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다라 머나먼 길 찾아왔더니……’로 시작되는 터키 민요는 경쾌한 리듬과 사랑 이야기 때문에 애창되는 노래입니다. 나는 이 노래가 이슬람 땅의 노래라는 사실이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차도르로 얼굴을 가려야 하는 금욕과 절제의 이슬람 땅에서 여인들의 사랑노래가 불려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도 위스키다라 선창에서 배를 내리면 맨 먼저 모스크의 근엄한 돔을 마주하게 되고, 돔의 첨탑에서 울려오는 코란의 낭송이 마치 어른들의 꾸짖음처럼 분주한 선창을 위압합니다. 그러나 위스키다라가 실크로드의 종착지인 이스탄불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러한 의문이 풀립니다. 위스키다라의 노래는 실크로드에 피어난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동서 무역의 중심축이었던 터기에서는 실크로도의 자취를 곳곳에서 만납니다. 우선 1,000만 명이 넘는 이스탄불의 인구가 그렇고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와 이집트 시장(Egyptian Bazaar)에 운집한 사람들과 상품의 더미가 그렇습니다. 마호메트 2세가 실크로드를 장악하기 쌓은 루멜리 성이 지금도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는 선박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로마가 수도를 이곳으로 옮겨온 이유도 이곳이 동서 문물의 집산지였기 때문이었으면, 십자군 원정 역시 콘스탄티노플에 축적된 부를 겨냥한 것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곳에 남아 있는 거대한 성당과 모스크, 토프카피 궁전의 엄청난 보물, 그리고 금 14톤과 은 40톤으로 장식한 돌마바체 궁전의 사치 등은 하나하나가 세계 무역의 중심지가 향유했던 부의 크기를 짐작케 합니다.
실크로드는 당신도 잘 알고 있듯 당시의 세계 무역로였습니다. 동방에서 오는 모든 문물이 이곳을 거쳐 유럽으로 퍼져갔으며 유럽의 산물들 역시 이곳을 경유하여 동방으로 실려갔습니다. 터키는 세계 문명의 동맥과도 같은 이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지배하고, 관리한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중세와 근세를 통하여 가장 많은 부를 축적했던 이스탄불이 지금은 세계 무역의 중심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비단과 차와 향료도 이제 더 이상 세계 상품이 아닙니다. 경제 발전, 세속화, 근대화라는 국정 지표가 케말 파샤 이후 끊임없이 추진되어왔지만 터키의 국제적 위상에서 과거의 영광을 읽을 길은 없습니다. 불안한 정치, 만성적 국제수지 적자와 인플레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결코 초조해하며 달려가는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넓은 국토와 풍부한 광물 자원, 그리고 무엇보다 식량자급이라는 든든한 기초가 그러한 여유를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근대화와 경제 성장이 유일한 국정 지표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터키는 우리 나라와는 달리 또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사만(Saman) TV의 칼라치(Adem Kalaci) 부장도 터키가 당면한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터키의 내셔널리티는 관용과 대화임을 전제하고 인간 소외와 환경 파괴 등 급속한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이 보여준 어두운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인간중심의 경제 건설’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목표를 일찌감치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일찍이 동과 서를 연결했던 실크로드가 이제는 새로운 동(정신적 가치)과 서(경제적 가치)를 연결하는 ‘21세기의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근대화라는 사회 조직에 관한 서구적 담론과 공동체라는 인간 관계에 관한 동양적 담론이 적절히 융화된 새로운 실크로드의 건설이 국가적 목표이며, 그것이 곧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믿음을 그들은 갖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바로 이러한 통합적 사고가 이슬람 모스크의 문화라고 하였습니다. 모스크는 기도소라는 단일한 기능을 갖는 종교적 공간이 아니라 병원, 도서관, 대학, 목욕탕, 시장 등이 통합된 이를테면 문화 콤플렉스였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나라의 어떠한 전통에도 문화는 그러한 통합적 실체로 존재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삶이란 원래 통합체이며 문화란 그러한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자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특정 문화에 대한 심취나 성급한 융화보다는 문화 일반의 본질에 대한 보다 겸허한 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크로드는 21세기에 복원되어야 할 ‘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기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과거의 실크로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신속한 도로가 지구를 하나의 촌락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더구나 정보 고속도로는 우리의 생활과 사고의 틀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바로 이 점과 관련하여 실크로드는 당신 말처럼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실크로드에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교훈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실크로드는 일방로가 아니라 양방로(兩方路)였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일방로는 지배와 종속의 길이기 십상입니다. 또한 모방의 길이며 단색(單色)의 길일 뿐입니다. 지배와 종속, 모방과 단색의 길이 창조의 길이 될 수 없음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또 하나의 교훈은 실크로드는 문물의 교류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의 국제적 불평등이 주로 경제 교류에 의해 구조화되었다는 당신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경제 교루는 손익을 두고 벌이는 공방(空防)의 관계이며, 부등가 교환이 그것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실크로드를 왕래한 물(物)에는 항상 더 많은 문(文)이 담겨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와 반대로 오늘날의 상품에서 문을 찾아내기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특히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금융 자본에는 단 한 줌의 문(文)도 담겨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실크로드가 글자 그대로 비단처럼 아름다운 길이 되기 위해서는 물자의 교류보다 문화의 교류가 앞서야 할 것입니다. 손익을 가운데다 둔 침략과 방어의 관계가 아님은 물론, 서로가 상대방을 배우려는 ‘문화적 대화’에 충실할 때 비로소 진정한 세계화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삶이 존중되어야 하듯, 다양한 문화가 응분의 대접을 받을 때 그 길이 아름다운 비단길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이 상품의 형태를 띠지 않은 문화여야 함은 물론이며, 문화 교류가 경제 교류의 첨병이 아니어야 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