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소개]'동양고전 사색' 맑은 바람이 분다

'동양고전 사색' 맑은 바람이 분다

한국일보 200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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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유명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신간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돌베개 발행)이 발행 20일만에 2만 부가 팔려나가며 새해 출판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담담하고 차분한 글솜씨로 세상을 헤아려내는 그의 예전 책에 반한 사람들이 많아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긴 하지만, “이런 불황이 없다”는 출판 여건을 감안하면 놀랄 일이다.

출판사가 신 교수의 책 애독자를 헤아려 찍은 초판은 1만 부. 불과 열흘 남짓에 그 책이 다 팔려 나가 2쇄로 5,000부, 이어 3쇄로 1만 부를 추가로 찍었다. 성공회대에서 교양강좌로 열었던 ‘고전강독’ 내용을 정리해 묶은 책이라 대학 초년생들이 고전의 맛과 멋, 그 속에 담긴 지혜를 알기에 딱 좋지만, 지금까지는 주로 신 교수의 필명을 익히 아는 ‘386세대’들이 주로 사갔다고 한다.

책에서 말하는 고전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고전이다. 그 고전들을 신 교수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1988년 가석방될 때까지 20년 옥살이를 하면서 감옥에서 한학자인 노촌 이구영 선생과 한권씩 읽었다.

여유롭게 읽은 책들이 아니라서 그럴까. 강의 투로 이야기 하듯 풀어나간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에 등장하는 시경(詩經), 서경(書經), 초사(楚辭), 주역(周易), 논어(論語), 노자(老子), 묵자(墨子), 한비자(韓非子) 등의 구절구절은 그 어떤 해석보다 의미가 새롭고도 친절하다. 그래서 쉽다.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동양고전으로 성찰하는 오늘과 내일’을 주제로 이 책 출간을 기념하는 특별강연회를 연 신 교수는 “당대 사회의 과제를 재조명”한다는 책의 주제대로 컨벤션센터의 350석을 가득 채운 청중들에게 고전 한 구절씩을 읽어가며 바르게 세상 사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특히 화두로 삼은 것은 서양의 존재론에 대비되는 동양 고전의 ‘관계론’적 사고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고 ‘논어’ 자로(子路)편의 구절을 보통과는 조금 다르게 풀이한 그는 ‘동(同)의 논리를 지배와 억압, 흡수와 합병의 논리이며 근대사회의 논리이자 존재론의 논리로, 화(和)를 공존과 평화의 논리“로 대비해서 해석했다.

그리고 이 “동의 논리를 화의 논리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변화’이고 ‘20세기를 성찰하고 21세기를 전망하면서 동시에 우리 민족의 문제를 세계사적 과제와 연결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신영복체(글자들이 어깨를 겯고 있는 독특한 모양)로 쓴 붓글자가 알려졌을 정도로 그가 “좋아하는 글”인 주역 ‘산지박괘(山地剝卦)’의 ‘석과불식(碩果不食)’도 등장했다.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이 구절에서 그는 “희망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괘는 늦가을에 잎이 모두 져버린 감나무 끝에 빨간 감 한 개가 남아 있는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가을 나무가 낙엽을 떨어뜨리고 나목으로 서듯이 허위의식을 떨어내고 우리의 실상을 대면하는 것에서부터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어야 합니다.”

신교수는 또 ‘상선약수(上善若水)’로 시작하는 노자 제8장을 인용하면서 “노자의 물은 민초들의 정치학이면서 동시에 우리사회의 실천적 과제”라며 “진정한 연대란 노자의 물처럼 노동 교육 농민 환경 의료 시민 등 각 부문의 낮은 곳을 지향하는 하방연대”라고 강조했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강연의 매듭은 장자(莊子)다.

‘천지(天地)’편의 ‘불치병자가 밤중에 아기를 낳고 급히 불을 들어 살펴보았다. 그가 서두른 까닭은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서였다(厲之人 夜半生其子 遽取火而視之 汲汲然 惟恐其似己也)’를 읽은 그는 “자기반성을 이보다 더 절절하게 표현한 구절을 보지 못했다”며 “자기의 문화, 자기의 생산물, 자기의 언어, 자기의 신을 강요하는 제국과 패권의 논리를 반성하지 않는 한 참다운 문명의 발전을 멀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앞으로 전주 등 지방 몇 곳을 돌며 강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20일 오후 10시에는 ‘더불어 사는 삶, 신영복의 고전 강의’라는 제목으로 방영되는 KBS 1TV ‘TV, 책을 말하다’에 출연해 책에 담긴 이야기도 들려준다.

<한국일보 - 김범수기자 bs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