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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6-01-21
미디어 광주일보_김미은

신영복과 엽서


절판된 책을 애타게 찾아본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겐 신영복의 영인본 ‘엽서’가 오랫동안 눈에 아른거리는 책이었다. 아마도 그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접한 이라면 ‘엽서’에 대한 갈증이 꽤 컸을 게다.


출소 직후 그의 친구들은 ‘20년, 어둠 속의 유일한 공간이던 엽서와 그 작은 엽서를 천 근의 무게로 만드는 깨알 같은 글씨들’을 마주하고 충격을 받았다. 엽서 한 장씩을 받아든 친구들은 영인본을 제작해 한 권씩 나눠 갖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1993년 세상에 나온 게 ‘엽서’였지만 곧 절판됐다.


절판된 책을 찾는 첫 번째 방법은 출판사에 연락하는 일이다. 하지만 출판사 ‘너른마당’은 문을 닫은 후였으니 막막했다. 어느 날, 알고 지내는 이의 집에서 우연히 그 책을 발견했다. 온갖 감언이설에 금전적 보상까지 약속하며 책을 얻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일단 빌려 와 일독했다. 꾹꾹 눌러 쓴 육필과 삽화는 그냥 활자로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을 안겨 주었다. 돌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눈물을 머금고 반납했던 기억이 있다.


‘엽서’ 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초판에 실리지 않은 ‘청구회의 추억’(단행본으로도 출간됐다)이란 글이 기억에 남는다. 1966년 서오릉으로 소풍을 갔던 스물일곱 살의 신영복은 거기서 만난 여섯 명의 어린이들과 ‘청구회’를 만들었다. 매월 한 차례 장충체육관 앞에서 만난 이들은 10원씩 모아 저축도 하고, ‘로빈후드의 모험’ 등 매달 한 권씩 책을 읽고 이야기도 하며 우정을 쌓아 간다.


2년이 지나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된 그는 ‘청구회’ 조직 목적과 구성원을 대라는 심문을 받는다. 또 아이들과 부르기 위해 지은 노래 ‘청구회’ 가사 중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의 ‘주먹 쥐고’가 국가 변란을 노린 폭동 기도 아니냐는 어처구니없는 취조도 당한다.


영인본을 손에 넣은 건 2003년이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던지 ‘신영복의 엽서’로 다시 출간된 것이다. 선생의 타계 소식에 오랜만에 ‘엽서’를 다시 꺼내 본다. 영인본을 냈던 친구들은 “사람이 그리운 시절에 그 앞에 잠시 멈출 수 있는 인간의 초상을 만나는 것은 행복”이라고 말했다. 딱 맞는 말이다.


 /김미은 문화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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