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오는 25일 정년퇴임식을 앞두고 있는 성공회대학 사회학부 신영복 교수와 함께 하겠습니다. 어제는 신영복 교수의 지나온 인생길을 되돌아 봤구요, 오늘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에 대해 말씀 나눠볼까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오늘은 무거운 주제로 말씀을 나눠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들 살림살이가 제대로 되고 있느냐, 그런 질문인데요, 최근에 통계청에서 나온 통계를 보니까 우리의 국민소득이 해방 당시에 비해서 243배인가 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240배 잘 사는 건 아니겠죠. 사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세대들은, 민주화만 되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풀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서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양극화라고 얘길 하구요. 다니다 보면 고등학생 또래들도, 어머니가 그러는데 살기는 전두환 정부 때가 더 좋았다더라는 말을 합니다. 또 어떤 택시기사 분들은 지금이 돈은 더 많지만 60년대까지는 모두가 가난해도 사람 사는 정을 느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하거든요. 우리가 지난 40년 동안 마냥 다 좋아진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어떤 게 문제가 있고 어떤 게 좋아졌다고 보십니까?
신영복 :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삶이나 사회 모습에 대해서 불만도 많고 비판적인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만, 일단은 객관적으로 여러 가지 물질적 조건들이 꾸준히 발전해 왔죠. 240배 이상 국민소득이 발전한 것도 사실이고. 반면에 잃고 있는 것들도 참 많죠. 심지어는, 반어적 표현입니다만 군사정권 시절이 더 나았다든가, 더 나아가서 일제 때가 나았다든가, 이런 표현까지 풍자적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그만큼 우리 삶을 다른 기준에서 부단히 되돌아본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봐요. 예를 들면 절대빈곤이 당면과제였던 시대하고, 그게 해결되고 난 이후에는 또 요구가 달라질 수 있고. 군사정권 시절의 여러 가지 억압적인 사회에서부터 민주화가 이뤄지고 난 후의 요구가 달라지듯이. 그래서, 사회는 어느 시대나 항상 많은 비판과 불만이 있었지만 그 자체를 우리가 좀 더 전향적으로 모아 가야 되겠죠. 발전시키는 쪽으로.
박인규 : 물질적 조건의 개선은 상당히 이뤄졌지만 그 과정에서 잃고 있는 게 있다는 말씀을 하셨고. 다만, 지금 보면 현 정부에서도 국정목표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이런 식으로 사회의 진보나 행복의 정도를 숫자, 경제성장 등으로 많이 따지거든요. 그런 수치가 아닌, 우리가 좀 나아졌다고 느낄 수 있는 지표 같은 게 어떤 게 있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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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
신영복 : 최근에 경제학 하는 분들도 GDP 외에 국민복지 지표를 읽을 수 있는 개념을 만들어 내고도 있습니다만, 이게 사실은 아주 복합적이라고 봐요. 2만 불로 가지 않으면 아주 치열한 사활적인 국제경쟁체제로부터 빠져나오면 현재 우리 삶이 그대로 지속될 수 없죠. 그렇다고 그 체제 속에서 같이 경쟁하자니 정말 많은 것을 잃고, 인간적인 여러 가지 가치들을 잃을 수밖에 없는, 이런 이중적인 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 우리가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와, 사회의 운용형식을 합의해 나갈 것인가가 대단히 중요한데.. 저는 현재 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부 당국자들도 선택의 여지없이 그대로 사활적 경쟁체제에 뛰어들어 가게 돼 있는 세계 경제구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서 고민을 좀 해야 된다고 봐요.
박인규 : 제가 최근에 세계무역기구 도하라운드가 결렬되면서 뉴욕타임스에 나온 해설기사를 봤더니, 결렬된 가장 큰 원인은 농업이었다. 유럽과 미국이 서로 자국의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고집을 세우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농업은 경쟁력이 없으니까 경쟁력을 키우든지, 경쟁력이 없으면 할 수 없다. 이런 얘길 하고 있거든요. 이른바 국제경쟁력. 경제적 효율성 말고 사회를 끌어가는 다른 원리가 필요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요?
