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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그런 꿈을 꾸고 나면 며칠 동안은 죄짓고 사는 지금의 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하게 한다. 그리고 힘들어진다. 꼭 꿈 속에서 어머니는 장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다. 학교갔다가 와보면 어머니가 없는 빈집은 그렇게 휑할 수가 없다. 맘 속으로 이맘때면 오셨겠지 하는 끈을 놓지 않고 놀다가 해질녘 들어온 우리 집 마루는 고요한 빈집이다. 하루가 지나도 오지 않고, 급기야 우리 형제와 막내 여동생까지 모두 광천장으로 어머니를 찾아나선다. 아이들에겐 서울보다 먼 30리길을 걸어서 걸어서. 장 바닥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다 찾지 못하고 갈때 보다 더 멀어진 길을 터벅 터벅 걸어서 온다. 애들끼리 꾸려 나가는 생활은 더욱 어머니의 존재를 크게 만들고, 암묵적으로 합의된 어머니 얘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지만, 각각 아이들의 가슴 속에는 어머니만 차지하고 있다.  

이런 꿈을 꾸고 나면 고향에 홀로 게신 어머니가 어디 아프시지는 아닌 건지, 정말 이렇게 홀연히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마음이 헝클어지고, 내가 지은 죄를 갚을 기회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다행히 나의 꿈은 우리 현실의 아주 작은 어느 부분도 짚어내지 못하는 좋은 꿈으로 끝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모습을 애타게 바라보도록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그 죄지음은 아득할 정도로 크기만 하다.

오늘은 오랫동안 끌어안고 사셨던 아픈 무릎을 수술하는 날. 여전히 병원에서 수발드는 일을 형수님에게 맡겨드려야 하는 마음은 너무 무겁다. 그 죄스런 마음이 이렇게 끄적이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다. 몸이 아픈 이럴 때는 둘 째 며느리와 손주라도 왔다갔다 해야 이웃 병상에 함께 있는 분들에게 아들 자랑이라도 할 텐데. 무슨 박산지 뭔지 공부한다며 자전거타고 들리곤 하는 늙은 아들의 존재는, 아마 우리 어머니가 갖고 있는 인식의 틀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아들이 아닐 것이다. 가급적이면 감추고 싶은 ‘나’일 것이다.

젊어서부터 아이들 키우려고 밭에서 나는 애호박, 무, 배추와 광천장에서 떼어온 동태며 고등어 마른 생선, 찐빵들을 챙겨 고무다라에 이고 이 마을 저 마을 행상을 다니셨던 그 다리, 하루도 돌아보지 않으면 금새 잡초 밭으로 변해버리는 밭을 한 여름에도 꼼짝없이 땅에 붙어 밭을 매고, 밭작물 겆이를 여자의 몸으로 이고지고 해야만 했던 그 다리, 남정네들의 몫인 나무하는 일을 산 주인 몰래 갈퀴로 솔골을 긁고 낫으로 솔가지를 쳐내 한 동가리씩 머리로 이고 날랐던 그 다리, 네 형제들이 내놓는 빨래를 겨울이고 여름이고 논 가운데 빨래터로 가야했고, 물에 젖은 무거운 빨래를 다시 이고 왔던 그 다리, 가끔 시골에 내려가면 동생네며 형네 갖다 주라고 종종 걸음으로 된장, 고추장, 참깨를 챙기시던 그 다리, 그렇게 새끼들을 위해 하루도 쉴 사이없던 어머니의 그 무릎이 세월에 못 이기고 무너지고, 자식 걱정에 패이고, 깎이고 하여 이제 엉금엉금 기어다니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지금의 나는 어머니의 몸 일부분을 끝없이 부숴 뜨리면서 이렇게 있을 수 있었건만, 나는 지금 무엇을 하면서 사는 것인가. 주변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공부, 세상을 바꾸는 공부를 하겠노라는 이 주책없는 나의 꿈이 너무도 부질없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나는 정말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고자 하는 것인가. 정말 꿈속에서처럼 홀연히 떠날 수 있는 어머니에게 불효의 죄를 지으면서 사는 이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우리 어머니의 삶에 비춰보면 나는 너무도 보잘 것 없는 삶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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