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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자방아가 있는 망실마을의 겨울풍경


강원도 양양에 있는 진전사터에 가보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까만 삼층석탑이 있고 좀 더 위로 오르게 되면 도의선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도가 한 기(基) 있다.
이곳을 내려와 발걸음을 다시 위로 옮기다 보면 바로 제방 둑에 와 닿는다. 둔전저수지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의 미감(美感)은 해변가나 그 주변에서 보는 모습하고는 판연히 다른데가 있다. 바다를 올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저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이 냇물이 이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곧 이 물줄기가 저 바다에서 이 계곡으로 역류하는 것이 맞다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정경은 진전사터 부근에 있는 거대한 철탑 관계로 사람눈의 한가운데를 양보하며 바라봐야하는 수고로움과 애석함이 있다. 바다를 바라보는 시야를 번거롭게하는 안타까움이다.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제방 둑을 내려오며 고민했던 건 미추(美醜)에 대한 관념을 폭넓게 확장해야 한다는 내 나름의 다짐이었다. 과거의 유물 유적 뿐만 아니라 실용적 가치 밖에 없다고 판단되는 현재의 조형물까지도 포괄하여 내 의식의 문화미(文化美)라는 틀 속에 끌어올리는 작업이었다.
간고(艱苦)하게 살았던 6,70년대 산업화 과정 속에서의 조상이 남긴 문화를 보살핀다는 것과,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답사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정치적 소수인들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설령 문화에 대한 보존 및 확대를 부르짖던 안목의 소유자인 그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시대상황과 맞물려 묵살당하기 일쑤였거나 발언 자체가 금기시 되었을 것이다. 국가의 생존을 위해 벌였던 산업화 정책은 옛날의 절터 근처에 철탑을 세우는 것쯤은 지금 판단해보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 이렇게 진전사지(陳田寺址)를 포함한 그 근방에는 삼층석탑과 부도와 저수지, 그리고 전선줄을 받쳐주는 철탑이 어우러져 우리 시대 문화의 한 단면으로 새겨지고 있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하여 미래의 문화미를 설계해 보는 것은 의미있고 뜻깊은 일이리라.
망실마을은 충남 예산군 대술면 화산리에 있는 한 촌락이다. 가호 수는 20여호인데 산자락 아래 제각기 터를 잡고 앉아 있는 집들이 여간 포근하고 살가워보이는 것이 아니다. 산이 껴안아 주는 듯한 따뜻함이 유별나다. 대부분 함석집이지만 잘 지어진 집도 있고 허실한 집도 있다. 동구(洞口) 오른쪽 바로 산 위에 적당한 사이를 두고 서있는 작은 소나무 두 그루는 이 겨울에 윤기가 더욱 푸르다.
작고 아담한 마을의 정형을 찾고자 할 때 이 마을은 거기에 부끄러움이 없다.
내가 이곳을 안 것은 작년 2월 경기지역의 한 역사교사모임에서 예산지역 답사의 안내를 부탁받고 답사지(踏査地)를 물색하다가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연자방아가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 가보았던 것인데 동네의 풍경에 그만 반해버리고 말았다. 이후 가끔 시간날 때마다 연자방아를 보기 위해, 아름다운 마을을 보기 위해 들르곤 했다.
연자방아는 짚으로 엮은 정자(亭子) 안에 놓여져 있고 연자매 대(臺)에는 구입과정과 보존경위를 적어논 글이 잘 새겨져 있다. 실제 이 연자방아는 6.25가 끝난 후까지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 기둥 위에는 공중전화박스가 한 대 매달려 있으나 전화기는 없다. 시외전화를 할 경우 집에서 사용하면 요금이 비싸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6년 전 설치해 놓은 것이지만 고장이 많고 이용률이 떨어져 어느 해인가 없어졌다고 한다. 대신 지금 그 안에는 식용유, 액체육젓, 후추 등의 용기들이 놓여져 있다. 또 다른 기둥에는 벽걸이용 둥근 시계가 매달여 있고 탁자 위엔 접시, 쟁반, 수저, 칼, 도마 등 부엌 집기들이 가스렌지와 함께 동리(洞里) 기물로 항상 비치되어 있다. 주민들의 놀이나 회식 때 사용하기 위해서다.
모두 공동체 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농촌만의 정겨운 모습이다.
