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 2016-0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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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 법보신문_이재형 |
신영복 교수의 화엄세계
부당함에 맞선 실천적 지식인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론 주창
“불교는 관계론의 보고” 찬사
이재형 기자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1월15일 별세했다. 시대 아픔을 온몸으로 관통하면서 인간과 생명의 의미를 전달해 온 참 스승의 마지막을 많은 이들이 애도했다.
1968년 신 교수는 이념과 냉전의 독주에 저항했다. 정권은 그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해 세상과 격리시켰다. 하지만 마음까지 가둘 수는 없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자와할랄 네루, 안토니오 그람시, 만해 한용운 등 실천적 지식인들이 그랬듯 신 교수에게도 감옥은 사색의 공간이었다. 동양의 고전에 침잠하면서 그는 노자, 공자, 장자, 묵자, 순자, 맹자 등 숱한 성현들과 마주했다. 감옥은 그를 더 단단히 여물고 깊어질 수 있도록 이끌었다.
신 교수가 세상에 돌아온 것은 1988년 광복절이었다.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보낸 그에게 27살의 청춘은 가버린 뒤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머리 희끗한 40대 후반의 그에게서 분노와 회한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성찰, 냉철한 사회인식과 자기절제를 갖춘 그는 옛 성현을 닮아있었다.
신 교수는 인간을 개별화시키는 서양의 존재론과 자본주의적 사유체계에 한계가 있음을 알았다. 나와 다른 것의 관계성 총체가 생명의 본질이라는 관계론을 역설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독선과 이기의 시대에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더불어 숲’의 가치를 주창한 것이다.
불교와의 인연도 깊었다. 신 교수는 2000년대 초 평창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요청으로 상원사 ‘문수전(文殊殿)’의 현판을 썼다. 당시 그는 달포 이상의 숙고 끝에 세 글자를 이어서 썼다. 분(分)과 석(析)이 아닌 원융(圓融)이 세계의 본 모습이며 이를 깨닫는 것이 문수보살의 지혜라는 생각에서였다. 신 교수는 그때 심경을 ‘변방을 찾아서’(2012년)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짧은 찰나라 하더라도 그것이 맺고 있는 중중(重重)의 인연을 깨닫게 되면 저마다 시공을 초월하는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다. 꽃으로 가득 찬 세상은 얼마나 엄숙한 화엄의 세계인가. 지혜란 바로 그런 깨달음일 터이다.”
신 교수의 관계론은 불교사상에 의해 더욱 확연해진다. 그는 2004년 출간된 ‘강의’에서 “불교사상은 관계론의 보고”라고 천명했다. ‘화엄경’이 불교철학의 최고봉이라고 찬사를 보낸데 이어 깨달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펼쳐나갔다.
“불교에서 각(覺)이란 이 연기의 망(網)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갇혀 있는 좁은 사고의 함정을 깨닫는 것입니다. 개인이 갇혀 있는 분별지(分別智)를 깨달아야 함은 물론이며 한 시대가 갇혀 있는 집합표상, 즉 업을 깨닫는 일입니다.”
깨달음을 지극히 명상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이데올로기일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신 교수는 고전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하고 옛 사람들을 오늘날 삶의 현장으로 생환해 그들이 길어 올린 지혜를 들려주었다.
그는 월정사 현기 스님과도 친했다. 어느 깊은 밤 전화가 울려 받아보니 현기 스님이었다. “선생님, 달 보냈으니 받으세요.” 아파트 베란다에 나갔더니 현기 스님이 보낸 보름달이 와 있더라는 얘기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걸어 나오고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자신의 말처럼 이제 그는 역사 속 인물이 됐다. 신 교수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지혜의 우물은 여전히 맑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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