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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에 대해 아리랑님께서 두 가지를 지적하여 주셨습니다.

요즘 개인적인 사정부터 탐탁찮은 사회 환경까지 여러 가지로 몸도 맘도 지치고 피곤하여, 시간을 할애하여 답변을 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먼저 글을 올린 자의 책임으로 제 짧은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학생들이 노동자가 되는 것도 부끄럽지 않지만, 스스로 기업을 일으켜서 고용을 증대하는 것이 사회와 국가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도 가르치는 것이 어떨까요?” 라는 부탁에 대한 제 소견입니다.

아리랑님께서 부탁하지 않으셔도 그러한 교육은 지금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니 그러한 교육의 지나친 과잉이 오히려 사회 문제를 낳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의 주류 사회가 추구하는 교육의 방향이 무엇입니까?  ‘세계화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엔 1%의 천재가 99%를 먹여살린다.  그러니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그 1%를 길러내야 한다’라는 것이지요.  기득권자들은 그 동안의 교육 평등권에 기반한 평준화 정책이 그 1%를 길러내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끊임없이 수월성 교육, 효율성 교육, 수요자 중심의 교육 선택권을 넓히기 위한 교육 등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그 수월성 교육이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바로 학생들에게 그 1%에 들어가기 위해 박터지게 경쟁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1%가 바로 아리랑님이 말씀하신 스스로 기업을 일으켜서 고용을 증대하여 국가와 사회에 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구요.(1%라는 말은 소수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이니 수치에 연연해하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1%엔 기업가뿐 아니라 기술자까지 포함한다는 것도 전제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그 1%에 들어가는 1차적인 보증 수표는 서열화되어 있는 상위권 대학을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교육은 저와 같은 소수의 불순한(?) 교사들이 제아무리 1%에 들어가기 위해 박터지게 경쟁하는 것만이 선이 아니라 90%의 사람들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갖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연대를 실현하고, 그러한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이미 수월성 교육에 포위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제아무리 노동자 의식을 가르치고, 소수자의 권리를 가르치고, 사회적 연대를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이미 사회와 그 사회의 모순을 절감하고 있는 부모로부터 뼈속 깊숙이 내면화된 수월성 교육의 잠재된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리랑님께서는 혹 제가 노동자로서 부끄럽게 살아가지 않는 의식만을 편향적으로 가르쳐서, 스스로 기업을 일으켜 수많은 고용을 창출하여 국가와 사회에 도움을 줄 인재의 싹을 미리부터 짓밟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전혀 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말씀 드리자면 우리 사회의 교육 평준화 정책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입니다.  우리 사회에 자율학교, 특목고, 자립형 사립학교라는 이름으로 이미 평준화의 틀은 깨졌습니다.  전국에 30여개가 훨씬 넘는 외국어고, 과학고가 있습니다.  그 학생 수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상위권 대학의 입학 정원은 거의 다 차 있습니다.  게다가 지역적으로 교육력의 편차는 이미 개별 학교의 교사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상태에 와 있습니다.  서울로 치면 강남권과 목동과 같은 지역의 학교들과 그 외의 학교들의 학력 차이는 개별적인 인내와 성실성과 같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단계를 넘은지가 이미 오래입니다.  즉, 부모의 경제력이 이미 학력의 대물림 현상으로 고착화되어버렸다는 겁니다.  개인적 노력에 의한 계층 상승의 길은 이미 불가능의 수준까지 와 있다는 것을 혹 부정하신다면 논쟁은 새롭게 진행되어야겠지요.  

그럼에도 기득권 계층은 그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려고만 애씁니다.  무니만 또 바꾼 수월성 강화 시스템인 ‘공영형 혁신학교’가 추진되고 있고,  게다가 교육시장을 외국에 대해서까지 개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각종 외국인 학교에 내국인 입학 허가 요건을 완화하려고 할테고요....

