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 1990-0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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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 한겨레신문 |
[한겨레논단]
산천의 봄 세상의 봄
새봄을 증거 하는 산천의 표정은 여러 가지이다.
따스한 볕, 아름다운 꽃, 훈광 속의 제비가 우선 가장 쉬운 증거이다. 볕이나 꽃, 제비보다는 어렵지만 얼음이 녹아서 그득히 고인 못물, 이른바 해빙의 출수로 봄을 증거 했던 옛 시인도 있다.
봄볕은 흔히 늦겨울의 심술 때문에 한결같지 못하고 꽃은 한겨울에서 늦가을까지 사시장철로 피어 이미 봄을 넘어서고 있고 제비는 고작 차려놓은 밥상에 끼여드는 손님인 데 비해 그득한 못물이야말로 흙살 속속들이 막혀있던 얼음들이 빠져나와 집결된 겨울의 결정적인 철수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볕이나 꽃에서보다 못에 고인 물에서 봄을 깨닫는 시인의 마음에는 분명 성급한 상춘과는 구별되는 봄에 대한 차분하고 냉철한 이해가 있다.
생수라는 말이 있지만 물은 아무래도 생명이 아니다. 생명의 조건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것이 생명이면서 볕처럼 무상하지 않고 꽃처럼 철없지 않고 제비처럼 뒤늦지 않은 봄의 증거를 해마다 풀에서 확인한다. 그것도 눈에 뜨이지 않는 것에서 혼자서 돋아나는 이름 없는 잡초에서 가장 확실한 봄을 만난다. 잡초는 이름 없는 풀이다. 이름은 사람들이 붙이는 것이고 이름이 붙었다는 것은 사람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눈에 뜨이지 않는 곳의 이름 없는 풀은 자신의 논리, 자신의 존재 그리고 자신의 승리 그 자체이다.
더구나 볕이 하늘의 일이고 꽃이 나무 위의 성과이고 제비가 강남의 손님인 데 반하여 풀은 시종 흙의 역사 속에서 생명을 키워 온 수화금목토의 총화이면서 모든 봄의 육신이다.
서로서로 기대어 어깨를 짜며 금세 무성한 말을 이루어 철없는 풍설의 해코지에도 결코 물러서는 법 없이, 어느덧 볕을 머물게 하고 꽃을 피우고 제비를 돌아오게 하는 들풀이야말로 가장 믿음직한 새봄의 전위이다. 그리고 이듬해 봄의 거름이다. 별, 꽃, 제비에서 느끼는 봄이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의 봄이며 해빙의 춘수에서 느끼는 봄이 관찰하는 사람들의 봄이라면 풀에서 깨닫는 봄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봄이다. 모든 사람들의 사랑이다.
세상의 새봄을 증거 하는 표정도 여러 가지이다.
졸업장을 들고 교문을 나설 때, 먼데서 벗이 찾아올 때, 또는 연장 위로 투명한 대팻밥이 일어서면서 널빤지에 매끈한 윤기가 흐를 때, 그럴 때 가슴 차 오르는 기쁨은 이를테면 삶의 표시이며 세상의 봄이다. 산천의 키 작은 풀이다.
자라고, 만나고, 만들어내는 일이 사람과 더불어 신뢰될 때 풀이 흙과 더불어 봄을 키우듯이 작은 기쁨은 모이고 모여 세상을 확실하게 받쳐주는 초석이 된다.
이러한 기쁨은 작은 것이기 때문에 업신여겨지고 또 작은 것이기 때문에 널리 간직되기도 하며, 돈이 되기 때문에 빼앗기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로써 견디고 이로써 이겨왔음을 역사는 증거해 주고 있다.
정치란 사람을 자라게 하고 사람을 만나게 하는 그리고 만들어내는 일을 서로 신뢰하게 하는 일이다. 사람을 그 가슴에서 만나게 하고 사회를 그 뼈대에서 지탱하고 있는 이러한 역량들을 일으켜 세워 사회화하는 일이다. 판을 열고 틀을 짜는 일이다. 잘못된 판, 잘못된 틀을 새롭게 바꾸는 일이다.
잡초를 끊어 낸 비닐하우스 속의 꽃이 철 없음을 우리는 알며 새장 속의 새가 봄을 증거하지 못함을 안다. 저 혼자서는 그 큰 머리를 지탱하지 못하여 목발을 짚고 서 있는 큰 꽃송이는 우리를 마음 아프게 한다. 줄기의 것도 뿌리의 것도 아닌 꽃, 그것은 남의 것, 외부의 것 그리고 이미 꽃이 아니다. 서울은 농촌을 향하지 않고 공업은 농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노자·임차·여야·남녀·빈부는 서로 존경하지 않는다. 남북·동서·전후·좌우는 저마다 중심이다.
이러한 사회, 이러한 세상의 봄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산천의 봄은 분명 흙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흙살 속속들이 박힌 얼음이 빠지고 제 힘으로 일어서는 들풀들의 합창 속에서 온다. 세상의 봄도 산천의 봄과 다를 리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박힌 경멸과 불신이 사라지고 억압된 자리마다 갇힌 역량이 해방될 때 세상의 봄은 비로소 그리고 어김없이 온다. 산천의 봄과 마찬가지로 무성한 들풀의 아우성 속에서 온다. 그 우람한 역량의 해방 속에서 온다. 모든 것을 넉넉히 포용하면서 온다.
한겨레신문 1990. 3. 8. |
분류 | 제목 | 게재일 | 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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