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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09-01-01
미디어 경향신문_장회익교수 대담_이영경기자
[2009 신년 대담] “경제위기 근본 성찰하고 학습하는 사회 되기를”

ㆍ한국사회를 말하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68)는 성찰하고 학습하는 사회를, 장회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71)는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자유로운 세상의 도래를 이야기 했다. 두 교수는 지난 29일 경향신문 회의실에서 신년 대담을 갖고 새해에는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기에는 새해 전망이 너무 어둡다. 그래도 두 교수는 그런 비관을 낙관으로 돌려 놓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신영복 교수-장회익 교수 대담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왼쪽),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




사회(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새해 소망을 말하기가 꺼려질 정도로 한 해의 전망이 어둡습니다. 그래도 우리 사회가 똑바로 가야 한다는 꿈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장회익 교수(이하 장회익)=마음놓고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활,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경제가 나빠지고, 생존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실제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신영복 교수(이하 신영복)=새해도 다사다난할 것 같다는 전망이 많습니다. 그래도 새해가 근본적인 것들을 성찰하고 학습하는 한 해가 됐으면 합니다. ‘곤이지지(困而知之)’라고, 곤경을 겪고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IMF와 같은 많은 곤경을 겪었지만 곤경을 겪고도 깨닫지 못하는 ‘곤이부지’(困而不知) 상태인 것 같습니다.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방법 등을 통틀어서 학습하는 한 해가 되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회=왜 바라는 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곤경을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회익=교육에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일제시대부터 억압적 교육이 이뤄졌고, 그 이후에도 내용만 조금 달랐지 사고력을 길러주지 못하는 교육이 계속됐습니다. 생각이 경직돼 기존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그냥 그 자세로 버티고, 새로운 것이 와도 그 자세로 버티고…. 그렇게 교육받은 사람들이 그것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해서 다음 세대에도 같은 교육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신영복=교육문제는 장기적 관점에서 중요합니다. 한 사회의 성격을 분석할 때 그 사회의 인텔리 충원구조, 즉 의사결정 그룹이 어떻게 재생산되는가가 대단히 중요한데, 우리 사회의 경우 교육이 창의적이고 주체적이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 지배구조가 오래되고 완고한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문제를 완고한 지배구조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생각하고 있지, 창의성을 기르기 위한 열린 교육으로 생각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능력·열린 사고·사회적 역량이 축소되고, 위기에 대한 대응도 좁은 틀에서 이뤄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사회=2008년은 사회 분열과 대립의 해였습니다만, 새해에도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여당의 무더기 법안 처리 강행 입장이 여전한 것을 보면, 한국사회의 대결과 갈등이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화될 것 같습니다.

장회익=지금 상황은 8년 전 9·11 테러가 일어난 이후 미국의 상황과 닮아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펼치며 세계를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고 이분했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재앙이 일어났고, 미국 사회도 약화됐으며 그 정책은 결국 파탄이 났습니다. 우리 정부가 딱 그 모습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때는 문제가 테러였다면, 지금은 경제한파입니다. 경제한파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데, 이것이 가진자를 위한 전쟁, 기득권을 위한 전쟁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일부 기득권층에만 유리하게 만들고, 나머지 모든 것은 내팽개치는 방식으로 가고 있습니다. 교육, 정치, 경제, 언론, 외교, 남북관계 등 모든 면에서 잘못가고 있습니다. 힘으로 밀어붙여서 당분간은 표면적으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부시가 몇년 후 바닥난 것처럼 결국 실패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신영복=우리사회는 직선적 대립으로 파국을 답습해왔습니다. 현재 여야 정치 집단끼리의 타협이나 소통을 기대하기 어렵고,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단색적인 흑백좌우와 같은 논리가 극복되기 어렵습니다. 현재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 당파적 입장을 유일한 코드로 밀고가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과거회귀적인 대응형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갈등 속에 승패가 결정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기적인 것이고 길게 보면 우리 사회의 역량이 전반적으로 약화될 우려가 있습니다. 당분간 국민적 합의나 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제3의 신뢰집단을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회=경기 침체 때문에 새해 화두 역시 경제살리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어떤 경제살리기인지, 누구를 위한 경제살리기인지에 대한 고민은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장회익=이번 기회에 우리가 경제에 대해서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경제가 혼자 따로 놀아서는 안됩니다. 바탕에 생태를 깔고, 사회·정치 문제 속에서 경제가 어떤 자리를 차리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경제만 따로 떼서 잘되게 하자는 것인데, 요즘 전세계가 경제난의 열병을 앓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생각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경제의 바탕은 생산이겠지만, 생산의 바탕에는 생태가 놓여야 합니다. 생태적 건전함 속에 생산이 이뤄지고, 이것이 경제로 연결돼야 하는데 지금껏 생태라는 이 바탕을 도외시해왔습니다. 또한 빈부격차가 너무 벌어져 어려운 사람은 너무 어렵고, 있는 사람은 너무 많아서 낭비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반성도 부족해요. 이번 기회에 경제를 제대로 배우고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영복=현 정권이 경제살리기를 선거공약으로 걸고 압도인 지지를 받아 집권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매달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경제를 살려야겠지만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학습하는 게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경제를 왜 살리는가’와 같은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경제를 살려야 하는데, 마치 사람들을 경제 살리기의 수단으로 삼아버리는 거꾸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경제살리기가 유일한 목표가 되면 그 사회의 욕망구조가 굉장히 천박해집니다. 자연과 생태, 인간적 관계가 폐기되고 물질적 욕망만으로 사회가 천박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듭니다.

