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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공무원 첫 발령지는 대추리가 있는 팽성읍입니다..
지금은 잘 모르지만 당시에는 인구 2만이 조금 넘는 곳으로 평택시와 바로 인접해 있고 시내버스가 5~10분 간격으로 있어 출퇴근하기에 편한 지역이라 다른 발령동기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발령을 받고 업무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로 특이한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행정부락수가 총 63개로 다른 지역에 비해 세배이상 되었고 면적 또한 넓어 출장이 있을 때는 하루에 끝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지역주민의 계충도 그렇게 다양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군부대(K6) 앞 동네인 안정리 지역은 대부분의 주민이 미군을 상대로 하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가옥 구조의 대부분은 미군 영외거주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대업을 위해 당시만 해도 꽤 고급스런 주택들로 지어져 있고 문 앞에는 'Room for Rent' 라는 영문표자가 붙어 있고, 상가는 보세품 판매점, 옷 수선점, 장신구 판매점 등으로 가려져 있으면서 그 뒤를 돌아가면 미군전용 크럽, 그리고 그 뒤는 윤락가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시골이긴 하지만 밤이면 지금의 강남이 무색할 정도의 불빛이 현란하였습니다.

길거리의 차는 대부분 포드나 GM의 스타일로 가득하고 몇몇의 지역주민들도 외제차를 운행합니다.(특히 젊은 남자가 외제차를 운행하면 ‘제 매형 잘 만났네’ 하는 농담도 있고..)

저도 그 지역으로 출장을 가면 이장님은 접대용 음료수로 물건너온 Coke, 세븐업, 맥심커피를 내 놓으시고, 술 한잔 할 때는 맥주는 버드와이저, 양주는 죠니워커와 시바스리갈 있습니다.
나이가 어리기도 했고 지금처럼 미국과의 관계와 미군의 역할에 대해서 깊은 생각이 없던 때라 양담배 한대를 피우고, 목마를 때 버드와이저 한 캔 마시고, 양주를 소주처럼 부담 없이 마시면서 스스로 꽤나 고급스럽게 산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얼마가지 않아 깨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사회복지 업무를 보면서 영세민 대상자가 40대 중반의 아주머니인데 직업이 흔히 말하는 ‘양공주’ 였습니다.
현장 조사를 할 일이 있어 주소를 보고 찾아갔더니 윤락골목의 작은 방 하나를 얻어서 있었습니다. 4월 경으로 생각되는데 방은 온기가 하나도 없고 살림살이도 작은 침대와 화장대 하나, 그리고 방문 앞에 놓인 괘짝의 그릇 몇 개가 전부였습니다.
나이도 있고 해서 아주머니는 그 곳에서 일하는 아가씨들 잔심부름을 하며 생활한다고 생각하고 면담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아주머니는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젊은 미군을 상대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아주머니께 ‘아주머니 나이가 있는데 누가 와요?’ 했더니 아주머니는 늦은 밤 짙은 화장을 하고 있으면 술취한 미군을 상대할 수 있는데 그것도 이제 대부분 소문이 나서 아주 어렵게 생활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 아주머니는 오래전에 같이 살던 미군을 따라 미국가지도 갔었다고 합니다. 한 6개월 살다가 이런저런 연유로 살 수없게 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경험이 있기도 하고, 한 때는 미군과 같이 살아주는 대가로 용산 미8군 PX출입증을 이용해서 물건을 사다가 밖에 팔기도 할 때는 그런대로 수입이 좋았다고 합니다.]

지금 대추리 분쟁을 보면서 찬성하는 측의 주장이 과연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궁금해 집니다.

팽성읍은 다른 지역에 비해 면적이 무척 넓은데(구체적인 면적에 대해 기억은 안남) 팽성읍 한 가운데 K6가 있고 그 둘레에 마을이 둘러 쌓여 있습니다. 읍 지역을 한바퀴 순회하려면 지금 서울을 둘러싼 외곽순화고속도로와 같이 한바퀴를 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동그런 원 속에 다른 원이 하나 들어있는 형태입니다. K6 전체는 높은 철책으로 둘러쳐 있고 철책 바로 옆은 순찰도로가 되어있는데 마치 GOP의 남방한계선 철책과 다를바 없습니다.