작년 통계는 모르겠습니다만, 재작년 제가 근무하는 구 전체에서 서울대 입학생이 몇 명인줄 아십니까?  불과 11명이었습니다.  강남권에 있는 한 학교의 서울대 입학생 수보다도 못한 수치입니다.  이것을 갖고 이 지역 학생들의 노력 부족과 이 지역 학교 교사들의 무책임과 무능력을 탓하시겠습니까?   제가 있는 지역의 학교의 학생들이 명문대에 입학할 확률은 한 자리수에도 훨씬 못미칩니다.  제가 우리 학교 학생들의 90%는 노동자의 자녀이고 이후엔 노동자로 살아갈 사람이라고 하였더니, 누가 왜곡하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90%가 아니라 99.9%라구요.

저에게 배우는 고등학생의 과반수 이상이 기초 학력이 매우 부족한 학생들입니다.  쉽게 말하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소화할 능력이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갖추어지지 못한 학생들입니다.  아니 갖출 기회를 갖지 못했던 아이들입니다.  가정으로부터, 사회로부터, 학교로부터 방치된 채로 커 온 소위 서민, 노동자들의 자식들입니다.  수능 500점 만점에 200을 넘지 못하는 아이들이 과반수입니다.  올 해 고1과 고3 학생 수업을 함께 들어갑니다.  고3 학생 수업을 하는데 5월쯤 되니깐 아이들이 수업을 듣지 못합니다.  70-80%가 엎드려 잠만 자려고 합니다.  학습 포기자가 속출합니다. 아리랑님 말씀대로 “네가 훌륭한 사업가가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외국어도 잘하고 외국 문화에도 익숙해야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할 줄 도 알아야 하고, 각종 지식과 기술도 익혀야 하고.... 결국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대학도 가야하고....  그러니깐 수업시간에 졸지말고,  성적이 안나온다고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수업도 듣고 열심히 공부해라...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도 가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기업도 만들고, 고용도 창출하고  네 자아실현도 해야지~~”라고 제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아이들은 포기하고 엎어집니다.  환장할 노릇이지요....  

‘야 이녀석들아, 어째 너희들은 1학년보다 수업 태도가 나쁘냐?’라는 저의 질책에 한 녀석이 정곡을 찌르는 말을 제게 하더군요. ‘선생님,  1학년 애들은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정말, 눈앞이 캄캄한 말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무기력하게 엎어져서, 자빠져서 잠만 청하는 한심한(?) 우리 아리들이 한없이 불쌍하기만 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던져줄 수 없는 교사로서의 무기력함을 매일매일 절절히 느낍니다.  수업을 재미있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다양한 기자재를 사용한 참신한 수업으로, 아이들을 수업으로 자연스럽게 흡입하지 못하는 교사로서 저 개인의 무능력함만을 갖고는 설명할 수 없는 한없는 답답함을 느낄 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지는 내용은 철저히 노동자의 관점에서 서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먼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를 한번 보십시요.  교과서 자체가 자본주의 질서의 원리와 그 효율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면 주류 경제학이라고 하는 ‘사무엘슨’의 경제학 교과서의 축소판입니다.  뭐 그래도 요즘은 예전에 비해 근로자의 권리도 가르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많이 개선된 측면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노동자’라는 사회과학적 용어가 ‘근로자’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로 대체되어 있으며, 그 중심 내용은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효율성을 내면화시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연히 기업가의 역할과 고용창출의 효과 등에 대해서도 충분히 교육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 교과서에서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닙니다.  문학, 역사 또는 기타 예술 과목이나 다른 모든 교과에서 무의식적으로 학교는 노동자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교육을 전혀 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종강씨가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의 시조를 예로 들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더군요.  ‘동창이 밝았는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등의 시조를 가르치면서 왜 우리는 사대부의 관점에서만 그 시조를 전원의 목가적 풍경을 노래한 시라고 말해야 정답인 교육을 하고 있는가?  왜 머슴의 관점에서 그 시조를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교육은 시키지 않느냐라고 말입니다.  