신영복 : 저도 동감입니다. 우선 경제적 논리만으로 한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가 문제가 되구요. 그 다음에 경제적 논리를 중시한다고 해도 현재의 세계경제질서를 기존의 불변의 조건으로 놓고,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할거냐라는 사고가 과연 옳은가. 다시 말해, 2만 불, 3만 불이라는 경제논리로만 국가경영을 해갈 것인가. 그리고 현재 치열한 경쟁체제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이 과연 지속 가능한가. 예를 들면, 지금 일부 패권을 중심으로 한 WTO 또는 글로벌한 세계경제질서가 과연 지속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 경제전문가들도 굉장히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새로운 질서에 대비한 중장기적인 정책대안을 우리가 한 편에 갖고 있어야 되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FTA 문제나 수출경쟁력에 올인하는 정책을 반성하자는 거죠.
박인규 : 많은 분들은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다른 나라처럼 내수가 아니라 결국 외국시장에 뭔가를 팔아야 한다. 할 수 없는 거니까 국제시장에 적응해야 된다는 얘길 하고 있거든요. 그런 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얘길 할 수 있을까요?
신영복 : 그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가 성공적으로 발전했구요. 그 연장선상에서 가능성들을 예상하는데, 저는 한 사회가 가장 중요한 게 지속가능성이라고 봐요. 그리고 사회는 일정 정도의 자립적 경제기반을 갖고 있어야 된다고 보고. 그게 전혀 없다면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국제경제사회라는 것이 아주 배타적이고 이해관계의 첨예한 대립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러한 경제적 공간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정한 자립적인, 또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주체적인 구조를 만들어 내는 노력이 장기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신자유주의라고 얘기되는 현재의 세계경제가 바뀔 수도 있고, 지속 불가능한 측면도 있으니까 대비를 해야 된다는 말씀이시죠?
신영복 : 그렇습니다. 저는 경제학을 하기 때문에, 좀 전문적인 이야기지만, 현재 글로벌한 세계경제질서라는 게 사실은 많은 국가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진행되는 건 아니거든요. 거대 축적자본이 축적운동을 지속하기 위해서 전 세계를 글로벌한 마케팅의 결과로 치열한 경쟁체제가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게 사실은 자본축적과정 자체의 모순의 발현형태라고 봐야 돼요. 그래서 세계경제질서를 불변하는 구조로 전제하는 사고를 반성하자는 거죠. 당장 경제부문간의 충돌도 예견될 수 있고, 에너지, 더 나아가서는 자연과의 충돌도 많이 내다보는 게 시민사회운동의 일반적인 분위기라고 볼 수 있거든요.
박인규 : 정치적인 결정권을 가진 분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려야해 되는데, 최근에 사회과학이라든가 운동하시는 분들이, 우리가 지금까지 경제성장을 해온 게 말하자면 박정희 패러다임이었다고 많이들 얘기하고. 또 정치적으로는 87년 체제라고 해서 민주화가 됐지만 실생활은 별로 안 좋아졌다. 뭔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된다고 논의들은 많은데 실제로 아직 나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신영복 : 거대담론이면서 가장 당면의 현실적 과제와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 경제적 과제들이 오래된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죠. 산업화 과정도 사실 수출드라이브 형식으로, 그 당시 특정 국가들의 이해관계 하위 개념으로 진행됐었구요. 또 민주화라고 하지만 민주화가 갖는 절차적인, 형식주의적인 성격이 많고. 방금 지적하셨듯이 양극화로 대표되는 민중민주주의적 내용이 아직 담겨지지도 못했고, 이런 점들 때문에 과거로부터 미해결된 상태로 넘겨져 온 많은 과제들을 우리가 한꺼번에 다 상대할 수 없는 굉장히 힘든 상황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다가 또 경쟁은 사활적으로 진행돼서 거기 대처하지 않을 수 없고. 상당히 딜레마에 있는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많은 분들이 민주화 이후의 과제로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야 된다. 특히 그와 관련해서, 민주화운동을 하셨던 세력들이 정권을 잡고 움직여오고 있는데 기대만큼 못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보십니까?
