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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적 불만이 많았다. 그 불만들 중 하나는 "도무지 어른들이란 사과하지 않는다"였다. 사과하지 않는 어른들은 어린 내게 늘 "니가 잘못했지?", 혹은 "이제 뉘우쳤어?"라고 추궁해댔다. 겁많은 나는 예나 지금이나 속으로만 육박전이다. "(그러는 네 잘못은 없고?)" 내 삶의 꼬라지가 이 모양인 것은 그 까닭이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내가 제일 처음 마음 먹었던 것 하나는 "사과하는 어른이 되자"였다. 제법 멋들어진 다짐이었지만 이 생각을 실천하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학원에서 아이들은 학교와는 달리 솔직하고 대담하다. 아마 학교에서 (선생님들도 물론 다 다르시겠지만) 아이들이 느끼는 고압적 거리감이 남루한 학원의 교실에서는 다소 누그러지는 탓일 거다. 게다가 가뜩이나 허술해 보이는 내게 아이들은 지나칠 만큼 편하게 행동하곤 했다. 처음 먹었던 마음이야 펑! 날아가버리고 이내 난 고함을 지르거나 신경질을 부리곤 했다. '사과'라니, 언감생심 내 분수를 모르는 소리였다.

논술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 하나는 '설득력'이다. 아무래도 논술문이 '설득하는 글'이다보니 당연한 일이다. 설득에서 중요한 것은 물론 '근거'다. 근거가 없는 설득이란 아무래도 우격다짐에 불과하니까. 그래서 내가 수업에서 써먹는 레파토리 하나는 설득의 진정한 근거로서 '너와 나의 교집합'이다.

"가령 내가 오늘 학원에 출근을 하다가 마주 오던 자전거와 부딪혔다고 하면, 아마 너희들은 "아팠겠다"라고 자동적으로 생각할 거야. 왜냐하면 달리는 자전거에 부딪혀 아프단 사실은 너와 나,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교집합'이기 때문이지. 아마 '터미네이터'라면 짐작은 해도 그 아픔까지 공감하지는 못할 거야. 적어도 터미네이터에게 자전거는 '아픈 게' 아니니까."

"내가 수업에서 '생리통'을 말하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지. 나는 지금까지 단 1초도 여성으로 살아본 적이 없고, 당연히 생리통을 경험해본 적도 없으니깐. 적어도 남성인 내게 '생리통'은 여성인 너희와 공유 불가능한 영역이잖아. 내가 여러분에게 '생리통이 설사병처럼 배 아픈거냐'고 물으면 여러분이 얼마나 황당하겠니?"

설득력이란, 결국 '공감을 끌어내는 힘'이다. 그럼 공감이란 과연 어떻게 추출되는가? 간단하다. "나도 이러이러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만 그런게 아니라 나도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 '고백'이라고 믿는다.

내가 사회주의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자본주의자인 것만은 확실하다는 고백, 내 뼈 속까지 침투해 있는 이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 말로는 번지르르하지만 사실은 근본적으로 남성중심주의자이며 은근한 마초이며 성공과 발전과 개발과 성장 중심주의에 찌들어 있고 얼마나 가증스러운 권위주의자인지를, 그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고백하는 교실은 이미 그 자체로 좋은 수업의 장이다.

아이들은 사과하는 선생의 모습 앞에서 대개는 놀라거나 어색해 한다. 그러나 사과하는 모범을 보여주지 않는 선생은 결코 아이에게 사과하는 일이 무엇인지 가르칠 수 없다. 이건 사과할 줄 모르는 아이에게 우월감을 가져서 사과할 수 있는 나를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얼핏 어눌해 보여도 선생의 진정성을 직관적으로 가려내는 무서운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先生)이란 말 그대로 '먼저 산' 사람이다. 삶이란 것이 그게 다 그거라면, 먼저 산 사람은 나중에 산 사람에게 먼저 겪은 아픔과 실수를 정직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게 바로 선생의 임무이자 역할이다. 아이들이 위로를 받는 것은 결코 달콤한 말장난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도 그래"라는 동질감의 확인으로부터다. 선생이고 나발이고 결국에는 다 같은 인간이라는 느낌, 비록 십수살 나이 차이가 난대로 그게 대수냐며 사람은 다 똑같다는 생각, 그런 인간들끼리, 그 못난 이들끼리 그렇게 서로 만져주고 감싸주고 안아주는 모습 속에서 바로 공감과 근거와 설득과 가르침이 태어난다.

