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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8.09.25 13:33

선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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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자밀라를 읽고

처음 털북숭이의 귀여운 강아지의 그림이 중간중간 나오는 책을 흩어보며 전공서에 찌든
머리를 시키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미 책을 읽는 순간 나는 습관대로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겐 또 공부가 된 셈이다.
내가 창작 공부를 하기 전에는 책 읽는 것이 취미였고 글씨는 것이 기쁨이었다. 하지만 직접 공부를 하고 나니 이제 취미와 기쁨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되었다. 모든 것이 나와 멀리 있을 때가 편한 법이다 일단 가까이 가면 피곤해지는 법이다. 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의도한 것이 무엇인가, 작품 속에 감춰진 메타포는 무엇인가, 나는 이 작품을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그렇게 이미 나의 머리는 길들여져 버렸다. 그러니 책을 읽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스트레스다. 그렇기에 난 아직 미숙하다. 스트레스가 아닌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으로 다가오는 경지에 나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각설하고 작가가 어떤 의도로 썼던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독자 수용미학이 된다. 독자들이 그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작품을 쓴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독자 각각의 또 다른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에게 있어 창조적 배반이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그 순간부터 여러 독자들에게 또 다른 작품으로 창조될 배반의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창조적 배반은 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치우’라는 강아지 이름은 2002년 월드컵 때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응원단인 T셔츠에 붉은 악마의 트레드 마크가 바로 치우천황, 즉 어떠한 전쟁에서도 지지 않는 전쟁의 신인 치우천왕의 이미지를 딴 것이다. ‘치우’라는 강아지 이름에서부터 난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치우’는 자본이라는 적과 싸우는 전쟁의 신이 아닐까,  ‘치우’가 일반 집이 아닌 먹거리에 문제가 되고 있는 육식을 팔고 있는 돈가스 집에서 생활하는 강아지란 점도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자본이라는 거대한 신에 노예가 되어 사는 우리들의 삶에는 여러 가지 모습들이 담겨있다. 돈을 벌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자밀라, 그 자밀라는 ‘돈이 웬수야, 돈이 웬수’ 라며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하고 허리가 아픈 날에는 우즈베키스탄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옥상에서 흐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자밀라의 남편 알리세르 또한 돈을 벌기 위해 아내가 있는 한국으로 온다. 우즈베키스탄의 종교인 무슬람은 육식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육식을 하지 않는 자밀라는 돈을 벌기 위해 육식을 파는 돈가스 집에서 일을 한다.
돈이라는 자본 앞에서는 종교도 힘을 잃는 것이다.
알리세르는 농장에 일하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어느 공장으로 들어간다. 결국 알리세르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 부상을 당하지만 보상금 한 푼 못 받고 그동안 아내인 자밀라와 지신이 번 돈을 쓰며 치료하다, 치료비가 모자라 더 치료를 받지 못하고 아픈 몸으로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 때문에 자밀라는 기간을 연장해 더 일을 해야 했다. ‘치우’가 좋아하는 대상들은 이 사회에서 소외된 자페아인 상재, 아버지에게 맞아 부들부들 떨며 홀 서빙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영우, 외국인 노동자 자밀라, 파산하여 약수터에서 노숙을 하는 아저씨, 오른쪽 발목이 없는 해피, 남편이 농약중독으로 죽자 시골일이 싫다며 자신의 딸 순지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나가 버린, 부모에게 버림 받은 순지, 순지를 기르며 배나무 과수원을 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다.
‘치우’가 잠시 들어가 살게 된 개농장에서 돈에 눈이 먼 주인에게 끌려 시합에 나갔다가 번번이 찢기고 떨어져 피투성이로 돌아와 결국 용도폐기 되는 투견들의 생활을 보게 된다. 어쩌면 이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습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에서 맞춤형 인간으로 충실하게 일하다 쓸모가 없어지면 결국 용도폐기 되는 우리들의 모습.
어느 날 자밀라는 결국 출입국 관리소에 걸려 강제출국을 당하게 된다. 자밀라가 없는 주방일을 할 사람이 없게 된 돈가스 집도 문을 닫고 주인은 ‘치우’와 함께 살, 마당이 있는 집을 구한다. 그 집은 순지가 살고, 발을 저는 해피와 파산 한 아저씨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이 시대에 버림받은 소외된 자들이 사는 과수원 바로 가까운, 언제나 ‘치우’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은 바로 배꽃이 아름답게 피면 배꽃 수정을 하며 사는  자연이다. 자연으로 돌아간 치우는 이제 자본과의 전쟁을 끝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남는다. 배를 팔며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순지, 아저씨와 해피, 과수원 식구들은 자본과의 생활과 상관이 없는 것인가, 배를 파는 행위 역시 자본에 종속된 것이 아닌가, 그리고 돈가스 집을 그만 둔 ‘치우’의 주인은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먹고 살 것인가, 김수행 교수는 자본주의에 대안으로 원시 공동체 생활을 제시했다. 어떤 방식으로 자본이 없이 원시 물물 교환이 이루어지도록 만들 것인가, 재벌들이 가지고 있는 돈을 어떻게 포기하게 만들 것인가,  
그 대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선래님 제 나름대로 열심히 읽은 저의 독후감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해해 주세요. 좋은 책을 읽게 해주셔서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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