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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05-01-07
미디어 매일신문 강판권교수

서가에서-희망의 씨앗이 자라는 책


| 기사입력 2005-01-07 15:36 | 최종수정 2005-01-07 15:36

[매일신문]

  

추억은 구정물도 걸러내는 정수기이다.

사람마다 몸속에 지니고 있는 추억의 정수기는 삶의 흔적을 발효시켜 몸속에 골고루 보낸다.

내 몸에도 수많은 추억이 자라고 있지만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나에게 희망의 벼리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책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나름대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때론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갈라놓을 만큼 큰 영향을 준다.

나에게 신영복의 책이 그랬다.

그간 많은 책을 접한 건 아니지만 신영복의 책은 내게 정말 강렬하게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 감동하여 무릎을 친 적이 한두 번 아니었고, 가슴 아파 눈물 흘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어떤 구절은 몸에 넣어 발효시키느라 며칠을 끙끙 앓은 적도 있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신영복의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고 눈물 흘린 것은 그가 단지 20여 년 동안 감옥에 있었기 때문도 아니고, 처참한 상황에서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자기성찰 때문도 아니다.

더욱이 내가 가장 부족한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을 선(禪)처럼 표현한 많은 재주 때문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신영복의 책에서 감동한 것은 내가 아주 어려울 때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책은 희망을 주는 작품이다.

모든 책에는 희망의 씨앗이 자라고 있지만, 절실한 사람에게만 희망의 씨앗이 눈에 띈다.

아직도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라는 구절을 소처럼 되새김질하면서 살아간다.

그 뒤 나는 나무로 신영복을 만났다.

내가 힘들 때 나무가 어깨를 일으켜 세웠듯이, 신영복도 나무에 기대어 지친 몸을 추슬렀다.

절실하면 보이는 법이고, 절실하면 또한 만나는 법이다.


< 매일신문 -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

▨약력

△계명대 사학과 졸업 △계명대 대학원 석사(동양사) △경북대 대학원 문학박사(중국사) △저서: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지성사·2002),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민음사·2003), 청대 강남의 농업 경제(혜안·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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