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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례기> 다시 읽기




'전불에서 수철리로 넘어가는 계곡을 따라 냇물이 은빛을 발하며 흘러내린다'
<분례기> 제1부 제1장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전불과 수철리라는 눈에 익은 지명 때문에 읽어내려간 나는 그후 주체할 수 없는 감동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 감동은 읽은지 10년을 휠씬 넘긴 지금 이 시간에도 변함이 없다.
다만 그 감동을 객관화시키는 작업, 그러니까 문학적 평가를 나름대로 내려야잖겠느냐하는 생각이 간단없이 든다. 그래서 지금의 입장은 미학적인 접근만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리얼리즘이나 심리학적 접근, 형식주의나 역사주의 비평은 적절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분례기>의 소설 비평을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예산 사람들이 다시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적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세가지로 요약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1966년 벽두에 창간된 <<창작과 비평>>은 이듬해 여름과 가을, 겨울 3회에 걸쳐 이 작품을 연재하였는데 발표 이후 <분례기>는 문단에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을 때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이같은 현상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써 시대적 변천에 따른 문화 현상으로 파악하기에는 힘든 면을 가지고 있다. 독특하기 때문이다. 아니 가장 보편적이고 흠잡을 데 없는 건강한 내용을 천연덕스럽게 펼쳐낸 데에 따른 놀라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장 일상적인 대화나 생각이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충청도 토속어가 갖는 지역적 정서를 뛰어넘어 한국인의 비극적 정서,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심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무작위로 어느 장을 펼쳐 보더라도 이 같은 내용은 펄펄 뛰어 살아 숨쉬고 있다. 작품 속에서 각각의 인간 유형을 창출하는 작업은 작가의 역량이다. 근데 방영웅은 이를 기가막히게 형상화하고 있다. 그냥 어디 한군데를 보자.
꼴뚜기를 갖고 석서방네 아이들이 말싸움하는 장면이다.

  "머리통은 바가지 같구 발이 많이 달렸지, 잉..."
  "아념마, 그건 오징어염마. 배꼽을 꼭 누르면 먹통이 칙 허구 터지는 거염마."
  "이잉, 아무것도 모르는 게 지랄까네. 임마 꼴뚜긴 하얀 뼉다귀가 들어 있는 건디."

방영웅은 예산에서 태어났다. 여기서 유년시절과 소년기를 보냈다. 읍내의 새말에서 살았으므로 예산 시장과 그 주변의 가난하거나 질척한 삶을 꾸려가는 인간 군상들을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실제 인물인 콩조지와 옥화를 작품에 등장시킨건 이 사실을 좀더 구체화시키려는 의도였는지 모른다.
그는 누군가로부터 '똥례'라는 말을 들었을 때 깊은 충격을 느꼈고 소설적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또 '똥례'는 자신의 분신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분례기>를 탄생시켰다.
지난 6월 4일 <<EBS문학기행>>에서는 이 작품이 방영된 적이 있다. 그 분의 배려로 TV에 출연하는 행운을 가지기도 했는데 촬영을 같이하면서 나는 그에게 <분례기>이후의 작품을 보면 너무 시시해서 볼 맛이 안난다고 했다. 그는 대뜸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분례기>성공 이후에 좋은 작품을 쓰지 못했으니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 한마디의 변명도 없이 심한 열패감에 빠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것이 작가적 양심이라고 느꼈다.
둘째와 세째 손가락 손톱에는 누런 물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왠 봉숭아 물을 들였냐고 물었더니 담배를 많이 피워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담배를 연신 피워댔다. 그럴 때마다 뭔가를 생각했다. 어딘가 불안과 초조의 얼굴빛도 보였다. 늘 긴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것이 작가적 고민이라고 믿었다.
나는 살아있는 작가의 초상을 생전 처음 봤다.
방영웅은 예산이 낳은 위대한 작가이다.
예산 출신이기 때문에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선량한 작가이면서 탁월한 소설을 쓴 분이기 때문에 기억되어져야 한다. 더구나 지금도 그는 소설을 계속 쓰고 있다.
놓쳐서는 안될 또 한가지가 있다. 우리 문학사에 길이 빛날 <분례기>는 26세에 쓴 작가의 처녀작이다. 더구나 장편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 완벽한 경지에 가있다는 사실은 차라리 불가사의에 가깝다. 결말 부분에 '똥례'가 '옥화'와 마찬가지로 실성한 여자가 되어 '해뜨는 나라'로 떠나는 모습이 다소 불만스럽게 보이는 듯하나 가만 보면 그런 처리가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곳곳에 서려있는 암시와 은유를 상기해 볼 때 끄트머리 역시 비극적인 처리가 예정되었을텐데 지나친 비약이나 극적인 변화는 작품의 흐름을 깰 수 있다는 맥락에서다. 억지없이 마무리한 비극미가 읽는이로 하여금 오히려 안도감을 갖게 만든다. 사람에게 분명 슬픔의 샘이 있는 모양이다.
똥례와 용팔의 설정으로 시작된 이 작품은 역시 용팔과 똥례의 등장으로 끝을 맺는다. 한 편의 긴 서정시를 읽고 난 느낌이다. 또한 사상과 이념을 말하지 않으면서 진정한 리얼리티를 획득한 소설이라는 생각도 든다.
1960년대부터는 문학의 현실참여문제로 야기된 순수참여 논쟁이 쭉 있어왔다. 요즘은 그런 일들이 표면에 드러나고 있지 않으나 대체적인 선은 긋고 살기 마련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분례기>는 그 어느 쪽에도 걸쳐있지 않다. 좀 더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두 쪽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왜 이럴까. 그것은 이 작품이 완벽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완벽은 꽉 찼다는 의미가 아니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가장 완벽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
<분례기>는 그래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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