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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8.04.29 08:34

처량한 이미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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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위험하다고, 그렇게 나가면 건물이 은행으로 넘어갈 수도 있으니 합의를 받아주자는 변호사의  말에, 저들이 그것을 약점으로 잡고 건물 세를 깎자는 합의를 법원에 신청했다면, 나는 건물 포기해도 된다, 처음부터 있던 건물도 아니었고 바라던 건물도 아니었으니 그까지 거 없던 폭 잡으면 된다. 그 건물이 은행에 넘어간다면 그 건물 속에 들어있는 그들의 회사도 포기해야 할 거다, 그러니 같이 죽으면 된다, 그들의 요구에 부들부들 떨면서 건물을 지키기 위해 합의를 해줄 의향이 난 전혀 없다, 고 잘라 말하고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새끼들 사람 잘못 봤어! 지까지 것들처럼 몇 푼의 유언 더 타기 위해 아버지를 속여 도장을 받아 자신의 부인을 딸로, 자신의 동생으로 들어 넣는 그런 인간들에게 무얼 더 바라겠나, 처음 유언장을 작성할 때 그런 것들에게는 한 푼도 주지 말라고 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돈이 좋으면 너의 아버지를 속이고 부인을 동생으로 호적에 넣은 그 만큼의 노력의 대가만큼 받고 살아 보아라,는 생각으로 받게 놓아 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함께 똑같이 되어서 못 받게 하는 문구를 넣은 것조차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그들이 한 그대로 똑같이 해주는 것인데, 라는 후회가 수 없이 들었다. 그러다 혼자 픽 웃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구나, 라는 자조와 함께.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가 문득 거울을 보다, 중간고사와 맞물린 시간을 틈내 하루 만에 일본을 왕복한 것이 원인인지 피곤으로 부르튼 입술이 터져 붉은 피가 흘렀다. 입술에 붉은 피를 지르르 흘리고 있는 내 얼굴을 보니 귀신같았다. 피를 보니 이상하게 오기 비슷한 것이 온 몸을 덮쳤다.
‘ 그래! 이런다고 쓰러질 내가 아니지, 이것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는데, 누가 이기나 어디 두고 보자.’ 라는 오기와 함께 피로 범벅된 입술을 깨물었다. 입 속으로 흘러 든 피 맛이 비릿하다. 서둘러 세수를 끝낸 후 학교로 향했다.

“야! 그 새끼, 무시해버려! 원래 발정난 놈들은 그래! 중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더니, 요즘 우리나라는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새끼들만 우글거려, 꼴값을 한다고 지가 가르치는 과목 제발 공부나 좀 하지, 빌어먹을 놈들! 그런 놈들이 교수니 우리나라 대학들이 이 모양 이 꼴이지!”
나의 신랄한 표현에 후배는 멍청히 내 입만 쳐다본다. 더 말을 하면 내 입에서 더 험한 말이 나올 것 같아 나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수업시간에 채만식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기자를 했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채만식의 친일을 논한다. 이광수와 서정주는 말할 것도 없고.
가소로운 생각이 든다. 아마 지들이 그 시대에 살았으면 이광수와 서정주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에 자유롭다고 해서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저런 인간들이 그 시대로 돌아가면 꼭 친일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고소를 금할 수가 없다.

집에 돌아와 마음이 심란해 보지 않던 TV를 컸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미국 정상과 회담을 했다고? 그만큼 무게와 지위가 올라 간 것이라고?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한국이라는나라에서 대통령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웃겨! 게다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쇠고기 수입 다 허용하고 일본에 가서는 ‘독도’에 대한 독자도 꺼내지 못하고 돌아온 주제에!
‘우주인 이소연 귀국’
‘흥! 누구 맘대로 우주인! 200억 내고 참가한 참가자지, 무슨 우주인!’
머리가 빙글빙글 돌며 혈압이 치솟는다. 이러다 내가 내 명에 못살지, 싶다.
그래, 바보처럼 사는 거다. 자존심을 가질 수 없는 나라에서 오기는 처량한
이미테이션일 뿐.
하지만 한 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어차피 광우병에 노출된 생명들이라면 사람의 정신을 가지고 있을 때 오기라도 부리다 광우병에 걸리는 게 덜 억울하지 않을까. 어차피 죽을 거면 꽥! 소리는 치고 죽어야 한이라도 없을 것 아닌가, 덴장!’

지금 나에게 200억이 있다면 이 지긋지긋한 지구를 떠나 영원히 돌아오고 싶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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