그래서 교육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을 생산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결국에 그런 사람은 내게 나밖에는 없다. 나와 나의 관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는 삶의 핵심이다. 어디선가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타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누군가와 긴 시간 얘기하다보면 그가 바로 '자기와의 관계'에서 어그러진 사람인 경우를 종종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모든 배움의 열매는 '나를 아는 일'로 맺어진다. 나는 내게 얼마나 자주 철저히 속는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얼마나 강고하게 부인하는가? 베드로 역시 새벽닭이 울기 전까지 자신에 대한 확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지난 날 베드로에게서 감동 받은 이유는 그의 신앙이 아니라 실수였다. 그러나 베드로가 닭 울음소리 아래서 제 가슴을 쳤듯이 결국 나는 얼마나 자주 적나라한 내 모습을 발견하고 마는가.

물론 설득의 근거가 '너와 나의 교집합'이라는 말은 동시에 교집합이 없는 관계 속에서는 설득이 불가능함을 방증한다. 생각해보라. 남성이 근본적으로 여성의 불편함과 억울함을 알겠는가?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울분을 알겠는가? 미국인이 이라크인의 눈물을 알겠는가? 모든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는 데에서 모두 동지(同志)지만 단지 그 부분에서만 동지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런 얘기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교육현실을 떠올리는 일은 비참하고 처량한 것이다. 이 땅의 교육이란 과연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을 만들어내는가. 혹시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몸은 노동자인데 머리는 자본가인, 몸은 식민지의 후손인데 머리는 제국주의자인, 몸은 개인인데 머리는 집단주의에 찌들은, 서열과 잘남과 뽀대남과 근사함에 미혹된 아이들은 저들끼리 서열을 짓고 개중에 뒤처진 아이를 왕따시킨다. 대관절 누가 이 아이들에게 꾸중을 할 수 있는가.

'비밀의 화원(the secret garden)'이라는 자기 노래에서 이상은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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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들은 걱정 없이
아름다운 태양 속으로 음표가 되어 나네
향기나는 연필로 쓴 일기처럼 숨겨두었던 마음
기댈 수 있는 어깨가 있어 비가 와도 젖지 않아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

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질거야 그대가 지켜보니
힘을 내야지 행복해져야지 뒷뜰에 핀 꽃들처럼
점심을 함께 먹어야지 새로 연 그 가게에서
샴푸를 사러 가야지 아침 하늘빛의 민트향이면 어떨까

난 다시 꿈을 꾸게 되었어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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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나는 이 말에 겨우 기대어 나아간다. 이상은 역시 고백하고 있다. 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보라고.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진단다. 내가 지켜보니 나아질 수 있단다. 힘을 내야지, 행복해져야지, 하고 다짐한다. 뒷뜰에 핀 꽃들처럼!

죽는 날까지 나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내 안의 욕망을 마주 보고 내가 놓여져 살아가게 되는 주변과 내가 빠져 있는 우물을 조망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보다 아주 작은 것이다. 그저 나는 나와 화해하고 나를 만져주면서 살아가고플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일은 결코 작지 않다. 우선 '나'와 만나는 이 모든 여로에 '너'와 '우리'를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라도 만나보고 죽어야 덜 억울할 것 같다. 평생을 함께 한 내 유일한 친구인 '나'도 만나보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만큼 허망한 삶이 또 있을까. 진보가 단순화인 것처럼, 행복은 단순하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배우고 만나고 깨달아야 할 것들이 내 앞날에 그득히 쌓여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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