마을 입구까지 시멘트 포장이 잘 되어 있으며 예산 읍내 간 버스 운행횟수는 하루 4회지만 눈이 오는 이런 겨울엔 결행(缺行)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버스라도 언제든지 돌려나갈 수 있고 주차할 수 있는 지점엔 수령이 길지 않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그 옆에는 콤바인 한 대가 두꺼운 비닐 포장지로 푹 덮여져 있다. 눈과 비를 가리기 위해서다.
그 아래로는 계단식 논이 저 위 산 가랑이에서 시작해 점점 넓어져 저 아래 냇가에까지 펼쳐진다. 한 집당 보통 논 열마지기에서 스무마지기 가량 짓는 여느 산촌과 다름없는 이 망실마을.
그런데 이 마을의 장래가 여느 시골처럼 어둡기만 하다.
이제 웬만한 농촌에서는 돌아가는 세상물정도 꿰뚫어보고 두 눈을 번뜩이며 특용작물 재배 및 각종 사육 등으로 생산성을 높이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 요즘같은 겨울날에도 농장에서,  비닐하우스에서 일하기 바쁘다.
하지만 이 동네에선 그런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거니와 어떤 별다른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기 주민들이 농촌만이 갖는 원초적 미네랄만을 섭취하려 한다거나 하늘바라기 논을 그냥 천수답만으로 묶어두려하지는 않는다. 일제시대까지도 있었다던 저수지를 다시 만들어 농수를 확보하고 관개수리시설을 마련하여 물의 쓰임을 원활히하고 싶다는 간절한 호소를 삭이고 있다. 이를 위하여 전에 관계기관을 찾아가 여러차례 건의하였으나 그때마다 허사였다고 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더 나아가 경지정리(耕地整理)를 통하여 일의 효율성과 경작지 우선의 생산성을 높이자는 데도 공감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 마을의 앞날을 걱정한다. 젊은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50여명의 마을 인구 가운데 일을 배우는데 서슴지 않고, 가장 왕성하게 일할 20대와 30대가 한 사람도 없다. 초.중.고생은 모두 7명. 어린아이는 아예 있지도 않다. 이런 상황을 주시하면서 이곳 어른들은 무척 안타까워 한다. 저 논밭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잡초와 잡목지대로 변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운 몸짓이 이 겨울만큼이나 춥다.
농촌사회가 갖는 골격의 이완이 드러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적은 농토나마 자기땅을 스스로 경작하여 먹고사는 일이 붕괴될 지 모르는 향촌(鄕村)경제의 쇠퇴 현상을 미리 지켜보면서 우리가 지금 그 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그 분들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일이다. 또 그렇게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건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하늘을 향해 두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는 일이다.
앞으로 이 땅에 진정한 최고 권력자가 나온다면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은 남북으로 갈라진 저 철조망을 속히 거두는 일일 것이며 그 다음으로는 농촌과 그 사회의 본래적 기능을 온전히 보전함과 동시에 잘 살 수 있는 여건을 계속 부여함일 것이다. 농촌 인구가 더이상 줄지 않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농촌의 삶은 모든 사회기능의 실핏줄이며 젖줄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농촌이 갖는 속성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根本的)이고 시원적(始源的)인 문제여서 경제적 효용가치와는 거리가 먼 자리에 있다. 엄숙하게 받아들여야할 일이며 절실한 고민과 함께 대책을 세워야 하는 국면이다.
우리는 정녕 향촌인구의 희귀성(稀貴性)으로 말미암아 농부의 존재가 신성해지는 기현상(奇現象)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런 서글픈 광경을 고대하는가. 아닐 것이다. 지금과 같이 가장 보편적인 모습으로 흙을 일구길 바랄 것이며 바람직한 농촌 사회의 토양 위에 깊숙이 뿌리박은 신성한 농부의 존재를 더 원할 것이다. 이것이 또한 튼실한 사회발전의 디딤돌이고 인간의 본연성을 회복해 가는 길일 것이다.
비룡망해(飛龍望海)의 형국을 근거로 하여 마을 이름이 망실(望實). 그것이 결국 화산(花山)의 화산리(花山里)로 이룩되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고장인가.
연자방아가 있는 망실마을. 그리고 경지정리가 잘된 저 논과 거기서 일하는 농부들.
우리는 행복한 눈으로 저 풍경을 바라봐야만 한다.
마치 둔전저수지에서 저 거대한 철탑을 눈 한가운데에 끼고 진전사지 탑과 동해바다를 바라보는 애석함을 싫어하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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