다만, 저는 다음의 내용에 대한 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음의 글을 쓴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의 90% 이상은 노동자의 자식이고, 또 이후에 노동자로 살아갈 아이들이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 찾기에 주저하지 않는 태도를 갖도록 가르쳐야 한다.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이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당당한 역사의 주체로 서는 길임을 가르쳐야 한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정당하게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노동자가 차별받는 사회 구조를 당연시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임을 가르쳐야 한다.”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위와 같이 글을 썼지만 위와 같이 교육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학생들에게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태도와 삶의 자세를 가르치고 싶은데, 요즘과 같은 교육과 사회 환경 속에선 아이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에겐 당장의 입시가 더 소중하고 절박합니다. (실제로 입시를 포기했거나, 공부를 포기한 사람도 입시의 중압감과 입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아리랑님 혹 전교조 교사가 편향된 교육으로 지나치게 노동자적 관점만 교육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은 조금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첫 번째 얘기가 너무 길어졌지만 두 번째 ‘문제제기’에도 간단하게라도 제 생각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그리고 '기업가(사용자)나 권력 기관이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면 그것은 사회를 한없이 부패하고 타락시키지만, 노동자들의 이기적인 목적의 활동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확인' 이라고 한 주장 또한 왜곡된 주장이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라는 님의 말씀에 대한 소견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 주장이 어디가 왜곡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주장의 어느 부분이 왜곡된 주장이라는 것인지 아리랑님께서 밝혀주셔야 할 부분입니다.

과연 기업가나 권력기관이 ‘공익적 목적’이 아닌 ‘이기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집단행동을 해서 사회를 발전시킨 사례를 말씀해 주십시요.  제 짧은 머리로는 아무리 역사를 뒤져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노동자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활동이 사회를 부패하고 타락시킨 역사적 사례를 말씀해 주십시요.  이 역시 제 짧은 공부로는 아직까지 찾지를 못했습니다.

아마 아리랑님은 저의 주장을 ‘노동자들의 행동은 절대선이고 사용자들의 행동은 절대악이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오해를 하신 것은 아닌가 하고 추측해 봅니다.

저의 주장은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 헌법에 노동자들의 권리(단결권, 교섭권, 단체행동권)를 보장하고 있는 그 헌법 정신을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헌법뿐 아니라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의 헌법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특별히 보장하고 있는 그 헌법 정신을 이해하자라는 것입니다. 그 어느 나라도 사용자나 권력기관의 집단행동을 권리로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권리라는 것은 단순한 기대나 요청이 아닌 법이 강제하는 힘입니다.  왜 그럴까요.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주장하면서 파업을 한 것은 결코 ‘공익적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이나 ‘노동 조건의 개선’등을 요구하면서 집단행동을 했던 것은 결코 ‘공익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기적 목적’을 위해 집단행동을 했던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 ‘이기적 목적’을 위한 집단행동이 소수의 권익에서 다수의 권익으로의 확산을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시민 사회를 앞당겼고, 사회를 진보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면 무조건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하며, 사회 불안을 선동하고 시민의 불편과 국익을 앞세워 노동자들의 파업을 매도하는 우리의 언론의 습성과 우리의 사고 습관을 반성하자는 의미의 말을 했던 것입니다.

스스로 노동자의 아들딸이고, 앞으로 99.9%로는 노동자로 살아갈 우리의 아이들이 홍세화씨의 표현처럼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로 세상을 해석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 최소한의 균형있는 교육을 하자는 의미입니다.

혹 제 말의 의미를 개별 노동자의 모든 행위가 절대선이고, 개별 사용자의 모든 행위를 절대악으로 말한 것으로 오해했다면 오해를 푸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개별적으로 보면 못 배우고 교양없는(?) 개별적인 노동자보다 사용자분들이 훨씬 교양도 넘치고 예의도 바르고 인품도 넉넉한 분들이 많을 수 있을 겁니다.(제 편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대립관계에서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로 대립을 할 때에는 그것과는 다른 관점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시간에 쫒기며 바쁘게 쓰다보니 다소 감정적으로 나간 부분도 있고 두서가 없는 말을 한 부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혹 제 생각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다만 모르는 것을 그냥 ‘~아시는지요?’라고만 말씀하지 마시고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제 생각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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