사회=경제의 바탕에 생태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장회익=아주 간단합니다. 경제하면 성장이 따라붙는데, 지구는 절대 성장을 못합니다. 지구 반경이 1m도 더 커지지 않습니다. 그 바탕 위에서 우리가 살 생각을 해야 하는데, ‘지구가 한없이 넓다, 가서 개척만하면 된다’는 식의 전근대적 생각에 사로잡혀 지구를 파괴하고 생태질서를 교란시킵니다. 생태질서를 교란하지 않으면서 유한한 자원을 장기적으로 어떻게 보존해가느냐의 바탕 위에서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성장논리로 갖다대니까 안된다는 거죠. 우리 생활이 나아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라, 자연에 최소한의 손을 대면서 거기에 열리는 과실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신영복=성장 신화에 매몰돼 있습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성장 신화, 자연 파괴, 독점화, 식민주의화, 패권화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성장입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나 문화적 각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의 파괴가 미봉적으로 수습되더라도 또다시 반복되고 이런 과정을 몇차례 반복할 것입니다.

사회=그런 면에서 한국인들은 성찰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아직도 생태에 대한 인식이 낮고 성장 만능 논리가 팽배해 있습니다.

장회익=그것이 경쟁사회의 특징입니다. 경쟁이라고 하는 것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앞서면 앞설수록 더 앞서야겠다는 것입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역설이 일어납니다. 경쟁 사회에서는 일단 낙오해 직장에서 잘리기라도 하면 체제 안에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체제 안에 있어도 불안하고 부족하게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사회 안전망이 확충되고 함께 잘 사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적절한 수준에서 마음 놓고 자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경쟁에 빠진 이유는 과거에 그렇게 함으로써 어려운 상황을 넘어 여기까지 왔다는 개발신화, 성장신화에 젖어 있기 때문이죠. 사회를 정상화시켜야 할 앞선 사람이 제일 앞에서 경쟁을 독촉하고 있고, 국민들은 거기에 그냥 따라가고 있습니다. 경쟁체제라는 것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체제가 아닙니다. 독인데, 독인 줄 모르고 좇고 있습니다.

“성장만 좇지말고 인류 평화·생태 ‘큰 꿈’ 가져야”

신영복·장회익교수가 지난 29일 경희궁터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철훈기자>


신영복=자본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경쟁 사회입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자기 주체를 무한히 강하게 만들기 위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운동을 필연적으로 하게 되고, 이것이 독점, 팽창, 패권주의로 달려나가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큰 톱니바퀴에 물려있는 작은 톱니바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큰 톱니는 천천히 돌아도 되는데 작은 톱니바퀴는 더 속도를 내고 더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죠. 우리나라를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에서 중상위라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중하위예요.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라는 통절한 반성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달려가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당장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 내리자는 주장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근본적 상황을 성찰하는 지혜를 모아나가는 게 필요해요.

사회=토건 사업 중심의 인프라 건설에 거대한 예산을 투입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나라당 대표도 전국을 공사장으로 만들자고 했습니다.

장회익=가장 우려스럽고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의 흐름대로 자연을 살리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땅을 파고 물길을 바꾸는 식으로 살리겠다고 하는 것은 반생태적 발상이죠. 토건업은 없어져야 할 분야라고 생각해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땅에 손을 대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토건업에 인력을 투입해서 상당한 인력이 토건업에 종사하게 되면 작업이 끝나도 그 인력을 위해서 또 다른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결국 생태계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힘을 합쳐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영복=두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회간접자본, 건설·토목을 중심으로 한 경기부양정책은 극히 단기적인 처방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자연파괴라는 고비용으로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돼있어요. 두번째는 순수한 경제정책적 효과로 봤을 때, 토목중심 경기부양책은 일회적이고 고용창출 효과도 크지 않고 투자유발 효과도 상대적으로 낮은 분야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계속 되는 것은 건설자본의 파워가 상당히 세기 때문입니다. 현 정권을 이끄는 사람들의 사고가 과거 산업화 시대의 경제마인드에 머물러 있어요.

