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상 게시판

청구회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처음처럼
이미지 클릭하면 저서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나무야나무야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눈이 달린 손은 생각하는 손입니다
천수관음보살의 손



등에는 아기를 업고, 양 손에는 물건을 들고, 머리에는 임을 이고, 그리고 치마락에 아이를 달고 걸어가는 시골 아주머니를 한동안 뒤따라 간 적이 있습니다. 어릴 적의 일이었습니다. 무거운 짐에다 아기까지 업고 있는 아주머니의 고달픔도 물론 마음 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머리 위의 임이었습니다. 등에 업힌 아기는 띠로 동였고 양손의 물건은 손으로 쥐고 있어서 땅에 떨어질 염려는 없었습니다만 머리에 올려 놓은 임은 매우 걱정스러웠습니다. 비뚜름하게 머리에 얹혀서 발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떨어질 듯 떨어질 듯 흔들리는 임은 어린 나를 내내 불안하게 하였습니다.

‘저 아주머니에게 손이 하나 더 있었으면.....’
어린 아이였던 내가 생각해낼 수 있었던 소망의 최고치였습니다. 나는 그 뒤 훨씬 철이 들고 난 후에도 가끔 ‘또 하나의 손’에 대하여 생각하는 버릇을 갖고 있습니다.
3개의 손, 4개의 손, 수많은 손을 가질 수는 없을까.
짐이 여러개 일때나 일손이 달릴 때면 자주 그런 상상을 하였습니다. 추운 겨울 아침에 찬물 빨래를 할 때에도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여벌의 손 두 개만 있더라도 시린 손을 교대로 찬물에 담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천개의 손을 가진 천수보살(千手菩薩)의 후불탱화(後佛幀畵)앞에서 불현 듯 어린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천개의 손'.
수많은 짐을 들 수 있는 손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어차피 두 개의 손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손을 갖기 위하여 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기술을 익히기도 합니다. 많은 손을 구입하기 위하여 돈을 모으기도 하고 많은 손을 부리기 위하여 높은 지위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손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세상에는 많이 있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은 수많은 손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철학을 우리는 이미 완성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천수관음보살의 손을 자세히 쳐다보고 깜짝놀랐습니다.
천개의 손에는 천개의 눈이 박혀 있었습니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이었습니다.
그냥 맨 손이 아니라 눈이 달린 손이었습니다. 눈이 달린 손은 맹목(盲目)이 아닙니다.
생각이 있는 손입니다. 마음이 있는 손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이 수많은 손을 가진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러나 그것은 마음이 있는 손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조직이 망라하고 있는 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입된 수많은 손도 역시 신뢰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손은 누군가의 살아 있는 손이고 그 손에는 모두 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손의 집합과 집합의 규율과 규율에 의한 조직으로서 우리의 삶을 이룩하려고 한다면 우리의 역사는 제왕 한사람의 무덤만을 남기고 사멸해간 과거사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위대한 신세계'의 감마계급이나 '복제인간(複製人間)'으로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손의 임자에게도 많은 손을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천개의 손마다 각각 천개의 손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최고의 논리학인 수학은 언제나 등식(等式)을 기본으로 합니다.
평등의 철학 위에서 문제의 해답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집합과 규율과 연대를 넘어서 천 개의 손이 서로 '소통'(疏通)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제로섬'에서 '비약'으로 가는 길이고 '뺄셈'에서 '곱셈'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많은 보살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론의 문수보살, 실천의 보현보살, 사랑의 미륵보살. 아마 천 개의 보살이 있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보살은 중생들의 수많은 모습을 하나하나 상징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모든 보살의 총체가 바로 부다(Buddha)의 심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또 다른 집합의 개념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버리지 못합니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소리(世音)를 듣는다(觀)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소리를 듣기 위하여는 물론 많은 귀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많은 귀를 가진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정보화사회에서는 정보의 소유자가 권력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나 세상에 '정보(情報)'란 없습니다. 있는 것은 소리입니다. 누군가의 소리일 뿐입니다. 소리는 앉아서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나는 곳으로 달려가야 하는 신호입니다. 손에 눈이 달려 있는 까닭이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질책을 무릅쓰고 천수보살 이외의 보살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릴 때의 간절했던 그 ‘또 하나의 손’이 짐을 들어주는 손이 아니라 손을 잡아주는 손이기를 바랍니다. 천수보살의 손이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다정한 '악수'이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손만이 삶의 did(量)을 늘림으로써 삶의 질(質)을 높이려고 하는 허구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사람'과 '사람들'의 얼굴을 되찾이주리라고 믿습니다.
경쟁상대로 팽팽히 켕겨진 시장이 아니라 우정이 소통되는 세상을 이루어 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역량을 대해(大海)처럼 든든한 것으로 만들어 주리라고 믿습니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