읍 전체가 K6를 제외하고는 모두 농사지역으로 되어있습니다.
아산호로 인해 수량이 풍부하고 대부분이 평지로 되어있어 농사짓기에는 아주 적합한 지역입니다. 특히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오래전에 농사지을 땅을 찾아서 이주해온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이전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추리 뿐 아니라 다른 지역도 대부분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가 대추리에 애정이 갔던 부분은 그 곳에 근무할 때 대추리에는 방앗간을 운영하는 친구 형님이 계셨습니다. 안성에서 방앗간을 하시다가 논농사가 많은 지역인 대추리로 오셔서 방앗간을 인수해 운영하셨습니다. 가끔 출장을 나가는 길에 그곳에 들러 인사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눈 적이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나름대로 정이 가곤 했습니다. 또 대추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은 아산호 주변이라 송림과 호수과 어우러져 직원들의 야유회로 가끔 찾고도 했었습니다.
아마 농사를 짓는 분들이라면 대추리같이 좋은 여건도 흔치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선 논농사를 짓는데 지형이 평탄하고,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어 물걱정 없고, 생활하기에도 인근 평택시를 10분 정도면 갈 수 있어 도농 복합지역으로서 최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만 해도 대추리는 그저 한적한 동네에 불과했고 제 기억으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인구가 좀 많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번 대추리 사태를 보면서 팽성읍은 농사짓는 분들이 묵묵히 농사만 지을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추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도두리와 신대리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의 주민 대부분은 6.25 직후 강원도 철원과 이북쪽에서 피난을 온 분들이 대부분인데 당시에는 그 지역이 바다와 인접한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 마을앞 바다를 막으면 농사지릉 땅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하여 피난민들이 맨손으로 바다를 메꾸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정부에서도 농지확보 차원과 식량증산의 차원에서 일부 배급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메운 바다는 실로 엄청난 규모인데 몇 년 후 지금의 세종대학 재단에서 자기들의 땅이라면서 반환해 줄 것을 요구해 왔고 수년간의 재판을 거쳐서 대양학원의 승소로 결말이 났습니다.(박정희 시대때)
독재정권 하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주민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하루아침에 소작인으로 전락했고 대양학원은 재단의 농장으로 운영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우러이 흐르면서 도두리, 신대리 주민들은 잃어버린 땅을 찾기 위해 다시 투쟁을 하였고 88년 여름 대대적인 농지반환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5월 모내기 철에 신대리, 도두리 주민들은 대양학원의 농장을 접수하고 마을 입구의 모든 통로를 맊고 땅 찾기를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무시무시한 경찰의 무력은 마치 전장의 전투와 같이 마을을 공격하여 주민들을 무력화 시켰습니다.

읍사무소에 근부하던 대부분의 직원들은 도두리와 신대리의 주민 대부분을 잘 알고 있고, 농지분재의 잘못된 점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말한마디 못하고 그저 쳐다만 볼 뿐이었습니다.
읍사무소가 하루는 경찰이 하루는 농민이 차지하기를 몇 차례 반복되면서 모든 업무는 마비되고, 농민을 돕기 위해 나온 학생들은 개처럼 끌려 경찰차에 실리고....
그저 먼발치서 바라만 보는 가슴에는 한없는 서러움이 흘렀습니다.
그저 힘이 없다는 서러움이었습니다.

마을의 동정이 궁금하였지만 입구가 차단되어 들어갈 수 없었으나 도두리와 신대리를 담당하는 직원들에게는 문을 열어주어 갈 수 있었습니다.
말없이 모든 일을 잘 도와주시던 이장님은 그동안 자신들이 법정에 제출하였던 여러 가지 증거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옷이 없어 여자의 젖가슴이 다 보이는 작업하는 장면, 돌을 끌고 메고 제방을 쌓는 장면 등 이었지만 전혀 재판의 과정에서 반영이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흐느끼셨습니다.

지금 대추리 지키기에 앞장서는 가수 정태춘씨도 도두리 출신입니다. 그 분의 어머니, 아버지 역시 그 제방을 쌓고 농사를 지어 아이를 키우고 학교를 보내고....

당시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과 분개하지만 어쩔수 없는 현실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울분을 토로했던..,,

멀지 않은 기억이지만 아주 멀리 있었는데 혜영이의 대추리돕기 제안에 퍼뜩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어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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