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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1991-05-01
미디어 계간지 사회평론
 

사람의 얼굴

s354.gif



(계간지 사회평론 창간 기념)

<가고파>란 노래를 들을 때
나는 내가 어린 시절에 자랐던 유천강을 생각한다.
<옛동산에 올라>란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의 머리속에 변함없이 떠오르는 동산은 언제나 고향의 작은 뒷산이다.

유천강이나 고향의 작은 뒷산은
이 노랫말을 지은 시인이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곳이다.
이 노래를 부르거나 듣는 사람들 가운데
내가 떠올리는 강이나 산을 연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어린 시절 이 강과 산을 함께 나누며 자라온 나의 친구나 형제들 가운데에도
나와 같은 연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비단 노래뿐만이 아니다.
무심히 글을 읽다가 문장 속에서 잠시 만나는 한 개의 단어에서도
우리들에게는 그것과 함께 연상되는 장면이 있게 마련이다.
글 뜻에 마음이 빼앗겨 미처 돌이켜 볼 여유가 없어서 그렇지
이러한 연상세계는 마치 영상의 배경처럼
우리가 구사하는 모든 개념의 바탕에 펼쳐져 있다.
이를테면 <민족>이란 단어를 읽을 때 연상되는 장면을 물어 보면
사람마다 각각 다른 장면을 이야기해 준다.
어떤 사람은 태극기를,
어떤 사람은 3.1절 기념식장을,
어떤 사람은 88올림픽을, 장승을, 시골장터를, 6·25전쟁을 연상하고 있다.
민족이란 단어뿐만이 아니라 더욱 구체적인 단어의 경우도
사람마다 그 연상의 세계가 가지각색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소나무, 돼지, 자동차, 쌀, 옷…….

나는 오랜 독거생활의 무료를 달랠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기는 하나
한동안 내가 사용하거나 만나는 모든 단어의 연상세계를 조사해 나간 시절이 있었다.
내 생각의 배후를 파헤치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점검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매우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실업>이란 단어를 읽을 때
나의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읽은 이러저러한 개념이었다.
케인즈적 실업, 말사스적 실업, 상대적 과잉인구, 실업율 . . .
매마른 경제학 개념과 이론들이 연상되는 것이었다.
<전쟁> <자본> <상품>과 같이 고도의 사회성을 띠고 있는 개념도
그 사회관계의 본질인 사회적 관계가 사상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구체성을 담고 있는 개념마저도
그 연상세계가 감각적이고 형식적인 것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이라는 단어에서는
이제 페트리어트 미사일과 스커드 미사일이 펼치는
전자 오락게임과 같은 텔레비젼 화면이 연상되기 십상이며
<자본>에서는 은행의 금고가,
<상품>에서는 백화점 쇼우 윈도우가 연상되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정서적 공감의 원초가 되는 <사람>이 연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처럼 나의 머리 속에 사람의 얼굴이 담겨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의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은 심한 무력감과 외로움같은 것이었다.
한겨울의 독방보다도 더 무력하고 통절한 외로움이었다.
더불어 함께 일할 동료도 없이,
손때 묻은 연장 하나 없이,
고작 몇권의 책과 연필을 들고 척박한 간척지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사회과학도에게 요구되는 냉철한 이성( cool head )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거대한 허구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냉철한 이성이 따뜻한 가슴( warm heart )을 바탕으로 하여 얻어지는 것이라면
나의 관념세계는 실로 비정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내가 읽고 생각한 것 심지어 내가 온 몸으로 겪은 것에서마저도
껍데기만 얻고 있었을 뿐이었고 껍데기로 누각을 짓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나의 매마르고 비정한 연상세계에
사람의 얼굴을 하나하나 심어나가기로 작정하였다.
관념적인 연상세계를 풍부한 구체성으로 채우고 싶었다.

나는 우선 <실업>이란 말을 듣거나 읽을 때
의식적으로 내가 잘 아는 친구를 떠 올리기로 하였다.
그는 쌀 1kg에 800원을 하던 때에
5백원어치의 쌀을 달라고 하기가 부끄러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이었다.

연탄을 살 돈이 없어 아예 냉방으로 지내던 겨울에
그를 괴롭히던 것은 추위가 아니라
혹시 다른 가게에서 연탄을 사고 있지나 않나 하고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가게집 아주머니의 시선이 고통스럽던 친구였다.

하루종일 번 돈이 식구들의 끼니를 에울 만큼이 되지 못하면
차마 자기만 바라고 있는 동생들을 볼 면목이 없어
집으로 들어 가지 못하고 싸구려 합숙에서 새우잠을 자고
새벽 어둠 속 대학병원에서 피를 팔던 친구였다.

회복실에 누워 매마른 카스테라를 먹으며
팔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손가락에 찍어
벽에다 낙서를 하던 친구.
그 친구를 생각하기로 작정하였다.
그가 썼던 벽위의 낙서를 생각하기로 하였다.

관념성을 벗는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이 연상의 세계가 관념적이지 않아야 할 것 같았다
. <건축>이라는 단어에서‘빌딩’이 연상되는 것보다는
‘포 크레인’이나‘망치’가 연상되는 것이 덜 관념적이고
포 크레인이나 망치보다는
자기가 잘 아는‘목수’가 연상되는 경우가
보다 덜 관념적이라고 생각된다.