신영복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두 가지 말씀들 드리고 싶은데. 우리나라에서 정말 민주적인 변혁을 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봐요. 조선조 후기부터 일제하, 해방 이후 미군정, 그 후의 산업화 과정을 겪어오는 동안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구조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물론 참여정부 들어와서 민주화, 민주운동 세력들이 정권담당자로 규정됩니다만 그건 전체 사회의 권력구조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고, 상당히 많은 부분.. 예를 들면 언론이나 기업자본, 법조 검찰 부분 등 여러 가지 부문들이 여전히 상당히 완고하고 보수적인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변혁과 민주화를 위한 주체역량이 객관적으로 상당히 열세에 있다고 보구요. 또 한 사회의 개혁과 진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짐지고 있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여러 가지의 유산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 같은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는 역시 더딜 수박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해방 이후의 지배적인 구조가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씀하셨는데, 가장 중요한 지표는 어떤 겁니까?
신영복 : 좀 어렵습니다만, 우선 상당한 연구자들이 소위 인적 청산이라는 개념으로 그 과정을 분석하기도 하구요. 여러 가지 자본축적구조. 특히 재벌 중심의 자본축적구조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게 얘기하기도 하구요. 그리고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가 수출 성장 일변도, 그런 자본주의적 상품문화의 강력한 포섭과 규제가 점점 확대됐다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말씀 듣고 보니까 신영복 선생님은 굉장히 근원적인 변화나 변혁을 생각하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신영복 : 예. 학교에 있기도 하고.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구문도 있구요. 그래서 우리가 너무 당면과제에 매몰되지 말고 조금씩은 근본적인 것들을 성찰하면서 가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성공회대 사회학부 신영복 교수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한국사회에 여러 가지 과제를 안고 있는데, 제가 신영복 교수님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 모르지만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사람이 있어야 되고 제대로 된 리더십이 형성돼야 된다. 문제는 우리 남한사회를 보더라도 8.15경축식을 따로 하는 식으로 굉장히 갈라진, 자기주장만 하고 있는 그런 것들이 상당히 문제가 되는 것 같아서. 제대로 된 리더십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를 여쭤보고 싶은데, 우선 신 교수님이 우리 사회를 보는 눈 중에서 가장 큰 기여랄까.. 그걸 존재론이 아닌 관계론으로 사람과 사회를 설명한다고 많은 분들이 말씀하고 계세요. 관계론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영복 : 좀 철학적이고 응용담론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만, 저는 근대사회의 역사가 어떤 존재성을 강화하는 논리로 일관돼 왔지 않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를 테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나아가 국가든 각각의 존재성을 키워 나가는.. 콜럼버스에서부터 오늘날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키워나가는 존재론의 확장이 역사전개의 기본적 논리였지 않는가. 이건 결국 자기 존재 외의 것들과의 충돌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되고, 결국은 몇몇 패권적인 존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다양성이 소멸하고 양적 팽창만 나타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관계론이라는 건 그런 다양성과 차이를 승인하고 존중하고,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질서로 바뀌어야 된다. 그게 진정한 우리 20세기를 청산하고 21세기 새로운 운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철학적 담론이 바로 존재론에서 관계론으로서의 변화. 이게 근본적인 철학적 과제라고 제가 정리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저 나름대로 이해하자면, '내가 최고다, 나한테 불복하든지 네가 날 이기든지.' 이것이 존재론이라면, 관계론이라는 건 너와 나는 다르지만 그런 대로 서로 공존하고 화해하며 살자는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요즘, 특히 민주화 된 이후 정치세력 간에 타협하고 대화하지 않는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됐는지.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국민에게 제대로 된 지지와 신뢰를 받는 정치 집단도 없고. 이런 식의 비아냥도 나오는데,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걸까요?
