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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9.03.16 11:53

사소한 일,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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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이 다 눈에 가시여서 마음이 울적할 때
나보다 더 힘든 세상과 만났을 일제 강점기 시대의 시인들을
생각한다.

오늘은  이용악의 시를 외워야 겠다고 마음 먹고
칠판에 '다리우에서'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몇줄 적기도 전에
선생님 안보여요....
저게 뭔 자에
뒤돌아 보니
홍민이는 앞으로 나와서 적는다.
작은 키에 고개를 90도 정도 쳐들고 칠판을 봐야 하면서도
한글자 적고 또 쳐들고 보고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지우는 언제나 그렇듯이
아무런 표정없이 그냥 앉아있다
지우야 너는 안적냐...
내가 물어도 안적는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칠판을 보고 시를 적어나가면서
그래 ...니 식대로 한번 살아봐라...
담담하게 이런 생각이 든다.


바람이 거센 밤이면
몇 번이고 꺼지는 네모난 장명등을
궤짝 밟고 서서 몇 번이고 새로 밝힐 때
누나는
별 많은 밤이 되어 무섭다고 했다


국수집 찾아가는 다리 위에서
문득 그리워지는
누나도 나도 어려선 국수집 아이


단오도 설도 아닌 풀벌레 우는 가을철
단 하루
아버지의 제삿날만 일을 쉬고
어른처럼 곡을 했다

아이들에게 이 시를 한참 동안 설명했다.
별이 많은 밤이 왜 무섭지....
발이 쏟아 질것같은 .그런 밤하늘 본사람....이런 질문도 주고 받고
국수는 지금도 누구나 쉽게 먹을 수있는 음식이란점.
국수집은 돈은 많이 벌진 못하나 쉽게 차릴수있는 서민들의
장사란 점..
일년에 하루 쉰다는 말은 얼마나 힘든 일상사를 포함한 말인지를.

돌아가면서 한명씩 일어나
시인처럼 읽어보는 시간..
지우도, 홍민이도, 명희도, 승규도,승주도, 연주도,연경이도,세민이도
진욱이도...다 읽고 난 뒤.이제부터는 혼자서 외워보라고 했다.

그러자 몇분 지나지않아 진욱이가 손을 번쩍 들면서
외울수있다고 시켜달라고 했다.
나는 보나마나 너 몇군데 틀릴것이니...다시 열심히 외우라고 말렸는데
일이분 뒤에 다시 손을 든다..

한번 더 말렸다.
그동안 수업시간에 대답을 너무 쉽고 빨리해서 신중하게 말하란
충고를 한두번 했던 아이다.

진욱이는 답답하다는 듯
선생님 할 수있어요.....애원을 했다.
5분도 지나지 않아서다.

그래..
그러면
알았어..

자 진욱이가 한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울수있다는데.
이말에 맞다 정말 그럴거라고 믿는 학생 손들어봐.
앗..무려 8명정도가 손을 든다.

그래..음 그러면 아니다 문명히 틀리것이다 생각하는 사람..
두명..

그래 그러면 한번 해봐

진욱이는 침을 꼴딱 삼키면서
다짐하듯 입술에 힘을 준 뒤.

시를 외우기 시작했다.

아..이런.
몇군데 미끄러질것같은 곳에서 용케도 살려내는 솜씨

숨죽이고 듣고 있던 우리들은
시를 다 외우고 자리에 앉는 진욱이에게 박수를  쳐줬다.
처음 시를 외울 때 더듬거리던 기억만이 남았었는데
어느새..진욱이는 학년도 올라가고 시의 운율도 탄력있게 느낄 줄 아는
학생으로 바뀌었던 거다.

아이들 얼굴에는 진욱이의 성공이 본인의 성공처럼 느껴지는 듯.
뿌뜻한 미소가 함께 번졌다..
그래 나만 진욱이가 못할거라고 생각했구나..

진욱아 선생님이 니가 틀릴거라고 생각한 것
미안해...
이제 진욱이는 시를 아주 잘 외는 학생이라고 다시 생각할께..
그리고 씩..웃었다.
(속으로 정말 미안했다...처음 손들었을 때 바로 시켰어야 하는데)

그 뒤로
몇명의 학생들이 '다리우에서'를 외웠다.
나도 그날 외웠다.
그래도 못외운 학생들은 이번 주에 가서 다시
외우기로 했다.

이번 주가 지나면 우린 이용약이란 시인의 인생도 슬쩍 알게되고
그의 '다리우에서'를 함께 외울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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