식에 참석하여 사진을 찍어 주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나 입학식은 아무도 참석할 수가 없었다. 같은 중학교에서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하는데 굿이 고생하며 올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이번에는 재홍가 가장 무서워하는 누나도 지쳤는지 좋을대로 하라며 나서질 않았다.

“엄마 이것으로 맛있는 거 사먹고 맘 편하게 있어.”
입학식에서 돌아온 재홍이가 상장과 봉투를 내밀며 하는 말이었다.
“이게 뭔데?”
“장학금”
“장학금은 이미 받았잖아?”
의정부에 있는 고등학교로 나가지 않고 지금의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조건으로 3년 장학금에 노트북 컴퓨터, 기숙사 제공과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전교 1등을 하면 그때마다 장학금을 준다는 제의에 훌러덩 넘어가 대학에서 주는 농어촌 전형의 혜택까지 고려하여 지금의 학교로 가겠노라고 결정한 것이었다. 등록금은 이미 면제 받았는데 또 다시 장학금을 받아왔다니 이상하여 물었다.
“이건 경기도에서 주는 장학금이래.”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가 가서 상 받는 모습을 찍어 줄걸, 왜 오지 못하게 그렇게 고집을 부렸니?”
자식보다 내 자신을 위해, 자식이 입학생 대표로 나가 상 받는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사진에 간직해 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까운 나는 서운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나도 몰랐어. 입학식 도중에 갑자기 이름을 불렀어. 엄마 나 좀 잘게. 저녁 9시까지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니까 2시간 후에 깨워줘.”

잠을 자고 일어난 재홍이는 짐을 챙겨 기숙사에 들어가는데도 자신이 택시를 불러 혼자 가겠다며, 엄마는 늦었는데 피곤하고 힘드니 오지 말라고 부득부득 우기는 것을 제 누나가 혼을 내자 그때서야 할 수 없이 고집을 꺾었다.
기숙사에 도착해서도 자신이 알아서 짐을 챙길 것이니 어서 가라고 등을 떠밀어 짐도 제대로 넣어주지 못하고 돌아서야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반 기숙사 같이 냉냉하고 획일적인 분위기가 아니여서 위안이 되었다. 작은 인원이 기거하는 재홍이가 머무르게 될 기숙사는 가정집 분위기 처럼 오붓하고 정감이 가서 일단 마음이 놓였다. 한 학년에서 1,2등 두 명씩만 들어 갈 수 있어 정갈하고 조용했다.
기숙사 생활은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체조를 하고 7시 반에 아침을 먹고 8시 반에 등교준비를 해서 학교로 가서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기숙사 출입이 금지된다. 오후 5시 반에서 6시 반까지 저녁을 먹고 7시에 도서실로 가서 저녁 10시까지 공부를 하고 도서실 선생이 퇴근하면 그때 다시 기숙사로 돌아와 자습실에서 밤 12시 까지 공부를 하다 12시 반에 자야한다. 사감 선생님이 지키고 있어 그 시간 전에는 제 방에 가서 눕거나 자지도 못한다. 집으로 오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오후에 나와 다음날 저녁 10까지는 기숙사로 들어가야 한다. 한참 클 나이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간식도 제대로 못 먹고 공부를 하려니 힘이 들고 배가 고픈 것은 당연하다. 물론 비상금은 가지고 있지만 마음대로 나가서 사먹지도 못한다.
  
학교 숙제를 하고 있던 저녁 8시 쯤 재홍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재홍이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없어졌다니!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오늘 신입생 환영회가 있었는데 재홍이가 신입생 환영회까지는 참석을 하고 7시에 도서실에 오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하도 세상이 흉흉해서 그 순간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혹시 재홍이가 기숙사 생활을 참지 못하고 집으로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학교에서 맡고 있는 아이가 없어졌으니 부모에게 알려야하는 책임감으로 전화를 건 것이었다. 선생님은, 혹 같이 어울리거나 친한 친구들 이름을 아냐고 나에게 묻는데 나의 이름조차 기억하기 버겨운 기억력을 가진 나로서는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엄마가 아들 친구의 이름조차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을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이해하실까. 이해를 구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더구나 여자와 달리 남자 아이는 집에서 거의 학교의 일이나 친구의 일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특별히 친한 친구도 별로 없는 형편이다. 이 땅의 중고생들이 친구와 친할 시간이 있는가?
반 아이들에게 계속 연락을 취해보고 있다며 재홍이가 들어오면 연락을 주겠다고 너무 염려말라며 선생님은 전화를 끊었다. 너무나 불안한 나는 집에서 기다릴 수가 없어 무작정 학교로 달려갔다. 학교에 가니 사감 선생님께서 재홍이가 돌아와 도서실 문을 잠그러 갔다고 했다. 잠시 후 재홍이의 작은 얼굴이 높다란 학교 건물 사이로 나타났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신입생 환영회가 끝나고 갑자기 설사가 나서 화장실에 갔다가 배가 고파 잠시 학교 앞에서 라면을 사먹고 왔다는 것이다. 사감 선생님께서는 너 때문에 학교가 발칵 뒤집히고 어머니께서도 걱정이 돼서 달려오시게 만들었다며 잠깐이라도 밖으로 나갈 때는 꼭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가라고 주의를 주고 있었다. 재홍이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다음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더니 나를 올려다보며 ‘엄마, 많이 걱정했지? 괜찮아?’ 걱정스럽게 묻는다. 넓고 까만 운동장 기숙사 한 구석, 불빛 밑에 오똑 선 재홍이의 키가 너무 작고 비쩍 말랐다는 생각이 든다. 설사까지 했으니……
“기숙사에 뜨거운 물이 있으니 간식으로 컵라면이나 선식, 빵 정도는 가져다 놓고 먹어도 괜찮습니다.”
아무 말 없이 넉을 놓고 서있는 어미의 마음을 눈치채었는지 나와 동갑인 여자 사감 선생님의, 일체의 간식이 불허된 기숙사의 규칙을 재홍이에게 허락한다.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아프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공부를 해야 하는 이 나라의 교육정책에 화가 난다. 아이들을 둔 한국의 부모들이 파라다이스처럼 동경하는 SKY대도 국제사회에선 우리가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나라, 인도의 델리대학만큼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실정인데 그 잘난 SKY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저렇게 먹지도 자지도 못해야 한단 말인가. 다 죽지 않고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못 먹어가며 저것이 무슨 짓이란 말인가, 저러다 SKY대학을 가기 전에 SKY나라로 먼저 갈 것 같다.
불빛 밑에서 파리하게 마른 얼굴로 선 재홍이의 얼굴을 떠올리니 불쌍해서 마음이 미어질 것 같다. 한국의 아이들은 얼마나 가엾고 불쌍한가, 한참 꿈을 가지고 친구와 우정을 가지고 클 나이에 꿈은커녕 옆에 친구를 경쟁자로 생각하고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다, 하는 명제를 진리처럼 생각하며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필요 없는 지식의 노예가 되고 있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이 나라를 이끌어간다. 그러니 이명박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을 영어로 교육을 시키겠다며 난리를 치고 있다. 과연 이 나라가 어디로 갈지 답답하고 한심하다. 나라는 둘째 치고 나의 아들 재홍이나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장학금이고 기숙사고 다 팽개치고 얼른 집으로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밤새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 벌떡 일어났다. 내 새끼가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있는데 어미인 내가 어찌 쿨쿨 잘 것인가. 가슴이 소금을 뿌려 놓은 것처럼 짜게 절여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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