사회=이명박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생태주의적 관점이 결여돼 있었습니다. 세계 13대 경제 대국에 어울리지 않게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매우 낮습니다.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장회익=우리가 후진국 콤플렉스에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가 뒤처졌다, 앞선 나라를 빨리 뒤쫓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우리가 지구의 주인, 세계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못해요. 세계 평화문제와 생태 문제를 생각하지 못하고, 남보다 뒤처질까봐, 조금 앞서나가면 누가 뒤따라올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어요. 마음이 좁은 거죠. 자칭 경제대국이라고 하면 마음도 같이 커져야 합니다. 이대로 가면 인류가 공멸한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 생각을 뼈저리게 못해요. 그런 의식도 부족하고 스스로 생각하게끔 하는 교육이 없는 것도 원인입니다. 생각도 남의 생각을 끌어다가 누군 이렇게 생각한다면서 외우다 보니 앞서 내다보는 시각이 부족해요.

신영복=우리의 경제사회적 위기 구조를 보면, 내수보다는 수출 중심,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중심의 과거 산업화 시대에 이미 깔려진 성장구조의 레일 위를 달려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GDP의 75%가 대외부문으로 굉장히 높습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도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했습니다. 앞으로도 미국과 FTA를 맺고 한배를 타겠다는 것인데, 어쩔 수 없이 큰 톱니바퀴에 물린 작은 톱니바퀴처럼 가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중장기적 대책을 세우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결국은 극히 단기적인 처방, 아주 표면적인 문제들을 막는데 급급한 상황으로 끌려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사회=이명박 정부도 녹색성장을 주장하지만, 녹색은 없고 성장만 부각됩니다. 녹색성장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장회익=속은 절대 건드리지 않고 겉에 녹색칠만 한 형국입니다. 녹색 산업에 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보는데 현 정권은 그렇게 하는 것 같지도 않아요. 경제가 어려울 수록 제일 중요한 것은 약자를 보살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데, 현대 산업이 첨단화될수록 기계가 인력을 대체해 사람의 일은 줄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을 적게 하고 일자리를 늘리면 됩니다. 아주 간단한 계산이죠. 그런데 구조조정을 한다고 사람을 더 밀어내고 소수만 일하게 합니다. 그나마 일하는 사람도 경쟁 때문에 혹사 당하죠. 그러지 말고 하루 8시간 노동할 것을 하루 6시간 하고, 4시간 하고 나머지 시간을 유용하게 쓰면 됩니다. 일자리를 나눠서 낙오하는 사람 없고, 어려운 사람들이 최소한도의 생활을 유지토록 하면서 남는 시간은 좀더 유익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신영복=경제를 내수중심에 중소기업을 기반으로 한 구조로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경제발전이 바로 고용으로 이어지고 경제발전이 곧 복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정반대입니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한 사람이 10만명을 먹여살리는 기술이나 인재를 키워내자고 하는데, 굉장히 비인간적인 발상입니다. 10만명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거죠. 우리가 잘못된 욕망구조 속에 매몰돼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적 삶과 인문학적 가치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대문 화재 현장에 꽃을 갖다놓고, 그 속에 서려있는 역사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을 보면 우리사회 심층으로는 인문학적 문화가 튼튼히 자리잡고 있다고 보고 싶은데, 그런 성찰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한국인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요.

장회익=꿈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일부 역행을 할지라도 길게 보면 역사는 앞으로 갑니다. 사람들의 의식 심층에는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느낌이 공감대로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념을 잃지 않고, 우리가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계기를 각자 자기 자리에서 만들어나가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크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말을 늘 합니다. 큰 목표는 크게 잡고, 작은 목표는 작게 잡자고. 인류 문명 전체를 위해 우리가 뭘 할 것이냐는 문제는 크게 생각하고 거기에 맞는 역량을 스스로 쌓아나가되, 작은 일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욕구를 갖자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에 직결되는 것만 최소한 대로 하고 나머지는 큰 가치를 위해 투자하자. 그런 신조로 살다보면 각자 할 일이 나타나고 개인적, 사회적, 전인류적 꿈이 이뤄지지 않을까요.

신영복=저는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내는 화두로 ‘석과불식’(碩果不食)을 이야기합니다. 늦가을에 과실 하나만 달려있는 나무, 추운 겨울 삭풍 속의 한그루 나무는 역경과 고난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창의성과 희망은 그런 역경에서 나옵니다. 그 과정의 첫째는 엽락(葉落), 잎사귀를 떨구는 겁니다. 거품을 거둬내고, 우리가 갖고 있는 잘못된 욕망과 환상을 청산하는 것이죠. 두번째가 체로(體露)입니다. 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거죠. 그렇게 우리나라의 경제·정치·사회가 어떤 것인지 근본을 직시한 뒤 가장 소중한 것을 키워내는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인간적 가치입니다.

<이영경기자> 경향신문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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