신영복 : 아까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말씀드린다면, 각각의 집단, 그룹이 자기 존재성을 강화하려는 운동들을 하다 보니 자연히 충돌될 수밖에 없고 불신과 갈등이 더 깊어지는 구조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개인이건 집단이 자기 내포를 강화하고 존재를 강화하려는 강철의 논리보다는 자기 존재가 다른 존재의 존재조건이고 서로가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는 논리를 승인해야 될 것 같아요. 다시 말해, 예를 들면 자본진영과 노동진영이 상당히 극단적 대립을 많이 보이고 있는데 이런 경우에 자본은 자본대로의 논리, 노동은 노동대로의 논리에 철저하게 되면... 각각의 내포에 몰입하게 되면 화합의 여지가 없죠. 외연확대. 같은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중요한 두 그룹이라고 외연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관계성이 인식되고 전체의 큰.. 작은 집단성에서부터 큰 집단으로 범주를 키워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의 일원이라는 사실. 전체적인 범주 속에서 서로 관계되는 두 개의 집단이라는 사실을 먼저 승인하고, 그 다음에 범주적인 외현확장 문제를 일차적 논의로 삼아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인규 :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우리 사회에 이제 신뢰집단이 없어진 것 같다. 민주화운동을 할 때만 해도 이른바 재야세력이나 이런 분들이 상당수 국민들의 신뢰를 받았는데 그 신뢰가 많이 훼손됐다. 신뢰집단이 없는 것 같다는 지적을 하셨는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백가쟁명식의 논쟁들이 그런 신뢰집단의 부재와도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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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
신영복 : 그렇습니다. 아주 좋은 지적이신데, 사실 지역간 계층간 갈등들은 어느 나라나 다 있습니다. 미국도 남북전쟁 등 경제적인 싸움을 했고, 없는 나라가 없거든요. 문제는 이 갈등을 어떻게 건강한 긴장관계로 지향시켜서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이끌어 가느냐가 중요한데, 이 경우 가장 필요한 게 방금 말씀하신 신뢰집단입니다. 서로 팽팽하게 직선적인 대립을 하고 있는 이항대립구조에서는 사실 타협이나 통합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회의 모든 성원은 아니라도 상당한 성원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사회적 집단을 건설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우리가 돌이켜 본다면, 언론이든 종교든 대학이든, 제도 정치권이든 기업이든 사회 여러 분야에서 사실은 많은 사회성원들이 신뢰하는 집단이 없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걸 건설해야만.. 마치 가위바위보에서 가위와 바위만 있는 이항대립구조에서 보가 있는 삼항대립구조로 가는.. 직선적인 갈등구조가 지양될 수 있는 발전적인 시스템이 되거든요. 그걸 만들어 내는 게 급선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지금 남북관계도 사실.. 많은 분들이 남북이 공존 공영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서로 적이라는 느낌도 많은 것 같습니다. 북한을 우리가 어떻게 봐야 되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신영복 : 저로서는 명쾌하게 답변 드리기 어려운 주제긴 합니다만, 사실 우리나라의 분단문제나 남북한 체제상의 차이. 지금 신뢰의 부재 이런 것들이 사실 남북한만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크게는 동북아의 정치 군사적 질서와 직결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우리가 지금 논의하는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말씀드린다면 남과 북이 자기 것을 주장하는.. 그런 동의 논리. 존재론적인 동의 논리로 통일론을 끌고 간다면 이건 절대 안 된다고 봐요. 기본적으로는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관계론적 패러다임이 새로운 문명의 기본적인 시스템이라고 우리가 승인한다면, 비단 북한이 좀 전시공산주의라는 굉장히 스펙트럼의 극좌에 있는 사회라고 하더라도, 또 남한사회도 자보주의 사회 중에서도 자기 결정력과 자립적 구조가 결여돼 있는 상당부분 천민적인 자본주의라고 하더라도 이 두 개가 공존하는 것이.. 그래서 일단은 평화정착교류 부분을 확대해 가는 노력이 필요하고. 바로 그런 점들이 사회주의, 자본주의 또는 동북아의 여러 문화적인 형태가 서로 공존하는 질서를 만들어 내는 하나의 모델로서의 의미도 갖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내가 이기고 너는 지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저는 그렇게 이해하겠습니다. 마무리를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게 삶을 이렇게 살아라.. 하는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영복 : 제가 젊은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는 인문학적인 사고.. 적어도 대학에서는 그걸 해야 되지 않을까. 사회에 나가면 사회의 일정한 이해관계 속에 몸을 둘 수밖에 없기 때문에 참 어렵다. 그래서 제가 대학 때는 그릇을 채우려고 하지 말고 인간적인 그릇 자체를 키우는 게 좋다. 이런 얘기를 젊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박인규 : 물처럼 흘러가는 인생을 1기, 2기, 3기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25일에 퇴임하시면서 4기의 인생을 시작하신다고 생각이 되구요. 퇴임식 잘 하시고, 좀 더 깊고 원숙한 글들 많이 보여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프레시안 박인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