더구나 <정직>이라든가 <양심>과 같이 추상적인 단어일수록
그것과 더불어 사람이 연상되지 않는 한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일에 있어서는 무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그것이 인간적인 것으로 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연상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에 따라서
그 사고의 성격 즉 사회적 입장이 정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시대 그 사회의 가장 민중적인 사람들이 사고의 밑바탕을 자리잡고 있어야만
그의 사상도 시대적 과제와 사회적 모순을 온당하게 반영하고
그것과 튼튼히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자유>나 <평등>과 같은 고매한 개념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사실적으로 표현 해내는 그림으로
그 내용이 채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관념의 유희와
비인간적인 물신성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고향에서 숙모님이 보내주신 대추 한 되를 앞에 놓고
숙모님의 모습과 고향의 산천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지만
수퍼에서 구입한 사과 한개를 손에 들고
과수원을 연상하기는 어렵고
더구나 거리마다 넘치는 무수한 자동차를 바라보며
자동차 공장의 기름땀에 젖은 노동자들의 수고를 생각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사람의 얼굴이 담겨 있지 않은 우리의 머리와
사람과의 관계가 사라져 버린 우리들의 삶 속에
사람 대신 무엇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 앉아 있는지. . .
참으로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산 등반길에서 어느 중년의 남자 두 사람이 이야기하며 지나갔다.
“저게 다람쥐는 아니고 이름이 무어라더라? 꼬리가 꽤 비싸다던데?”
우리들의 생각은 얼마나 삐뚜로 놓여 있으며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삭막하고 산산히 조각나 있는가.

일체의 물질적 성과와
일체의 정신적 문화환경의 밑바탕에서
그것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발견해 내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위에서 영위되고 있는
나의 삶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깨달음을 가까이 두기 위하여
나의 연상세계에 사람들을 심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거실의 냉기속에 곧추 앉아서
사고의 배후를 파헤치고,
나의 뇌리속에 틀고 앉은 잡다한 관념의 검불을 쓸어내고,
그 자리에 나의 친구들을 심으려던 나의 시도는
결국 이렇다할 진척을 보지 못한 채 참담한 구멍만 뚫어 놓고 말았다.

그 참담한 실패의 전모를 글로서 적기에는 그 과정이 너무나 복잡하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필요한 일이기는 하였으나
성급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우선 그 많은 개념들의 밑바닥에 들어 앉힐 친구들이 부족했다.
그리고 설령 내게 수많은 친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친구들의 얼굴이 나에게 정서적 친근감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에 들어 앉힐 수도 없었다.
친근한 개인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그 개념이 왜소화하거나
심지어는 다른 내용으로 변질되어버림으로써
거꾸로 주관성이 강화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실업>이라는 개념의 밑바닥에 들어 앉힌 친구만 하더라도
그가 1980년대의 실업의 본질적 성격을 제시해 주지는 못했다.

사람이 담지하고 있는 그 풍부한 정서와 사회성에 주목했던 나의 노력이
사람을 통하여 당대 감수성의 절정에 이르기는 커녕
한낱 개별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전락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가장 절망적인 것은
도대체 독거실에 앉아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세번 네번 심어도 뿌리내리지 않는 풀이었다.
한마디로 머리속에 심을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어깨동무로 만나야 하는 것이었다.

연상세계를 바꾸려던 나의 노력은
결국 나에게 작은 위안만을 한동안 가져다 주었을뿐
더욱 침통한 고민을 안겨주었다.

개별인간의 정서와 현실이 우선은 핍진한 공감을 안겨 줄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 시대의 견고한 구조적 실상에 대하여는
극히 무력할 뿐이었다.

<사람>이란 누구나 누구의 친구이고 누구의 가족일 터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사고 속에 계속 친구나 가족으로서만 남아 있는 한
우리의 사고가 감상적 차원을 넘어
드넓은 지평으로 나아가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곳이 연상의 세계이든,
그 곳이 현실의 팽팽한 긴장속이든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으로부터
그 사람을 규정하고 있는 사회구조적 얼개를 향하여
다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차피 한사람의 절친한 개인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하더라도
그 개인을 매개로하여 사회적 개인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당면한 모순을 변혁해낼 주인공의 얼굴을 만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 역량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는 더욱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친구들을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독거실에서
추운 겨울밤을 뜨겁게 달구며 해후한 나의 친구들을 나는 사랑한다.
애정은 아무리 보잘 것없는 대상도
자신의 내부로 깊숙히 안아 들여
더욱 큰 것으로 키워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한 애정은
우리시대의 가장 첨예한 모순의 한복판으로 걸어나가는 일,
그리고 그 현장의 첨예한 칼끝으로부터 부단히 상처받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생각을 확실한 물적 토대위에 발딛게 하는 길이며,
우리의 삶을 튼튼한 대지위에 뿌리내리게 하는 길이며,
이윽고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시대의 사람’
‘우리사회의 사람’으로
완성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은
언제나 사람에서 비롯되고
언제나 사람에게로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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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전 에세이 / 나의 길-동아일보 1990.12.2. 1990-12-02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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