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 가는 길앞에 웃음만이 있을 쏘냐
결심하고 가는 길 가로 막는 폭풍이 그 어이 없으랴
푸른 희망을 가슴에 움켜안고 떠나온 정든 고향아
내 다시 돌아갈 때 열구비 도는 길마다 꽃잎을 날려 보리라
비오는 날이나 명절이 가까워 오면 철창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자주 이 노래를 부르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는 노래였습니다. 나는 오늘 그가 다녔던 전남의 화순에 있는 작은 국민학교를 찾아 왔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폐교된 지 벌써 3년.
잡초에 묻혀 있는 교정에는 세종대왕만이 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텅 빈 교실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칠판에 남아 있는 낙서만이 떠나간 어린이들의 아픈 마음을 전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잘 있거라 정든 학교야
꿈을 키웠던 그리운 나의 모교
난 널 잊지 못할거야
선생님 운동장 친구들……
잘 있거라 난 너희를 사랑해
이 학교가 바로 그가 다녔던 학교라는 확신은 없지만 오늘 교정의 이곳 저곳에서 그의 얼굴을 만나게 됩니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후 그가 겪었을 숱한 곡절을 나는 다 알지 못합니다만 끝내는 징역살이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농촌이후'(農村以後)가 떠오릅니다.
농(農)돌이에서 공(工)돌이로 그리고 범(犯)돌이로 그리고 다시 징역을 사는 징(懲)돌이로 전락해간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쓸쓸한 교정을 무대로 하여 펼쳐집니다.
가로 막는 폭풍앞에서 무참히 쓰러진 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최근 5년 동안에 폐교된 학교가 무려 1,200개교가 넘고 올해도 다시 300~400개교가 문을 닫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농촌의 국민학교는 마을의 꽃이고 미래였습니다.
꽃이 없어지고 미래가 사라진 이 황량한 교정에서 어느 한 사람의 추억에 잠기는 것은 감상(感傷)입니다. 당신의 말처럼 시선을 들어 농촌을 보아야 합니다. 2억평의 농경지가 묵고 있는 농촌, 그리고 해마다 수십만명씩 떠나간 농촌의 실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땅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을 찾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세계화의 시대. 정보화의 시대, 하이테크의 시대라는 용어를 거부하는 당신의 고집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세계화'의 도도한 물결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WTO(세계무역기구)는 운양호의 함포보다도 더 강력한 무기가 장착된 도전임에 틀림없습니다. 안방의 밥상위에까지 발을 올려놓는 거대한 공룡의 내습입니다.
100년 전의 개항기(開港期)와 흡사하다고 하지만 지금의 경제구조는 당시에 비해 훨씬 허약한 체질로 바뀌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국내의 모순을 세계화를 통하여 해소하려고 하는 중심부의 그들과는 반대로 세계경제의 중하층에 편입되어 있는 우리의 경제적 위상은 그러한 모순을 내부의 희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물이 낮은 데로 흘러가듯이 당연히 가장 약한 곳으로 그 중압이 전가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간의 이농(離農)과 탈농(脫農)은 오로지 이러한 중압을 벗어나려는 기약없는 몸부림일 뿐 푸른 희망을 가슴에 안고 떠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제 농업은 단 하나의 잣대인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하여 그 운명이 재단될 것이라는 당신의 전망은 차라리 절망입니다. 농촌은 떠나야 할 땅이고 농업은 버려야 할 산업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어린이가 없는 농촌, 농촌이 없는 도시, 농업이 없는 나라, 농민이 없는 민족으로 21세기를 살아가야 될 지도 모릅니다.
잡초에 묻힌 교정을 나도 또한 떠나오면서 나는 도시로 떠나간 이 학교의 아이들이 지금쯤 어느 골목에서 얼마나 큰 짐을 지고 걸어가고 있는지 마음이 어둡습니다.
다만 철창에 머리 기대고 「사나이 가는 길」을 노래부르고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어디엔들 바람불지 않으랴
어느 땐들 눈물 흘리지 않으랴
당신의 노래소리는 차가운 겨울바람이었습니다. 자연과의 싸움에서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지혜와 끈기를 보여온 농민이 이제 보이지 않는 손의 도전앞에서는 마치 상대를 보지 못하고 싸우는 병사처럼 막연하기 그지 없습니다.
잡초에 묻힌 학교는 우리 농촌의 자화상이며 농촌은 우리시대의 실상인지도 모릅니다.
세종대왕이 돌아가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안방에 나타난 공룡은 무서운 것이 아니다. 공룡은 모름지기 쥬라기 시대의 밀림에서 살아 갈 수 있을 뿐이다.’
세종대왕은 떠나간 어린이들이 돌아오리란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꽃잎을 날리며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땅을 버리고 살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오늘도 서울역 광장에서 그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고향으로 내려가는 친구를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마저 떠나고 난 스산한 대합실을 서성이다가 역광장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로 들어가서 전화를 걸고 있었습니다. 서울에 흩어져 살고 있는 비슷 비슷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습니다. 여기 저기 산산히 흩어진 고향을 찾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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