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상 게시판

청구회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처음처럼
이미지 클릭하면 저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숲속의소리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가 남긴 작은 미덕에 대하여




뉴스와 교양물을 포함한 각종 이슈물과 오락물을 보다 보면 TV의 당당한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그것 앞에 앉아 있을 때면 가끔씩은 이 화면이 이렇게까지 나를 가두어놓나 스스로 놀라기도 하고 보여지는 것, 알려지는 것에 대하여 너무 무의식적으로 반응되어지지 않나 뒤를 짚어보기도 한다.
특히 이삼년 전부터 시작돼 근래들어 빈발하고 있는 고발성, 폭로성 시사물들은 지나치게 감각적이고 엽기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 많아서 그것이 갖는 본래 취지와는 무관하게 삼삼한 얘기꺼리만을 제공하는 음충한 내용물이라는 걸 목격하게 된다. 이런 속에서 사람에게 내적 충만감을 가져다주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 모르며 그것이 음악이라는 양식을 빌은 것이라면 더욱 배가(倍加)되기 마련일 것이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TV를 즐겨보는 편이며 어떤 종류든 음악을 꽤나 좋아하는 나의 입장에서 이 프로그램에 천착하게 된 것은 따라서 필연적 귀결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음악이 주는 기쁨과 아울러 프로그램 자체에 더욱 흥미를 느끼고 매료돼버려 이에 대한 관심은 다른 음악 방송보다도 비교되지 않는 아주 각별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진행자의 순박한 재치와 생동감이 살아 있었으며 음악의 폭넓은 장르들이 망라되어 들려준 것은 물론 삶의 진솔한 얘기들이 있었고 소극장 형태로써의 공간을 살린 현장감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은 지난 4월 29일 마지막 방송을 하던 때였다. 이날도 어김없이 자리에 앉아 텔레비젼 화면을 주시하고 있는데 종회(終會)를 고하는 것이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이라서 순간적으로 엄청 서운해 했는데 이런 감정이 돌연 감동으로 바뀌어 버린건 잠시 후였다.
99회째로 끝을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100회를 눈 앞에 두고 끝낸 것이다. 여기에서 얻은 충격은 다름아닌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였다. 자기 프로그램에 대한 과시 욕구를 최대로 발산할 수 있는 문턱에서 스스로 접을 줄 아는 제작진과 진행자에게 존경스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영악한 프로의 세계에서 이런 겸양의 미덕을 갖추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끝을 내야 할 입장이라 하더라도-같은 시간대의 타사(他社) 방송과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 상업적 효과가 떨어져 그랬는지, 이제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이 등장하여 이것의 입지(立地)가 좁아져 거두어들여야 할 상황이었는지, 종종 방송을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어떤 특수한 사정이 있었는지 아니면 또다른 이유가 내재해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100회 특집물은 한번 엮어보고 화려하게 끝냈어야 위악적 상업 방송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네 사고(思考)의 수순에 걸맞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목전에서 거두어들인 것이다. 아주 당당한 일이다. 노영심은 이날 담당 프로듀서가 지었다는 시(詩)를 읊으며 막을 내린다. 그리고 읽는 도중에 울먹이면서 말하기를 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PD선생님이 시를 쓰는 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 시를 쓰는 사람은 겸손의 미덕을 갖춘 이들이 많다. 사회 현실이나 삶의 현상들을 오래 주목하고 반추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낮추는 작업에 아주 익숙해지기 마련일 것이다.
이런 훌륭한 프로그램 제작자가 있었기에 이 방송이 그동안 지속될 수 있었음을 쉬 짐작할 수 있고 덕분에 진행자도 그많은 실례와 실수투성이들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참석자에 대하여 짓궂을 정도의 질문공세들, 남녀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자기는 남자가 좋다며 남자 가수에게만 집중적으로 마이크를 들이대는 행위, 같이 서서 얘기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린다며 피아노 의자에 가 앉는 장면 등 진행자로서의 자질을 물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대목이 하도 많이 눈에 띄어 안타깝기까지 했는데 우리가 그녀의 이런 모습에서 질타를 가하지 않고 이해와 포용의 자세를 견지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순수라는 자기 모습을 끝까지 보여줬기 때문이다. 언어구사의 영특함에 비하여 절대 태(態)를 부리지 않은 것도 작지만 커다란 미덕이었다.
인생의 테마가 무엇이냐고 묻는 방청객의 질문에 그녀는 대뜸 사랑이라 대답했고, '작별'이라는 곡(曲)을 트럼펫 연주자의 독주 소리와 함께 먼 훗날을 기약했다.
그런데 그 소리의 여운이 에밀레 종소리처럼 오래 간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2년여 동안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나 보다. 또한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였나 보다.
그리고 나는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와 '그녀'에게 남다른 애정을 갖고 좀 깊게 빠져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445 가을, 미술관이 참 좋더군요 ^^ 3 레인메이커 2008.11.14
2444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것 3 01 2008.11.12
2443 그냥 적어 보는 글 7 김선래 2008.11.12
2442 석유기(昔遊記) 6- &lt;추사기념관&gt; 다시 찾기 유천 2008.11.10
» 석유기(昔遊記) 5- &lt;노영심의 작은 음악회&gt;... 유천 2008.11.10
2440 부겐베리아 2 김성숙 2008.11.07
2439 정해찬 선생님께-"헌법재판소를 움직이는사람들은 누구인가?" 2 허필두 2008.11.05
2438 체벌 논란 총정리- 체벌 반대편 3 정해찬 2008.11.03
2437 체벌 논란 총정리- 체벌 찬성편 정해찬 2008.11.02
2436 나에게 눈물이 없다 지나가다 2008.11.02
2435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신성불가침인가 1 정해찬 2008.11.01
2434 아이들과 함께 만든 서울교과서 한강 2 레인메이커 2008.10.30
2433 진짜 지역주의는 영호남이 아니라 서울이다. 정해찬 2008.10.30
2432 혹시 호주 멜버른에 사시는 나무님 계시나요? 1 장은석 2008.10.30
2431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 1 레인메이커 2008.10.29
2430 파티를 한다면 이런곳에서 해야지 11 김성숙 2008.10.27
2429 (번개 or 파티?) 금요일(31일) 종로에서 뵈요~^^ 9 김동영 2008.10.26
2428 지율스님과 네티즌 1 정해찬 2008.10.25
2427 대학생이여 생각하라, 비판하라, 저항...노래하라 1 유천 2008.10.24
2426 바이블 7 박명아 2008.10.23
Board Pagination ‹ Prev 1 ...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 167 Next ›
/ 16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